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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를 풀과 함께 키우는 기본 이치 ⅳ (유기농의 허실)

농사 : 2019. 2. 18. 18:43


난 농사를 지은 지 오래지 않은 초보이다.
그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들의 농법을 따라 배우기도 하였고,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지켜내려고 고생을 자초하기도 하였다.

퇴비를 만든다든가, 액비를 조제하고, 미생물을 배양하는 등의
작법들은 나로선 비상하니 관심을 기우리게 하는 주제였다.
해서 처음엔 열심히 읽고 그 요체를 파악하려 노력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를 실천한 적이 별반 없다.

다만 청초액비는 동해에 좋다고 하여 한 번 만들어본 적이 있다.
한 번 밭에 뿌리고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EM은 원액을 얻어다 몇 차례 쌀뜨물에 증식한 적이 있지만 좀 하다가 그쳤다.
아, 또 하나 있다.

초기에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유산균을 얻어다 스프링클러를 이용 온 밭에 뿌린 적이 있다.
우리 군에선 애초 유산균을 별도로 공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등장하자 비로소 단일품으로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제 내가 가져가지 않지만 따라 쓰는 이들이 몇몇 나타났으니,
현재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았으리라.

 

이 모두는  농사 짓는 2년 차에 처음 시도를 해본 것인데,

그 이듬해부터는 풀과 함께 하는 도리를 깨우치고는 그만 두었다. 

 

미생물을 아무리 밭에 쏟아 부어도,
밭에 유기물이 충분치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들도 생명인지라 먹을 것이 없으면 아사(餓死)한다.

무작정 욕심을 부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이치가 예에 있음이다.

 

게다가 토착 미생물과 외부투입 미생물간 다툼이 일어나,
자칫 생태환경이 교란될 수 있음에 유의하여 한다.

 

미생물이 문제가 아니라, 땅이 문제인 것이다.

식물이 먼저가 아니라, 땅이 먼저인 게다.

나는 풀을 키움으로써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실로 초생재배는 일거에 여러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아니 애초부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다.
풀을 적당(敵黨)인 양 대하며 대들려고만 하지 않았어도 말이다.
물론 나는 애초부터 풀에 관대했다.
저들하고 친하고자 하는 초심은 언제나 여전했다.
처음엔 힘이 들었으나,
이즈음엔 남들이 제초제 치고, 농약 치는 품보다도 사뭇 적은 노력으로,
저들과 함께 밭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다.

유기농 한다는 이는 대개는 퇴비나 보카시를 스스로 만들고,
남들이 보기에 유난스럽게 보일 정도로 열심이다.
이 모두 귀한 마음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자니 한 생각이 스믈스믈 떠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저리 거름을 삭혀서 밭에 주면 당연 작물들이 달게 먹고 잘 자라리라.
미생물이 자료들을 발효시켜 놓았으니,
식물 입장에선 흡수하기가 여간 편치 않을 것이다.

가령 밭에 일년생 푸성귀를 키운다할 때,
저리 삭힌 거름을 듬뿍 주면 쑥쑥 자라 올라올 터이다.
그러하니 농부는 해마다 정성을 다하여 퇴비를 마련하고서는,
열심히 밭에 뿌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한 해만 걸러도 소출은 눈에 띄게 적어지니,
제 정성이 미치지 못하였다 한탄하며,
내년엔 힘을 내리란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듬해엔 저들 작물들에게  소홀하였음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양껏 욕심껏 퇴비를 넣어준다.
잎사귀는 짙푸르고 한껏 기지개를 피며 잘 자라는 바라.
이젠 년년세세 듬뿍 넣어주지 못함을 마냥 송구스러워 하며,
아무리 힘이 들어도 정성을 다 기우리며 저 짓을 지속한다.

이리 수년을 이어가다보면 땅은 언간에 비료분 과잉상태에 놓이게 된다.
화학비료나 속칭 유기질 비료나 사정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거긴 농부, 아니 인간의 욕심이 언제나 임재(臨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단 한 해만 비료를 적게 넣으면 당장 표가 나게 소출이 준다.

농사를 그만 두지 않는 한,
이런 상태를 그냥 놔두는 것은 농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농부는 무한 질주하는 궤도차에 올라탄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 짓을 그만 둘 수 없게 된다.

