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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견폐요(桀犬吠堯)

소요유/묵은 글 : 2008. 12. 4. 21:21


중국 고대에 오형(五刑)이란 형벌이 있다.
코를 베고, 발뒤꿈치를 자르고, 얼굴에 먹물 글자 새기고, 불알 까고, 때려 죽이고...
그밖에도 포락지형, 도모지, 육장...
지금으로서는 막측의 형벌일 테지만,
인간성의 저 안쪽에선 아직도 잔인한 그 원형질이 꿈틀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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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blog.daum.net/grandbleu/11863360)

며칠사이 거열(車裂)이란 형벌이 눈앞을 어른 거린다.
사지를 묶어 산지사방(散之四方)에서 잡아 당겨 찢어 죽이는 형벌.
머리, 팔, 다리로 분해되는 이를 오분시(五分屍)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몸뚱이까지 六分되는 능지처참(陵遲處斬)의 형이다.

흔히 육시럴놈 할 때의 그 육시가 한자로는 육시(戮屍)로 쓰지만
나는 六分屍로 부러 갈아 듣는다.
실제 육시는 이미 죽은 자의 목을 베는 것이니, 그리 다를 바도 없다.

춘추시대 오월동주의 오나라, 월나라, 그리고 초나라에 얽혀든
비운의 사나이 오자서(伍子胥).
원래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평왕에게 온가족을 살해당한다.
오나라로 망명하여 절치부심하던, 그는 마침내 초나라를 쳐들어가
쑥대밭을 만든다.
그러나, 이미 평왕은 능속에 누워있었다. 
오자서는 평왕의 능침을 헤쳐, 죽은 시신을 꺼내고
채찍질로 어육(魚肉)을 만들어 버린다.
신포서는 이런 오자서의 패악질을 비난한다.
그 때 오자서는 그 유명한 일모도원(日暮道遠) 운운하며
자신은 이미 늙어 시간이 없음이니, 도리를 거꾸로 뒤집어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탄식한다. - 도행역시(倒行逆施)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부인이 여태후다.
여태후는 유방이 죽자 유방의 사랑을 받던 척부인을 가만 두지 않았다.
척부인의 옷을 벗기고 내시들로 하여금 두 다리를 잡아당기게 한 다음,
음부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그리고는 죄수들에게 척부인을 욕보이게 던져놓았으며,
강제로 독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고, 귀에 유황을 붓고 두 눈까지 뽑아버렸다.
더하여, 양팔과 다리까지 잘랐으며, 시체는 똥오줌이 넘치는 변소에 던져버렸다.
이를 사람돼지(人豚) 곧 체인 괴물이라 이르며, 자기 아들인 혜제에게 보인다.
혜제는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는 태후의 아들로서 더 이상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 말하며, 뜻을 잃고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다 결국 요절한다.

이리 사람을 산 채로 돼지로 만드는 세상이 있었다.
머릿 속에 이런 옛 이야기들이 열지어 벌떼처럼 달겨든다.
지금은 산 돼지를 찢어 발긴다.

노자의 天地不仁, 以萬物爲芻拘(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이란 무엇인가 ?
하늘과 땅이 인자하지 않은 것은 자연의 이치이니, 인위를 꾀하지 말라는 뜻이다.
천지의 이치가 인간을 위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오독하면,
인간 마음대로 멀쩡한 국토 배를 갈라 운하를 놓자고 한다든가,
강자독식이니 동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고 새기게 된다.
노자가 不仁함을 말한 것은 곧 잔인함의 용인이라든가
강자지배의 세계 구조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는 다만 人爲를 경계하고 있음이다.
이 순간 천지가 仁하든 不仁하든 그것은 사람의 경계가 아닌 것이다.
노자는 단지 不仁을 말하므로서 仁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일갈하고 있음이다.

