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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과 천민 사이

소요유 : 2018. 12. 24. 19:57


농민과 천민 사이


나는 서울에 있을 때,

기회 있을 때마다,

농민의 사회적 불평등을 부정의하다며,

저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응원하고, 힘을 보탰다.


헌데,

그들과 가까이 하자,

영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구나 내가 이제 농민이 아닌가?

헌즉, 더욱 더 예민하게,

이제부터 증언할 사실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틈이 나자,

여기 시골 농토를 들러보았다.

그 농토들,

몇 십 미터를 걷지 않아,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농민들은 이제까지 도시에서 피상적으로 알던 이들과 사뭇 다르다.

저들은 실로 천박하고 對사회적 문제의식이 박약하다.

자신들이 노상 함께 대하는 농토를 저리도 하대하고,

마구 다루며 연년세세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어찌 농민이 선하고 어질다 할 수 있겠는가?








몇 미터도 걷지 않아 이내 버려진 쓰레기를 만나게 된다.

더럽기 짝이 없는 천박한 우리네 농촌 현장이다.


이제부터는 길이 막다른 곳에 처한 농토가 있는 곳이다.

그러함인데도 어지럽혀 있는 양상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것이 특정한 양태가 아니라,

농민 일반의 행위 양식임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보면, 농약병, 비료통이 그냥 버려져 있다.

마지막 잿더미를 잘 살피면,

내가 그리도 진저리 치는 폐 프라스틱 종류가 함께 태워져 있다.

이 짓 저지른 이는 뻔하니 하나 뿐이 없다.

바로 건너편 농부가 장본인이다.

이리하고도 농사가 지어지는 것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도대체, 두부장사가 두부에 횟가루 쳐넣는 것과,

그리고 콩나물 장사가 잘 자라라고 농약 퍼붓는 것과,

이 짓이 무엇이 다른가?


(고추밭이다. 봄에 저것 그냥 태워지고 만다.)


도시민들은 모른다.

마치 엉터리 음식집 주방 사정을 모르고 그저 맛있다 먹고 있듯.

저리 속고 사다 먹는 것이다.

내 이를 아는 이상, 

어찌 개탄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그럼 조그마한 텃밭에도 이리 처리하랴?

그곳은 좀 다를 것이라 여겨지는가?

어림없다.

여깃 사람의 텃밭 하나를 보여주겠음이라.



지금은 겨울이라 좀 덜 하지만,

봄철이 되면, 여기 쓰레기가 가득한데, 불 지르고, 그냥 고추니 하는 등속 심는다.

저러고도 제 입으로 바로 들어갈 것인가?


저들은 의식 자체가 비루하기 짝이 없음이라,

큰 밭, 작은 밭 가릴 바 없음이며,

네 밭, 내 밭 역시 다를 바 없음이다.

쓰레기 밭이나, 전장(田莊)이나 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저 먹을거리 나는 곳, 싸지르는 곳에 아무런 구별이 없다.


이러함이니,

어찌 농민을 두고 내가 천민이라 일컫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본디 천민(賤民)이라 할 때,

이를 두고 신분 계급에 낮은 것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

하지만, 賤은 본디 賈少也라,

가격, 가치가 낮은 것을 의미한다.

영어로 하자면, cheap, worthless에 當한다.

賤의 貝 이게 조개패임이니, 화폐를 뜻하는 바를 얼추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러함이니, 천민이란, 신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인격적으로도 싸구려란 의미다.

의미상 이런 이미지가 건져져 올려지는가?


그런데,

이게 농민 일반의 일이 아닌 것이,

여기 살고 있는 주민들이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오래 겪다 보면 깨닫게 된다.


시내 역시 쓰레기가 나뒹굴고,

지나는 이인들 스스럼없이 침을 뱉고, 

쓰레기를 버리는데 하등 차이가 없다.


내가 언젠가는 시내를 걷다,

공초를 도로 한가운데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말릴 틈도 없이 바로 곧장 이를 지적하였다.

그러자 그자가, 

이게 무슨 낮도깨비 같은 횡포인가 의아하게 느끼는 듯,

순간 얼음동태가 되어 한동안 나를 쳐다본다.

그러자 좀 있다가 잃었던 정신을 수습하고는,

외려 나를 향해 불같이 화를 내며 대들더라.

이들은 이게 남에게 지적을 받을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헌즉, 되레 내가 멀쩡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니,

어찌 놀라고 화가 나지 않을 도리가 있으랴?


내, 여기 시골 동네,

한데는 물론,

시내에 나갈 때조차,

이제는 화조차 아끼고 있다.

부아가 끓어오른들,

십 수 년이 흐르지만,

결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이라,

어찌 공연히 되지도 않을 일에,

정력을 낭비하랴?


하지만,

그렇다한들,

문제의식조차 버릴 수는 없는 일.


이제는 쓰레기 버리는 짓을 목격하면,

가차 없이 당국에 신고하여,

공무원들을 닦달하며,

저들을 마음껏 부리는 방식으로 선회하였음이라.

행여, 이를 두고 나를 각박하다 굳이 나무라지나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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