“질산 태 질소에서 아질산 환원
질산태 질소를 포함 비료가 대량으로 시용된 결과 지하수가 질산태 질소로 오염되거나 잎 야채 속에 대량의 질산태 질소가 잔류하는 같은 일이 일어나고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질산태 질소를 많이 섭취하면 장내 세균에 의해 아질산염 질소로 환원되고 이것이 체내에 흡수되어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메트 헤모글로빈을 생성하여 메트 헤모글로빈 혈증 같은 산소 결핍증을 일으킬 수는 데다 2級 아민과 결합하여 발암 물질의 니트로 소아민을 발생하는 문제가 지적되고있다. 채소류에 주로 비료 유래의 질산 소금, 아질산 소금이 많이 포함될 수있다. 시판 절임 중에는 질산 소금, 아질산 소금이 많아 특히 엽채류가 가장 높았고, 근채류, 과채류의 순이었다 취지의 보고가 있다. IARC 발암성 위험 목록에서 '아시아식 야채 절임 (Pickled vegetables (traditional in Asia))'가 Group2B (사람에 대한 발암성이 의심되는 (Possibly Carcinogenic) 화학 물질, 혼합물, 환경)로 취할 수다 . 아시아 식 야채 절임은 중국, 한국, 일본의 전통적인 절임을 의미하고, 낮은 농도의 니트로사민 등이 검출된다. ”


출처 : http://ja.wikipedia.org/wiki/%E8%85%B8%E5%86%85%E7%B4%B0%E8%8F%8C#.E5.96.84.E7.8E.89.E8.8F.8C.E3.81.A8.E6.82.AA.E7.8E.89.E8.8F.8C

이런 문제는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재배나 유기농이나 모두 빗겨갈 수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유기농과 관행농 재배간 아질산염 잔류량은 차이가 없거나,
외려 유기농이 경우 더 많다고도 한다.
이 모두 인간의 욕심은 유기농 농민이든 관행농 농민이든 하등 다를 바 없음을 증거한다.

내가 지켜보는 이가 하나 있다.
그는 유기농을 한다고 수년간 별 일을 다 벌였다.
잔사물을 일일이 작두로 썰고, 미생물을 넣어 퇴비를 장만하고,
낙엽을 모아 밭에 덮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어디서 그리 주워 모았는지 좋다는 액비는 다 만들면서 실험을 한다.
그런데 그가 최근 토양검정을 받았다.
그 결과를 보니,
칼륨, 마그네슘은 그다지 높지 않고, 칼슘은 좀 많아 보인다.
칼슘이 많은 것은 관련 제재 액비를 많이 만들어 넣은 결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유기물 27(g/kg), 유효인산 860(mg/kg)이 눈에 띈다.
제 아무리 그리 노력하였어도 유기물 함량이 높지 않다.
이는 유기물을 폭삭 삭혀 넣었음이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산이 많은 것도 그리 부산을 떨며 영양분을 집중 투여 하였으니,
잔류분이 적지 아니 남았다.
관행농 못지않은 수준이다.
그가 이런 식으로 계속 농사를 지으면,
종국엔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농과 다름없이,
영양 과투입으로 밭을 버리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모름지기 이런 류의 작법은 단방, 단기적으로는 세상의 인심을 따르는 성과를 낼 수 있겠지만,

항구적인 삶, 온전한 밭, 아름다운 식물의 생태(生態)는 기대할 수 없다.

 

난 그에게 탄질율에 대하여 공부를 해보라 권하고 싶다.

탄소와 질소를 어찌 쳐다볼 것인가,

한 소식 얻으면 그의 태도는 한결 원만해지리란 기대가 있다.

기실 탄질율에 대하여는 별도의 주제로 다뤄야 할 문제이다.

이를 제대로 꿰면 농부의 수준은 몇 단계 높아지리라.

내가 앞에서 준비한 탄질율 계산기는 아무 것도 아니다.

얼마 더하기 얼마면 몇이 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함의(含意)를 찾아내어,

저들의 비밀 정원에 일원으로서 합류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앞에서의 이런 식 방법은,

게다가 문제가 더 따른다.


년년세세 삭힌 거름을 주게 되면 더 이상 식물들이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일년생 푸성귀 따위라면 당년도에 셈을 치루고 끝내니 차라리 좀 낫지만,
나무라면 문제가 한결 커진다.
나무는 밭을 옮겨 가며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니 고스란히 농부가 마련한 환경 조건에 매이게 된다.


