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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일우(道之一隅)

소요유 : 2019. 8. 17. 19:54


도지일우(道之一隅)


나는 한비자를 사모하여,

이를 배우길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나,

워낙 천성이 둔하고 어두워 미처 다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너무도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허나, 그렇다한들, 한비자가 모두 옳다거나, 

세상의 도리를 온전히 다 밝힌 것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내가 아무리 예수를 좋아한다한들, 예수교도가 되지 않았고,

부처를 사랑한다한들, 불교도가 아닌 것은,

이들이 온전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아니, 혹, 온전하지 않다고 여기든 간에 상관없이,

坐井觀天이라,

실로 내가 식견이 좁아,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볼 정도의 위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건방지게도 저들을 무시하며, 교만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부족함을 아는 겸양의 태도에 기인함임이라.


하기에, 이런 말이 전해지지 않던가?

以筦窺天,以蠡測海,以筳撞鍾豈能通其條貫?

(東方朔 答客難)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 표주박으로 바다를 가늠하며, 산가지로 종을 치는 격이니,

어찌 능히 세상의 이치를 통할 수 있으랴?”


夫道者體常而盡變,一隅不足以舉之。曲知之人,觀於道之一隅,而未之能識也。故以為足而飾之,內以自亂,外以惑人,上以蔽下,下以蔽上,此蔽塞之禍也。

(解蔽)


“무릇 도란 것은 상(常)을 체로 하여, 변화를 다하는 것인데,

한 모퉁이로는 도를 들 수는 없는 것이다.

제대로 아지 못하는 사람은 도의 한 부분만 관찰하여, 

능히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함인데도, 족하다 여겨 꾸며서는,

안으로는 스스로 어지러워지고,

밖으로는 사람들을 미혹 시키고, 

위는 아래를 가리고,

아래는 위를 가리는데,

이를 가려 막히는 재앙이라 한다.”


아아, 그러함이니,

나의 가림(蔽)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순자(荀子)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음이다.


昔賓孟之蔽者,亂家是也。墨子蔽於用而不知文。宋子蔽於欲而不知得。慎子蔽於法而不知賢。申子蔽於埶而不知知。惠子蔽於辭而不知實。莊子蔽於天而不知人。故由用謂之道,盡利矣。由欲謂之道,盡嗛矣。由法謂之道,盡數矣。由埶謂之道,盡便矣。由辭謂之道,盡論矣。由天謂之道,盡因矣。此數具者,皆道之一隅也

(解蔽)


“옛날에 빈맹(賓孟, 전국시대, 제후국을 오가는 游士를 뜻함.)이라는,

폐자(蔽者, (세상을, 진리를) 가리는 자)가 있었는데,

난가(亂家)가 이들이다.”


묵자는 실용에 가려, 문식(文飾)을 아지 못했고,

송자(宋鈃)는 욕심에 가려, 득중(得中)이라, 그 알맞음을 아지 못했고,

신자(慎子, 愼到)는 법에 가려, 현명함을 아지 못했고,

신자(申子, 申不害)는 세(權勢)에 가려, 지혜를 아지 못했고, 

혜자는 허사(虛辭)에 가려, 실을 아지 못했고,

장자는 하늘(자연)에 가려, 인도(人道)를 아지 못했다.

그런즉, 실용만 따라, 도(道)라 이른다면, 이익만을 다하게 되고,

욕심만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면, 한껏 욕심을 부리게 되고,

(※ 嗛 : 원숭이나 다람쥐 등이 먹은 것을 일시 저장해 두는 양쪽 볼 안의 협낭(頰囊).)

법만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면, 술수만 다 펴게 되고,

세(權勢)만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면, 편의주의만 다하게 되고,

허사만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면, 논설만 다하게 되고,

천지자연만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른다면, 근원(근본원인)만 다하게 된다.


이런 몇 가지 거론한 것들은,

모두 도의 한 모퉁이일 뿐이다.


아아, 皆道之一隅也。

이 말씀에 이르러, 순자는 과연 품격이 고상한 분임을 알 수 있음이다.

가령 맹자는 묵자를 두고, 이리 사납게 공격하였다.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橫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楊氏為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

(滕文公)


“성왕이 나오지 않고, 제후가 방자해지고, 처사가 논쟁만 일삼고, 

양주와 묵적의 말만 천하에 가득 찼다.

천하의 말이 양주에 돌아가지 않으면(귀속), 묵적에게 돌아갔다.

양주의 위아(爲我)는 곧 군주를 부정하는 것이요,

묵적의 겸애(兼愛)는 아비(부모)를 부정하는 것이다.

군주와 아비를 부정하는 것은 곧 금수와 다름이 없다.”


그러함이니 순자의 皆道之一隅也。

이 말씀은 그가 제자백가를 난가(亂家)라 하였으되,

일정 분, 그 뜻을 인정하고 있다 하겠다.

사뭇 점잖은 지적의 말씀이다.


하기사, 백가(百家)가 쟁명(爭名)함에,

어찌 다툼이 없을쏜가?


이 다툼을 통해 절차탁마 제 사상을 정련하고,

이치를 궁리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것.

허나, 그 가운데, 

道之一隅란 말씀은 얼마나 의연한가?


물론 각론에 들어가면,

각 파에 대한 순자의 비판 역시 준엄하다.

허나, 이 말씀의 씨앗이란, 얼마나 품위가 있는가?


이 말씀 앞에 서자,

막혔던 마음이 가을 하늘처럼 가벼워지며, 

빈손처럼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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