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유곡(進退維谷)
딜레마
dilemma
1523, from L.L. dilemma, from Gk. dilemma "double proposition," a technical term in rhetoric, from di- "two" + lemma "premise, anything taken," from base *lab-. It should be used only of situations where someone is forced to choose between two alternatives, both unfavorable to him. But even logicians disagree on whether certain situations are dilemmas or mere syllogisms.
딜레마란,
두 가지 대안 중 어떠한 것을 택하든 동시 만족 해(解)를 얻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논리학에서는 이를 쌍도논법(雙刀論法) 또는 쌍관논법(雙關論法)이라 하지만,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이란 말을 들어 이해하면 사뭇 빠르다.
유(維)란 본래 ‘매다(繫)’란 뜻을 가지니, 수레 또는 말을 매어 묶다라는 의미이다.
이게 기(紀) 또는 강(綱)과 같이 ‘벼리’란 뜻도 가지나 이들은 각기 조금씩 차이가 있다.
어쨌건 유곡(維谷)이란 혹간 지명으로 오해하는 이도 있으나,
'곡(谷)에 매었다(繫)' 또는 '처(處)하여 있다' 정도로 해석하면 족하다.
하니, 그저 단순히 ‘골짜기에 들었다.’란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하니 진퇴유곡(進退維谷)이란 골짜기에 들어,
나아가지도 물러가기도 어렵게 된 상황에 처한 모습이다.
하니 즉,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니 이러거나 저러거나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라는 의미이다.
고물할아버지 강아지들에게 나는 근래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 참고 글 : ☞ 2008/04/29 - [소요유] - 낮달)
물을 따라주면 한 시간도 못되어 바로 얼어붙는 산기슭 추위인지라,
한데 방치된 그들을 보살펴주었다.
그동안 주인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무지 밥을 준 흔적을 보지 못하여 궁금하여 주인을 한번 보고 싶었다.
며칠 전 주인을 드디어 만났다.
“밥은 몇 시경에 주십니까?”
“밥은 주지 않는다.”
최근에 그 집을 드나들며 보니 밥은커녕 물도 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여 물어본 것이었는데 그의 대답은 너무나 당당하니 천연스럽다.
그 집에 드나들며 밥을 챙겨주시는 이웃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다.
지난여름부터 드나드시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이즈음엔 뵙지를 못하고 있다.
필경은 아마도 손을 끊으신 게다.
말이 그렇지 매일 그 일을 하는 것이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가끔 뵈올 때 그 분은 서서히 지쳐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위로 차 말씀 드리길 ‘개망초의 주인공’ 짱아의 예를 들며,
(※ 참고 글 : ☞ 2008/02/13 - [소요유] - 개망초)
(그 분은 이 사연을 알고 계시다.)
“나는 언젠가 해결(解結)될 시간을 만나리라 하는 믿음으로,
아니, 나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미욱하니,
상투적인 말투, 글투에 이끌려 이리 말하였을 뿐,
나는 본디 기대도, 소망도 진작 버린지 오래다.
그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갔다.”
(해결이 무엇인가?
맺음이 풀린다란 말이다.
꽉 막히 그것이 풀릴 그 때, 궁즉통의 시간 말이다.
궁즉통이란 그게 흉이든 길이든 여하간 변화가 있으리란 뜻이다.
나는 그 시간의 피륙을 엮는 사람일 뿐인 것을.
※ 참고 ☞ 2008/08/06 - [소요유] - 궁즉통(窮則通))
이리 말씀드리고 말았으나,
하루 이틀이 아니고 매일 하시는 일이라 여간 힘이 드시지 않아 보였다.
그 분이 그 일을 그만 두었다한들,
그 누가 탓할 수 있으랴.
단 하루만이라도 고마운 일이거니,
여름부터 내내 그 일을 하셨지 않았는가?
주인이면서도 챙기지 않는 이는 저리도 당당한 형편인데.
그 주인 노인은 이리 말하고 있다.
“아주머니가 아침 9시에 그리고 저녁에 두 번씩 챙겨주신다.
그래서 나는 밥을 주지 않는다.”
나 역시 그 아주머니가 챙겨 주시거니 여겼으나,
최근엔 그마저 흔적도 없어 걱정이 되어 물었던 것이다.
허나, 아연 우려대로 밥을 챙겨주는 이가 나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저 노인은 변명이 늘 뻔지르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저런 이들이 늘 그러하듯이,
의지하는 것은
경우가, 이치가, 도리가 아니라,
자신의 이해뿐이다.
그 잘나 빠진 한 톨의 제 잇속.
“개 키우는 것은 경제성이 없어.”
