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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로

소요유 : 2020. 8. 10. 12:50


‘민족 중의 아주 오랜 관습 중에는,

우리에게 마치 경고와 같이 작용하는 관습이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는 것을 받아드릴 때, 

욕심 부리는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관습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지에게 선사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 - 일방통행로)




우리 어렸을 적에는,

소풍 가서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산하에 먼저 바치고는 나중에 들었다.

이것을 흔히 고수레라고 한다.


이 풍속은 동북아 민족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유럽인들에게도 있었다.

민족 사학자들이라면,

흔히 그러하듯, 이를 근거로,

우리 민족이 서쪽으로 넘어가 뿌리를 튼 사례라 이를 수도 있겠다.


여기 북쪽 지방에 자라는 블루베리의 경우,

수확 후기에 접어들면 미숙과나, 열등과들이 가지에 남아 있게 된다.

이들은 시간이 나면 훑어, 잼이나 술을 담그면 좋다.

하지만, 그 때쯤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들이 닥치기 때문에,

대개는 물러터지고, 종국엔 땅에 떨어지고 만다.


따지고 보면 저것이야말로 sun power 바로 태양의 에너지가 응축된 것임이라,

땅으로 돌아가, 귀근(歸根)하여 식물체 생활의 자량(資糧)이 되리라.

이것은 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질소분 비료가 아니라,

고귀한 탄소 비료로 작용하게 된다.


헌즉 다 인연 따라 흘러가는 법.

크게 아쉬워 할 바 없다.

덕분에 농부는 지친 몸을 쉬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


현대 농법은,

아낌없이 남은 한 톨까지 거두어,

장에 내다팔아 돈을 거머쥐어야 하기에,

삼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쥐어짜 취한다.


신화 속 영웅이나, 귀신에게,

헌작(獻爵, 獻酌)하며,

분향(焚香), 독축(讀祝)하는 풍속은 이미 스러져 버린 형편이다.


어쩌다 한다한들,

끼리끼리 모여 히히덕거리며,

쇼 하듯 흉내나 내다 말 뿐이다.


영웅이 있어 헌작(獻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실은 헌수(獻酬)한 즉, 귀신이 현신(現身, 顯身)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이 의식이 끊긴 현대엔,

더 이상 영웅이 나타나지 않고,

신령스런 신도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권력과, 힘, 돈이 들어와 메꾸고 있다.

하여 사람들은 더욱 영악해지고, 악바리가 되고 말았다.


古人亟於德,中世逐於智,當今爭於力。

(韓非子)


‘옛 사람은 덕을 중시하였으며, 중세에는 지혜를 쫓고, 

지금은 힘을 다툰다.’


이러함이니,

토양은 수확이 끝나면,

양분 균형이 깨지고, 

굿 끝난 무당년 앞마당처럼 황량해지고 만다.

하지만, 농부는 걱정이 없다.

다시 우분, 돈분 트럭으로 갖다 붓고,

이도 모자라면 다시 화학비료를 듬뿍 넣어주면 그 뿐이다.


하여 나는 이를 진작부터 일러 리셋농법이라 명명하지 않았던가?

(※ 참고 글 : ☞ reset 농법)

밑바닥까지 훑어내어 씨를 말리고서는,

다시 물량을 처넣어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간이 좋기도 하다.


‘그러한 땅은 빈곤해지고, 토지는 형편없는 수확을 내게 될 것이다.’


벤야민은 이리 말하고 있지만,

영악한 현대의 농부는 화학비료의 힘을 믿기에,

염려를 하지 않는다.

다만 돈 들어갈 걱정만 한다.


영웅이 떠나가고, 신이 사라진 땅이지만,

다시 처넣고 물건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리 이지러진 환경이기에 병충해가 창궐한다.

하지만 이 또한 농약의 힘을 빌어 억눌러 버리면 그 뿐이다.


실로 영웅, 신이야말로,

바로 이들인 것이다.

하지만, 몇 곱은 더 흉악하기 짝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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