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난 벌
소요유 : 2009. 1. 31. 17:39
날씨가 확 풀리자,
고목나무 구멍에 자리 잡고 있던
벌들 몇 마리가 날아다닌다.
(※ 참고 글 : ☞ 2008/12/27 - [소요유] - 유공즉출(有孔卽出))
그 모진 헤살 짓에도 살아남은 이들이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그곳을 일부러 지나다녔다.
그저 잡히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날아올라 이단 옆차기로 질러 버리고 말리.
그러다가는,
점잖게 증거를 확보하고,
공원당국에 신고하여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말리.
이리 저리 공상을 하며 겨울 내내 번을 서듯 그리 다녔는데,
이제껏 한 번도 그 모진 작자를 보지 못했다.
이제껏 서너 차례 꼬챙이로 쑤셔 논 것을 목격했다.
뽑아 놓으면 어김없이 다시 쑤셔놓는다.
나중에는 그냥 놔두었다.
공연히 빼었다 껴 넣었다 하는 통에 오히려 더 해가 될까 싶어,
차라리 저대로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몇 마리가 나는 것을 보니
여간 신통하고 고마운 게 아니다.
어서 봄이 와서,
제대로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길.
참으로 모진 인간들.
아,
그 틈에도,
살아난 저들 벌들의 생명이란 얼마나 경이로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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