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방구 뀐 놈이 성낸다.

소요유 : 2009.01.20 11:36


방구를 뀌면 냄새가 난다.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이 어렵다.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만원(滿員)이라 꿈쩍 달싹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오지게 처먹은 한 인간이 갑자기 ‘웩’ 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꺾었다.
그도 벅차 이내 허리까지 꺾으면서 먹은 것을 바닥에 게워내기 시작했다.
순간 그 인간을 중심으로 사방 십리만큼 빈공간이 쩍하고 열려버렸다.
이럴 때의 저들 인간이 연출하는 반응신호전달 속도는 여느 동물보다 곱절은 뛰어나다.

좁은 방안에서 한 인간이 방구를 끼면,
돌 들어내자 잽싸게 흩어지는 가재처럼 모두를 야단법석을 떨며 도망을 간다.
이 때 문제의 인간은 어떤 모습을 보이던가? 

부러 태연한 척 무표정으로 임하던가?
싱긋 웃으면서 제들 왜 그래라는 표정을 지으며 의뭉을 떨던가?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지 않아도,
이 정도라면 얼추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인지(認知),
그리고 나름의 수습의지(收拾意志)가 중인(衆人)에게 전해진다.
이 때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고 만다.
왜?
우리 모두는 방귀를 뀔 잠재태(潛在態)의 존재들이다.
이런 이해 하에 우리는 모두 웃음이란 우산 속으로 들어가 궂은비를 긋는다.
알고 보면 방구뿐이겠는가?
세상사 모두 허허롭기 그지없음이다.
하여 우리는 웃음 썰매를 타고 이 창백한 차안(此岸)의 얼음 땅을 지쳐나간다.

그런데, 여기 이 자리 이런 유형의 인간이 출현하곤 한다.

성을 버럭 내면서 도리어 둘러 선 인간을 나무라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은 별 난 게 아니다.
제법 자주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 양식중 하나이다.

미안하다고 해도 모자랄 터인데 왜 화를 내는 것인가?

여기엔 보통 2단의 심리 발전 단계가 있다.
첫째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버려진’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다.
무엇인가?
자신이 그 현장에서의 책임 당사자가 아니라,
타임머신 타고 전격적으로 그 현장에 유배 돼 버린 처지라는 자각(?)을
스스로에게 주문을 하며 자기 최면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기실 자기도 원치 않았음이니,
한참 억울하기도 하였음이라.
마치 어린아해가 땡강 부리듯,
자신은 다만 간신배의 모함으로 인해, 이리 적소(謫所)로 유배를 당하고 말았음이라,
그러하니 나는 결백(innocent)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그는 ‘해방(解放)’을 맞는다.
동아줄로 꽁꽁 묶인 줄로부터 ‘풀려 놓여나는’ 상상처럼 황홀한 게 또 있을까?

두 번째는 이런 자신을 탓하는 이들을 향해 역으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이 비난이란 형식을 통해 자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지며 정당성을 확보한다.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갖는 것이다.
책임을 이전시킴으로서 도덕적으로 순결해진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비난을 남에게 퍼부어야 한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방법치고는 제법 손쉽고 싸게 먹힌다.

일단계의 심리적 ‘해방(解放)’을 스스로에게 조치(措置)하는 그를 이해할 수도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리 나약하기도 하니까.
옳지는 않지만,
그의 안타까운 처지를 감싸 안아 주는 도량을 갖는 게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하지만, 이 정도에서 멈추지 못하고 두 번째로 나아가면 제법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일단계는 고작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에 그치지만,
두 번째 단계에 이르르면 선의의 공연한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또한 그 자신의 입장에서 보아도,
일단계는 변명에 그치지만,
이단계는 비겁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양심이 부패하기 시작한다.

남을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
자신이 지금 일단계를 막 지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만약 두 번째 단계로 가기 직전이라면 그에겐 아직 기회가 한번 남아 있다.

길가에서 벌어지는 한 토막 사건을 목격하고,
나는 잠깐 이리 방구와 성냄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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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rma 2009.05.19 00:15 PERM. MOD/DEL REPLY

    돌들어내자마자 흩어지는 가재들 처럼... 표현이 너무 재밌네요.
    옛날 생각해봅니다.
    조금 늗은 감이있지만 이때쯤 가재들이 알을 배고있을 때지요.
    고사리 꺽으러갔다가 가재잡아 집에서 장(간장)에 지져 먹었던 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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