이 말은 자기가 개를 넘겨받아 키우는 것이 돈을 노려 하는 것이 아님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음이다.
저이에게도 아직 자존심은 남아 있는가?
그로서는 다른 이로부터 넘겨받을 때 푼돈이나마 이미 챙겼으니,
기실 그 이후 경제적 이득을 볼 것도 별반 없다.
게다가 집에다 묶어만 놓으면 주변 이웃이 챙겨주니,
아무런 부담이 없는 것이다.
밥을 챙겨주자니 주인은 영영 살피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고 모른 척 하자니 저들 강아지들이 종일 굶을 처지인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유곡에 빠진 것이다.
진퇴유곡이란 말은 원래 시경(詩經)이 출전이다.
주(周)나라 여왕(厲王)은 본래 황음방탕하였다.
신하도 떨어져나가고 민심도 다 외면하고 말았다.
여왕이 신하인 소공에게 말한다.
“보시오, 이젠 나를 비난하는 자가 하나도 없지 않소?”
소공(召公)이 간하여 말한다.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강을 막는 것보다도 더 위험합니다.
강이 터지면 주위의 전답만 쓸어가지만,
백성들의 입이 터지는 날이면 천하를 휩쓸어갑니다.
모쪼록 백성들을 생각하십시오.”
백성들은 참다못하여 민요를 지어 이리 풍자했다.
人亦有言
進退維谷
세상에 떠도는 말이 있으니,
이젠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로고.
백성들이 입이 터지듯,
하늘이 터져, 진노(震怒)하듯 천둥번개로 저 노인네의 허물을 경계할 날이 있을까?
***
내 살면서 깨달은 것은 ‘천박(淺薄)한’ 이와는 애시당초 거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천박하고 경박(輕薄)스런 이는 내 주위에 천만이 있은들 하등 배울 것이 없다.
공연히 천하를 어지럽힐 뿐이다.
하지만,
저 노인네와는 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이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내치자니 저들 강아지가 눈에 밟히고,
겪자니 몹쓸 짓을 용인하는 꼴이니.
하여 일러 이를 진퇴유곡이라 하는 것이라.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묵묵히 그 길을 걸을 뿐인 것을.
그것이 길인 한,
나는 내 길을 걸어 나갈 뿐인 것을.
혹간,
이 사태의 해결을 전(錢)의 유무로 접근하는 이도 있더만.
인간의 마음이 의지하여 설 자리가 기껏 돈외에는 남아 있는 구석이 없을까?
하기사,
저 노인네가 돈이 많았다면 저 짓을 하지는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그 마음보까지 치유가 되었을까는 여전히 미지수가 아니겠는가?
과연 돈으로 마음이 고쳐질까?
이런 셈법에 의지하는 저들의 안일함, 나약함이란,
도대체 얼마나 처량하니 누추한가 말이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 밥을 주지 않는 마음,
한 겨울에 북데기 하나 깔아주지 않는 마음.
경제적 이득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도 없애고는 이내 다시 키우는 저 마음.
형편이 뻔한데 저 노인에게 키우던 강아지를 처분하는 교인(敎人)들의 마음.
저 흉한 마음들.
그것을 돈의 유무로 재단할 수 있음인가?
아연, 놀라운 일이다.
일요일.
그나마 그 칠분지일 위선으로,
천국(天國)을 훔치려는 야바위꾼들의 가장(假裝) 행렬.
저 노인네는 자칭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돼지고기도 교리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자랑하던 그.
그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무릎꿇고 기도하여 피어 올리는 한줄기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만약 진짜 하느님이 있다면,
제 집에 기르는 강아지에게 밥을 주지 않는 인간을,
단지 기독교를 믿는다는 외양을 두고,
두레박 던져 휴거(携擧)할 마땅한 증거의 표지로 삼으실까?
도대체 교회는 왜 나가는가?
심청전 뺑덕어미가
우물가에 나서는 기분으로
그리 우쭐주쭐거리며 나가는 것인가?
진실로 이르노니,
네가 정녕 천국(天國)을 꿈꾼다면,
하느님과 외통으로 거래하여야 한다.
돈으로, 또는 칠분지일의 교회 방문으로서가 아니라.
이웃 마실가듯 교회를 가려면,
차라리 작파하고 네 집 배 곯는 강아지에게 한 줌 밥을 챙기라!
나야 진작 지옥은커녕 천국도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
저들이 말하는 불신지객(不信之客)에 불과하니,
이미 새삼 저승을 덧새겨 말할 나위도 없지만.
아,
천하에 사람처럼 무섭고 두려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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