천지불인을 들어 제 탐욕을 정당화하고,
강자독식의 세상을 도리없는 세상의 실상으로 규정함은
그야말로 비루한 곡학아세에 다름 아니다.
자연이 불인하다 하였음에 그들은 人爲를 자연이라 의도적으로 오독하여
제 삿된 애욕을 비루하게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맘이 북두 갈고리보다 더 구부러져 흉하고,
탐욕이 승하여 들판을 광인처럼 달려가며,
어디서 주어들은 몇자로 추한 자신을 가리고 있음이다.
참으로 검은 글똥에 치인 一字無學의 어리석은 소치라 할지니, 실로 개탄스럽다.
거기 배움은 없고, 부끄러운 자기기만이 있다.

천지가 不仁함으로서 천하만물이 생육되고 자란다.
만약 편벽되이 仁하다면 어찌 널리 고른 화평이 있으리.
제 자식만 귀여우니,
남이 무엇이 귀할까 ?
강자독식의 편벽된 仁의 세계에선 최후의 하나만이 남는다.
그러하니 저들이 天地不仁을 의젓하니 펴들고 있으나 정작 그는 仁을 말하고 있음이다.
허나, 실인즉 이는 仁조차 아닌 그저 편인(偏仁)일 뿐이다.
인간을 위해 아기 돼지가 찢어질 수 있고,
강자이기에 약자를 잡아먹어도 된다는 것이야말로 편인(偏仁)이니
이로서 어찌 천하가 태평하리.

그러하니 정작은 노자가 말하는 不仁이야말로
기독교의 대애(大愛)요, 불교의 대비(大悲)와 다름이 없다.

저들은 뭇 생명을 유린하여 제 입 맛에 아부하고,
남보다 더 빨리 출세하려고 한다.
재물을 쌓고, 권세를 잡아 남을 짓밟으려 하고,
넓은 땅과 아파트를 소유하고, 예쁜 여인을 구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권태스러울 뿐 아니라,
고통, 슬픔, 기갈, 증오속에서 허덕이고 있음이다.

거리를 걷다가
좁은 우리에 스스로 갇혀 그들 동물들의 아픔을 체험하려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천국이나 구원을 원하고 있음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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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ra 김애리나)

누구의 말씀처럼 천국이나 구원이 없으니 부질없고,
만약 있다면 그럼 달겨들어 기도, 구원이란 상품을 구매하면 된단 말인가 ?

저들처럼 구원이 없기 때문에 악착같이 살고야 말겠다는 각오 밑에는
무저갱(無底坑), 심연의 허무가 있다.
그러하니 저들은 이리 말하고 있다.
“그따위.. 공장제 대량생산식으로 찍어내는 자기기만적인 만족이나 평안이나 행복따위가....
만약 그런 게 천국이고 구원이라면 지나가는 개에게나 주라고하겠네요.
그냥 전 현실을 열심히 살다가 죽음을 맞이 하렵니다.”

저들이 현실을 열심히 살고 싶다고 선언하는 것은
곧 구원부재에 대한 자기실현적 예언이니,
그 기도와 예언은 곧 미래에 대한 자포자기다.
그 포기는 탐욕으로 가득찬 현실에 충실히 복무하고자 함이다.

저들의 저 선언이야말로
허무속에 자신을 던져넣고 마는 처절한 자기비하의 전형이 아니겠는가 ?
그러하니 역설적이게 그는 정작 구원을 희구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저 좁은 우리에서의 시위자는 구원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구원을 세일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유마가 되어 아파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실인즉, 지금 현재, 이 땅에 구원의 실종을 몸으로 실증하고 있는 게다.

나는 그리하여 오늘 저들의 어리석은 마음을 저자거리에 내달아
결연히 우마차로 오분육시(五分六屍)하고자 하노라.
이로서, 그들이 정작 원하고 있는, 구원의 동아줄을 던져 주고자 함이다.