차라리 거친 환경이라면 스스로 이겨내려고 뿌리도 강인하게 뻗어 내리고,
줄기도 굳세게 자랄 터이다.
하지만 농부가 입(손)으로 삭힌 양분을 떠먹이는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도대체가 더 이상 애를 쓸 이유가 없다.
뿌리도 약하고, 줄기는 거죽으로 허우대만 멀쩡하지 무르다.
이에 따라 병충해를 이기는 내성을 키울 기회를 잃고 만다.

 

유기농 한다는 이들을 지켜보면,

이에 따라 년년세세 병해충 방제를 한다고 부산을 떤다.

물론 친환경 제재 운운하며 갖은 정성을 다 기우린다.

하지만, 관행농 못지 않은 욕심 때문에 병도 많고 충도 많이 생겼다고 나는 진단한다.

유기농이 그리 좋다면 병은 왜 생기고 충은 왜 들끓는가 말이다.

당연 삭힌 거름이 화학비료 못지 않게 땅이나 식물에게 득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견 거죽으로는 잘 자라는 양 싶지만,

인간이 곁에서 부축하고 떠먹였기 때문이지,

체력 자체가 건강해진 것은 아니다.

 

제왕(帝王)이 피둥피둥 살이 쪘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다.

거죽으로는 그럴싸 하지만,

필경 살도 무르고 뼈도 약할 터이다.

거죽 만으로 실체를 재단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만약 퇴비를 주더라도,
가령 삭히지 않은 거친 것을 그대로 주게 되면,
당장은 표가 나지 않겠지만 서서히 분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에게 공급이 된다.
이게 한 해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되풀이 되면, 1차 년도 2차 년도 ...에 이르면,
수년 전에 넣어진 퇴비가 올해에 작용소(作用素)로 기능하게 된다.
이리 되면 장기간에 걸쳐 투여된 퇴비가 자연스럽게,
계차(階次) 또는 축차(逐次)적으로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토양 중 미생물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해충과 익충 간에도 자연스런 균형이 잡혀간다.
소동물, 중동물도 한 자락 터를 차지하고는 제 생명을 영위하게 된다.

이 정도면 거지반 산림의 환경 조건과 근사(近似)해진다.
만약 퇴비까지 주지 않는다면 더욱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의 경우엔 퇴비 대신 풀을 자유롭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퇴비를 주지 않아 염려스럽다는 세상 사람들의 지적도 빗겨갈 수 있다.

이 방법은 한두 해에 완성이 되지 않는다.
최소 5~6년은 지나야 조금씩 성과가 나타난다.
아마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근 10년은 걸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이를 인내할 농민이 있겠음인가?
하지만 온 밭을 이리 하지 않는다 하여도,
뜻만 있다면 조금씩 시도는 해볼 수 있으리라.

우리 밭은 미구에 도시 터자리로 변신될 것이다.
근처는 작년에 전철 공사가 개시되어 5년 안에 완공이 된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밭에 서있는 한,
당장 내년에 집이 들어선다고 하여도 나는 이 길을 갈 것이다.

몇몇 의문스런 점은 있는데,
이는 앞으로 지켜보며 도리를 찾아가야 하리라.

가령 기적의 사과 기무라씨의 밭의 경우,  

흙을 깊이 파내려가도 검은색의 유기물이 많은 흙이 나온다.
내 경우 풀을 그냥 내버려 두고 땅을 지켜보아도,
풀이란 게 그냥 녹아버려 축적되는 양이 극히 적다.
십년이 지난다한들 과연 기무라씨 밭처럼,
두터운 유기물 층층 땅이 되리란 전망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가진 문제 의식 가운데 이 부분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초 우드칩 같은 것을,
밭에 퍼부어 인위적으로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리라.
하지만 이런 외부 투입 농법은 내 농철학으론 사뭇 꺼리는 바임이라,
마냥 따르거나 남에게 권장할 수 없다.

나의 경우 초기에 우드칩 멀칭은 해주었지만,
땅이 경사가 졌기에 실어 나르는 일이 여간 고댄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 이후엔 욕심을 재웠다.
다만 유심히 관찰하며 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면,
농장 조성 초기에 한하여 마땅한 도리를 따를 수는 있겠다.

요즘엔 풀을 다루는 법이 한결 익어,
이들로써 이 문제도 팔 내지 구성(九成)은 능히 애돌아갔다 자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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