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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F(Reality creation field)



RCF(Reality creation field)

내가 근래 명리학(命理學)을 다시 뒤적거리고 있는데,
이것으로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다.

흔히 명리라 하면 인간의 숙명내지는 운명을 밝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숙명(宿命)은 운명(運命)과는 다른데,
전자는 묵은(宿) 명이니,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다.
자기 이전에 달의 절구질로 빚어지고, 별의 오랏줄에 묶여,
지상에 내던져진, 벗어날 수 없는 그물망 안의 질서라 하겠다.

그러나 후자는 명이 운(運)행하는 것이니,
자신의 의지로, 자유 선택 행위로 개척해낼 여지가 있다.

명리(命理)란 그런즉 이런 명(命)의 이치(理)를 궁구한다는 뜻이다.

나는 저들 방법론의 치밀한 구성학적 접근 태도와,
그로써 구축된 얼개가 뿜어내는 미학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로써 명운을 과연 제대로 밝혀낼 수 있다는 저들의 믿음엔,
진작부터 회의적이었다.

도대체가 통칭 사주팔자(四柱八字)로 개인을 구속 시키고마는,
어설픈 전제 자체를 아무리 해도 도저히 믿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명운을 518,400으로 분류한다 할 때,
그 제한된 분류 분해능(分解能, resolution)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역학적(曆學的) 시간축에 금을 긋고,
전후를 순간적으로 지나는 개별체를 달리 본다는 그 태도가,
너무도 임의적이며 불성실해보였기 때문이다.

아아,
그렇지만, 셈틀로서 무엇인가를 셈하려고 할 때,
필연적으로 이런 허구와 우연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무엇인가 궁구하려 할 때,
인간이 처음 만나게 되는 원초적인 한계 조건이 있는 것이다.

오리는 발가락 사이에 갈퀴가 있지만,
사람은 손가락 하나하나가 떨어져 있기에,
그 사이를 셈할 수 없다.
셈할 수 없으면 놓치게 된다.
이게 인간의 한계이고,
명리학의 한계이다.

생각해본다.
가령 디지털(digital)에서 0~0.5V를 0으로, 0.5~1V를 1로 본다 할 때,
0.5V 그 경계를 아슬아슬 지나는 경우엔 어찌 처리해야 하는가?
실제 디지털 공학에선, 이게 이론뿐 아니고, 실용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할 아주 단순한 접근은,
분해능 정도(精度, precision)를 더 높이는 것이다.

물론 기기 설계 시 애초부터,
예시컨대 0~0.5V를 0~0.4V으로, 0.7~1V 등으로 threshold voltage를 설정해두는 것이지만, 
정도를 높이는 데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즉, (0, 1) -> (00, 01, 10, 11) 이런 식으로, 
차열(次例, order)을 하나 더하면 정도를 높여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멱승(冪乘, involution)을 거듭하여,
22, 23, 24, 25, 26 .....
분해능을 급히 높일 수 있다.
오늘날 이 방면에 성과를 내고 있는 게, 디지털 공학이다.

이런 정도는 기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 공학의 급격한 발달로,
물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물리 세계에서 이를 뒷받침할 실력이 없었다면, 
꿈에 머무르며 주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가령 4bit, 8bit, 16bit, 32bit, 64bit, 128bit, ....
이런 눈이 돌아갈 정도의 변전은,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

헌데, 명리학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주팔자 이 분해능 안에 갇혀 있다.
그러니 늘 골목길에 역점 깃발 달고서,
애매한 모습으로 과거를 씹으며, 오늘을 눙치며 살아갈 수밖에.

주역도 누천년 이래 64괘 안으로 수렴되어 있다.
때론 초씨역림(焦氏易林)처럼 괘를 거듭 중첩하여 212로,
경우의 수를 늘린 재미있는 시도를 하기도 하나,
기술적으로 그 이상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저게 무용한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앞에서 명리(命理)란 명(命)을 대상으로 하여, 이치(理)를 궁구한다 하였는데,
만약 명(命)을 규명할 대상 일반으로 확장하면,
그로부터 새로운 지평이 열리며, 인지(人知)를 한껏 넓힐 수 있다.