절집 입구에 서 있는 사천왕이란 무엇인가 ?
뒷전에 오롯히 미소 흘리며 앉아 있는 부처는 복전을 혼자 다 차지하지만,
실은 이들 사천왕을 내세워 천하를 조롱하고 있는 게다.
누구라도 그들 발굽에 놓인 피 흘리는 해골이 되지 않는 한,
부처가 미소 짓고 있는 연화대엔 결코 이르지 못한다.

난 오늘 몸소 저 어리석은 마음을
저들 애욕에 젖은 가슴이란 이름의 무덤으로부터
부관참시(剖棺斬屍)하여 오자서가 되고, 또 사천왕이 되고자 함이다.
그리하므로서 부처의 미소를 훔치노라.

걸견폐요(桀犬吠堯)
걸의 개가 되어 요를 향해 짖는 저 무리들.
정작 오분육시되어야 할 것은 아기 돼지가 아니라,
저 무리들.
아귀 되어 세상을 질주하고 있는 저들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요즈음.
사람들은 더 이상 별을 믿지 않고 희망에서도 등을 돌리고 산다.”

끝으로 ‘숫타니파타’에 등장하는
부처와 목동 사이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이미 저들의 앞뜰에 질펀한 장송곡 사이를 홀로 걷는다.

  (1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이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방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니 신(神)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19)
스승은 대답했다.
"나는 성내지 않고 마음의 완강한 미혹(迷惑)을 벗어 버렸다.
마히이 강변에서 하룻밤을 쉬리라.
내 움막(곧 자신)은 드러나고 탐욕의 불은 꺼져 버렸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0)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모기나 쇠파리도 없고, 소들은 늪에 우거진 풀을 뜯어 먹으며,
비가 와도 견디어낼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1)
스승은 대답했다.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거센 흐름에도 꺼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彼岸)에 이르렀으니,
이제는 더 뗏목이 소용없노라.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2)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내 아내는 온순하고 음란하지 않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도 항상 내 마음에 듭니다.
그녀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3)
스승은 대답했다.
"내 마음은 내게 순종하고 해탈해 있다.
오랜 수양으로 잘 다스려졌다.
내게는 그 어떤 나쁜 점도 있지 않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4)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는 놀지 않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다 건강합니다.
그들에게 그 어떤 나쁜 점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5)
스승은 대답했다.
"나는 그 누구의 고용인도 아니다. 스스로 얻은 것에 의해 온 누리를 걷노라.
남에게 고용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6)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아직 길들지 않은 송아지도 있고, 젖을 먹는 어린소도 있습니다.
새끼 밴 어미소도 있고, 발정한 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7)
스승은 대답했다.
"아직 길들지 않은 어린 소도 없고, 젖 먹는 송아지도 없다.
새끼 밴 어미소도 없으며, 발정한 암소도 없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8)
소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소를 매놓을 말뚝은 땅에 박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자풀로 만든 새 밧줄은 잘 꼬여 있으니,
송아지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9)
스승은 대답했다.
"황소처럼 고삐를 끊고, 코끼리처럼 냄새나는 넝쿨을 짓밟았으니,
나는 다시 모태(母胎)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30)
갑자기 검은 구름이 비가 되어 뿌리더니 골짜기와 언덕에 물이 넘쳤다.
신께서 뿌리는 빗소리를 듣고 다니야는 이렇게 말했다.

  (31)
"우리는 거룩한 스승을 만나 얻은 바가 참으로 큽니다.
눈이 있는 이여, 우리는 당신께 귀의(歸依)하오니 스승이 되어 주소서.
위대한 성자시여.
 
  (32)
아내도 저도 순종하면서 행복한 분(부처님) 곁에서 청정한 행(淸淨行)을 닦겠나이다.
그러면 생사가 없는 피안(彼岸)에 이르러 괴로움을 없애게 될 것입니다."

  (33)
악마 파아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이 집착하는 근본은 바로 기쁨이다.
집착할 데가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34)
스승은 대답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참으로 사람이 집착하는 근본은 근심이니라.
집착이 없는 이는 근심할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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