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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소요유 : 2020. 2. 1. 16:43


가짜뉴스


정보는 최첨두에 서서 처음으로 접한 이가 있으며.

이로부터 뒤늦게 전달받는 이가 있다.


따라서 정보 전달에 있어서는 지연이라는 문제가 늘 내재되어 있다.

(※ 이에 대하여는 propagation delay, transmission delay, processing delay 등의,

 보다 엄밀한 구분이 따른다. 허나, 이게 지금 논의의 본질적인 게 아닌즉, 넘어간다.)

정보이든 일반 파동이든 매질을 통해 전해진다.

전후간 이 정보를 접하는 이들 사이엔,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는데 있어,

전파 시간적 차이 외에, 신뢰 확인(물리적 전파 수신) 감수성 정도에 따라서도 차이가 생긴다.


환언하면, 정보 도달의 시차, 그리고 인식 지연에 따라,

사태 해석 공간에 무늬진 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헌즉, 이 파동이란 곧 우리네, 현실 공간의 다양한,

곡절, 사연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곤 한다.


거꾸로 이를 제대로 알면,

언제나 제 인식에 대한 겸양과,

판단의 신중함이 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네 정치판을 보면,

상대가 전하는 정보는 무작정 가짜뉴스라 단정하며,

상대를 질타하고, 지지자의 내적 결속을 도모하고 만다.

아주 찌질한 태도이다.


정보라는 것이 전달과 인식에 있어,

물리적 한계와 변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피아간 그 어떠한 정보이든, 

매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바르게 수용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헌데, 보진(保進) 가리지 않고,

어느 매체를 들어가 확인커니와,

모두 스테레오 타입에 빠진 인간 유형을 너무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이것은 거지반 사이비 종교에 든 광신도를 방불케 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아닌, 뻔히 보이는 사실 앞에서도,

상대를 무조건 폄훼하고, 우리 편은 선이라 감싸는 이들을 많이 본다.

거의 저들은 병자들이다.


역겹다.

가엽다.


뽕이라도 집단으로 맞았단 말인가?

우중(愚衆)이라,

정말로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석달 열흘 굶다가,

보리 개떡 한 조각이라도 저들로부터 얻어 먹었단 말인가?


거지인가?

인격이 허물어진 허수아비인가?


헌데, 요즘 희한한 일이 툭하면 벌어진다.

대통령 하나가 있어, 시민들을 향해 연신 가짜 뉴스에 속지 말라 이르고 있다.

이것은 내로선 여간 생소한 주문이 아니다.


하소연인가?

단말마의 비명인가?


문 대통령은 특히 "방송의 공적 책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가짜뉴스나 불법유해정보로부터 국민을 지키고 미디어격차를 줄이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출처 : viewsnnews)


문 대통령은 특히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과도한 불안감, 막연한 공포와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며 "특별히 가짜뉴스에 대한 엄정한 대응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출처 : viewsnnews)



流丸止於甌臾,流言止於知者。

(荀子 大略)


“구르는 구슬은 종지(작은 사발) 안에서 멈추며,

유언비어는 지자를 만나면 그치게 된다.”


가짜뉴스는 시민들에겐 늘 흘러 다니고 있던 바이며,

기실 이를 걱정할 것은 시민이 아니라,

수권자, 정책 결정자야말로 스스로 그 진앙(震央)이 아닌가?

이리 되집어, 삼가고 근신하며, 

사뭇 경계하여야 할 일이다.


나랏일의 판단 주체는 저이이기에,

진짜와 가짜를 잘 분별하여 옳은 판단을 내리며,

일을 그르치지 않을 책무는 저들에게 있는 것이다.

결코 시민이 아니다.


만약 위정자가 곧다면,

구슬은 종내 종지 안에서 구르기를 그칠 것이다.

헌데, 왜 매양, 구슬이 구른다 걱정을 늘어놓고 있는가?

그것도 시민 때문에.


이즈음 시민들은 허약하지 않다.

댁들 위정자처럼.


시민들은 배움도 크고 넓다.

염려할 아해가 아니다.


저들 위정자는,

심약한 것인가?

허물이 많아 두려운 것인가?


옛적, 어느 날, 대신 하나가 있어, 변방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그는 떠나기 전 왕께 약속을 구한다.

자신이 떠난 뒤 그 어떠한 빌미로든,

자신을 믿을 일이지,

귀 얇게 속아, 

나를 가볍게 소환하지 말아 달라 청한다.

아니면, 나는 아니 가겠다 선언하였다.

이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후, 쏟아질 모함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떠난 후, 그를 참소하는 자가 많이 나타나,

그는 위험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운이 좋아, 왕이 약속을 지켜 그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일찍이 왕충은 논형(論衡)에서 삼누삼해(三累三害)를 논했다.


