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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물(忘憂物)

소요유 : 2025. 8. 19. 15:18


어떤 정치 평론가 하나 있어 이리 말했다.

'대개의 정치인은 정치를 위해 술을 먹는다.
하지만, 윤석열은 술을 먹기 위해 정치를 했다.'

이것 얼추 그럴싸 하게 들리는가?
대중은 이런 말을 깊은 생각없이 그저 옳타구니 하고 소비하고 만다.
하지만 술에 집중하면 저 말은 문제가 많다.
술은 수단, 정치는 목적인 양 셋팅이 되고 만다.
술은 고약한 것으로 전락하고, 정치는 마냥 옳은 것이 되고 만다.

술을 두고 옛사람들은 망우물(忘憂物)이라 하였다.
오늘날 세태를 보면 정치가 엉망이기에,
대중은 한 잔 술로 시름을 달래고 있다.
술은 나쁜 것이 아니라,
대중의 고통을 잊고, 시름을 삭이는 벗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만약 술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미쳐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외려 정치가 나쁜 게 실제 현실이다.

아아,
일취천일(一醉千日), 취중팔선(醉中八仙)이라 하였음이라,
술처럼, 선악, 시비를 여읜 경계를 노니는 신선이 또 어디에 있으랴?

나는 저 부박스런 평론가의 얕고 가벼운 말,
그저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동을 대하고 감상 하나를 일으켰다.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 가운데 하나인 목적-수단 정식이 생각나는 글이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서 대하고,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하라."

그런데 말이다.
그가 말한 '윤석열은 술을 먹기 위해 정치를 했다.'에서,
간과해서는 아니 되는 사실이 있다.
윤석열에게 있어, 애초 술은 종교보다 더 깊고, 사랑보다 더 강한 목적이었다.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정렬,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사랑이었어라.
하지만 팔자에 없는 검찰, 대통이 되자,
줄곳 그리 살지 못하고, 중도에 허리가 두 동강이나 변절하고 추하게 타락해버렸지.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힘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

主人何為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주인이여, 어찌하여 돈이 적다고 말하는가,
당장 가서 좋은 술을 사 와 그대들과 마시리라.
오색무늬 말과 천금짜리 갖옷을,
아이를 시켜 가져가 좋은 술로 바꾸어 오게 하여,
그대들과 함께 만고의 근심을 녹여보리라.

이태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이리 노래했거든.
그런데 그는 1300 년 흐른 지금에도 주선(酒仙)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데,
어이하여 윤가는 주망팔(酒亡八)로 지탄을 받고 있는가?

그의 주장대로 윤석열은 술을 먹기 위해 정치를 했기에 망한 것이 아니라,
술 처먹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에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다.
술꾼은 말이다.
술 외엔 다른 일은 다 부질없다고 생각하거든.

볼래?
이태백은 촉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서래인 특히 이란 사람이란 설도 있다.
하여간 촉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커서는 천하를 유랑했다.

42세엔 당현종의 부름을 받아, 한림학사가 되었다.
하지만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2년 만에 직을 버리고 다시 유랑을 떠난다.
그 동안 주옥같은 시를 지어내었지.
생긴 외모도 한인과 다르지,
생각하는 바도 여늬 정치인과 다르게 권력에 초연하지,
어찌 저들 무리들과 동화되랴?
갖은 모함과 시기에 시달릴 수밖에.

그의 시성, 주선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아?
그에게 정치란 염증을 유발하는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윤가는 술에 집중하여야 할 주가(酒家)의 법도를 잃고,
권력에 놀아나고, 와꾸에게 멱을 잡혀 개노릇을 마다하지 않았어.
그의 말대로 정치를 위해 술을 먹은 게 아니라,
정작은 저 개놀음에 빠져 술을 저버린 것이라 보아야 옳아.

게다가 술을 매개로 정치를 하게 되면, 정치 역시 망하게 되어 있어.
갖은 돈, 계집이 따라 붙으며 정치를 협잡질로 바꾸기 일쑤지.

그가 철저하여 주도를 닦는 일에 매진하였으면,
지금쯤 동방의 이태백은 못 되어도,
최소 저 영어(囹圄)에 갇힌 치욕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지.

그가 정치를 저버린 게 아니라,
정작은 술을 저버린 게 탈인 게지.
술꾼은 결코 다른 것을 수단으로 삼아 술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법이야.
술을 어떤 목적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 
아무리 말통으로 술을 매일 처먹는다 하여도,
결코 주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어.
왜 그런가?
이는 술을 모독하는 짓이거든.

그는 술을 빌어 정치를 한 게 아니라,
정작은 술을 버린 것 그 자체가 문제야.
그는 이태백처럼 정치계를 떠났어야 했어.
그랬다면 감히 시를 짓지는 못했겠지만,
대과없이 술과 함께 여생을 마쳤을 게야.

시경에 보면 이런 글이 있어.
我龜既厭,不我告猶
무슨 말인가 하니,
이 귀절 앞을 잠깐 먼저 풀어내 보지.
...
모두 모여 서로 비방만 하고 있으니, 서글프구나,
여러 계책 중 좋은 것은 모두 어기고,
좋지 못한 것은 따르니 내가 그 계책을 보건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네 이미 거북을 싫어하기에 나에게 길흉을 알려주지 아니하네 ...

점을 칠 때,
그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꾸 다시 치면 어찌 되겠는가?
初筮,告。再三瀆,瀆則不告이라 하여,
처음 물어 얻은 점사를 무시하면, 
다시는 옳은 점사를 알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야.
하니까 거북이가 문복자를 외면해버리고 말지.
再三瀆 이것 점치는 이들의 기본 상식이지.
그렇기 때문에 初筮에 더욱 정성을 다하지.

이렇듯, 윤가는 술을 모독하였은즉, 술로부터 버림을 받고 만 것이야.
와꾸 역시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법사를 갈아 치우고, 점집을 바꿔가며 再三瀆을 일삼았을 게야. 
어찌 거북이로부터 외면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술을 화두로 삼은 수행자들은,
술을 모독하고서는 아무런 성취를 이룰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해.
윤가는 수행은커녕 모독을 해버리고 말았으니,
어찌 술의 신 두강 (杜康)으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을 도리가 있었으랴? ​

이게 칸트의 정식(定式)이자, 주가(酒家)의 법도인 것이야.
윤가는 이제라도 이 법도를 익혀 수행하였으면 좋으련만,
옥 안에서는 술을 구할 수 없으려니, 
빤스로 단련되었은즉 막천석지(幕天席地)라, 벌거벗고 노닐며,
또한 호중일월(壺中日月)이라 하였은즉,
다만 창문에 비추는 달빛을 벗하여 shadow drinking이라도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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