명리(命理)에서,
命을 숙명이나 운명으로 보아도 좋으나,
이제 분류, 판단 대상으로서의 사물 일반으로 확장하면,
새로운 비판적 세계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어쨌건 고인들은,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고심참담 저런 엄청난 분류학, 계통학, 인식론적 방법론을 구축해낸 것이다.
이것은 여전히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주팔자 그 자체는 임의적이지만,
그런 분류는 마치 생물학의,
역(域, Domain), 계(界, Kingdom), 문(門, Phylum, Division), 
강(綱, Class), 목(目, Order), 과(科, Family), 속(屬, Genus), 
종(種, Species)처럼 제법 체계적이다.

게다가 이를 오행(五行), 천간(天干), 지지(地支) 등,
동양의 전통적 범주학(範疇學)을 빌어 세밀하니 분류(classification)하고, 조직하여,
세상을 아니 세상을 보는 창문을 열었다.

나는 여기에 깊은 감동을 하고,
저들의 간절한 정성과 희구(希求)를 엿보며, 
희망을 건져 올린다.

사물을 계통적으로 분류하고, 연역적 체계 안으로 통섭하여,
질서를 세우고, 해석, 판단하는 틀을 구축하였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인간의 지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제 인간의 명운만이 아니라,
사물 일반에 대한 이치를 탐구할 때,
저들의 방법론, 사물에 대한 인식 태도 등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는 갖는다는 것이다.

흔히 命理라 할 때, 命은 숙명, 운명 등으로 이해하는데,
나는 命을 이리 좁게 제한하지 않고자 한다.
命은 곧 取定이라 보아,
그 학적 대상을 넓히고자 한다.

즉,
命名이라, 곧 이름을 정하는 것이요,
命题라, 어떤 사물에 대한 판단 내용을 언어, 기호, 식 등으로 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해석, 판단하고자 하는 문제 대상은 모두 命이다.

民受天地之中以生,所謂命也,是以有動作禮義威儀之則,以定命也。

전통 명리학에서 命을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는데,
나는 이제 이를 하늘로부터 해방하여, 
인간 자신의 문제로 바르게 환원하였다.

令者、發號也。君事也。

하늘이 인간에게, 
또는 임금이 신하에게 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발하는 자각 형식을 갖춘,
모든 문제 대상 사물은 다 命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명리학은 비로소,
천명(天命)이 아니라 인명(人命) 나아가 물명(物命)의 학문으로 새롭게 조명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기엔 너무 이르다.

사람은 말이다.

별의 오랏줄에 갇히기엔 너무 아까운 존재다.
달의 절구질로 빚어진 존재란 믿음은 허구다.

이런 기개가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별이 되고 달이 되어, 자유롭게, 
구름을 타고 성간(星間)을 유영하는 자재(自在) 보살이 되어야 한다.

義者,即是如來常住不變;智者,知一切眾生悉有佛性;了義者,了達一切大乘經典。
(大般涅槃經)

불교는 실로 위대하다.

모든 종교가 신을 구할 때,
오직 홀로 인간을 노래하였다.
종내는 인간을 넘어 사물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개발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두고,
애플컴퓨터의 Bud Tribble는 이런 말을 하였다.

(※ 출처 : thehindu)

Reality distortion field(RDF)

이 말은 스타트렉(Star Trek)에서,
외계인이 정신력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창조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 에피소드에서 유래했다.

잡스의 카리스마가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는 능력을 말한다.

여긴 카리스마뿐 아니고, 매력, 허세, 과장, 마켓팅, 회유, 끈기가 교합되어 있다.
동료들의 현실 감각을 왜곡하고, 
불가능하게 믿는 것을 가능하게 믿게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마치 물리학의 중력장(gravity field),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는 잡스에게만 발휘되는 능력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별이고 달이다.

그런즉,
저 전통 명리학에서 말하는 별에 구속된 존재가 아니라,
그냥 개별적 고유한 별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말이다.

Reality distortion field를 넘어,
Reality creation field(RCF)의 주체인 것이다.

명리학을 배울 때,
이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되고 만다.

조만간 눈 여겨 두었던 명리학 책을 주문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 팔자를 따지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애오라지 사물을 분류하는 저들의 작법 원리, 태도,
그리고 이들을 교직하는 방법에 착안하여 공부해갈 요량이다.

아마, 이러면 속도가 좀 나기도 할 것이며,
때론 그 원리를 참구하다 보면 외려 더딜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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