凡人操行,不能慎擇友,友同心恩篤,異心踈薄,踈薄怨恨,毀傷其行,一累也。人才高下,不能鈞同,同時並進,高者得榮,下者慚恚,毀傷其行,二累也。人之交遊,不能常歡,歡則相親,忿則踈遠,踈遠怨恨,毀傷其行,三累也。位少人眾,仕者爭進,進者爭位,見將相毀,增加傅致,將昧不明,然納其言,一害也。將吏異好,清濁殊操,清吏增郁郁之白,舉涓涓之言,濁吏懷恚恨,徐求其過,因纖微之謗,被以罪罰,二害也。將或幸佐吏之身,納信其言;佐吏非清節,必拔人越次。迕失其意,毀之過度;清正之仕,抗行伸志,遂為所憎,毀傷於將,三害也。夫未進也,身被三累;已用也,身蒙三害,雖孔丘、墨翟不能自免,顏回、曾參不能全身也。

(論衡)


요지인즉슨,

향리(三累)와, 조정에서(三害),

소인들로 인해, 아무리 바르고 곧은 현인이라 한들,

누와 해를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바로 알고,

제대로 인사를 하는, 해야 하는 이는,

임금 말고는 없다.

임금이 책임 주체란 말이다.


헌즉 오늘날로 치자면,

대통령이 매양 남 탓을 할 일이 아니라,

정작은 자신이 가짜 뉴스에 속지나 않고 있는가 점검하여야 할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그 가짜 뉴스 생산자가 아닌가 살피는 것이 먼저이다.


웬 놈의 걱정이 그리 많기에,

그리 연신 가짜 뉴스 운운하며, 

시민들에게 속지 말라 주문을 하고 있음인가?

시민들이 그리 어리석은가?

시민을 시험하지 말라.

그대는 감히 시민을 자주 노엽게 하지 말지라.


속담에 도둑이 제 발 저리다 하였음이다.


動百行,作萬事,嫉妬之人,隨而雲起,枳棘鉤掛容體,𧔧蠆之黨,啄螫懷操,豈徒六哉?六者章章,世曾不見。夫不原士之操行有三累,仕宦有三害,身完全者謂之潔,被毀謗者謂之辱,官升進者謂之善,位廢退者謂之惡。完全升進,幸也,而稱之;毀謗廢退,不遇也,而訾之,用心若此,必為三累三害也。

(累害)


“여러 일을 하다 보면, 질투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따르는 법이다.

탱자나무 가시에 몸이 찔리고, 전갈에게 독침을 맞는 것과 같으니,

어찌 삼누삼해에만 그치랴?

삼누삼해는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를 못하누노.

대저, 삼누와 삼해가 있음을 아지 못하고,

이를 당하지 않으면 고결하다 여기고,

비난을 당하면 욕되다 생각한다.

승진을 잘하면 훌륭하다 여기며,

쫓겨나면 그릇되다 판단한다.

비난 받지 않고 승진한 것은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며,

비방을 받고 쫓겨난 것은 불운할 뿐인데도 경멸당하고 만다.

이런 생각은 모두 삼누와 삼해를 더욱 조장한다.”


나는 지난 박근혜 탄핵 당시 도합 열 세 차례 광화문에 나아갔다.

헌데, 통칭 촛불정신을 이어받았다는 이번 문가 정권에서,

왜 이리 세상이 어지러운지 모르겠다.


과연 제대로 촛불정신을 이어받았다면,

문은 왜 이리도 가짜 뉴스를 매양 걱정하고 있음인가?

혹,

그저 스리슬쩍 어부지리로 전리품을 챙기지나 않았는가?

나는 초기 의심 단계를 넘어, 이젠 확신에 이르렀음이다.


기실 삼누(三累)를 일으키는 당사자는,

패권 패거리들의 농간 때문이며,

삼해(三害)는 집권 청와대 인사들이 그 원인이 아닌가?

시민들을 훈육하고, 탓하기 전에,

실인즉, 자신들에게 과오가 없는가 되우 반성하는 것이 먼저다.


그러함인데, 어이하여,

문은 입만 열었다 하면,

남을 탓하며 시민들에게 가짜 뉴스를 조심하라 이르고 있음인가?


과시 해괴하기 짝이 없는 언사라 하겠음이다.

가짜 뉴스란 말은 위정자가 남발할 것이 아니다.

설혹 가짜 뉴스가 시민 사이에 횡행한들,

바르고, 곧은 일 처리로 이를 무질러 버릴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마치 불이 검불을, 갈대밭을 태우듯,

자신이 옳다면, 파사현정(破邪顯正)

그리 당당하니 나아갈 일이다.


무엇이 오금 저리기에 툭하면,

그리 경박한 언사를 늘어놓는가?

장관이 그리 하여도 눈살을 찌푸릴 일이며,

하위 공무원이 그리한다면, 

야살 맞을 놈이라 질책이라도 하겠구먼.


도시,

시절이 수상키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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