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과 지성의 타락 - 미네르바
다음에서 활동한 미네르바가 체포되었다.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원래 나는 시사문제에 대하여는 예각으로 날을 세워 사태의 추이를 추적하거나 분석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 사태의 현장에 내가 임하여 구체적인 정보를 다만 몇 조각이라도 가질 형편이 아닌 한, 기껏 언론을 통하여 유출된 기사에 기초하여 그 뿌연 안개 속을 거닐며 휩쓸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필경 그 기사는 매체의 입장에 따라 과장이 따르고 왜곡을 서슴지 않는 이 땅의 언론 관행 따라 적잖히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가령 조중동과 그 대척점에 선 언론들의 이번 미네르바 체포에 따른 기사 내용만 하여도 천양지차로 갈리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확실히 들어난 사실 조각들만이라도 짜 맞추어 나만의 추리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태의 본질을 추적해 들어가는 일은 개인에게 지적 만족감을 안겨 줄 수도 있고, 나아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건전한 참여와 책임을 확인하는 일이 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아직은 실체가 또렷하게 확인이 되지 않은 것인즉 나는 삼가고 싶은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는 우선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상당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작년 12월 신동아 인터뷰 기사와 이번 검찰의 발표만 하여도 당장 사실관계가 완전히 서로 어긋난다. 나도 몇 가지 단서를 기초로 내 추측을 개진할 수는 있겠지만, 홀로 만지작거릴지언정 미확인 사실에 대하여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내 소신이다. 이는 미네르바 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염치를 차리고자 함이요. 섣불리 부화뇌동하여 세상을 혼탁하게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게다가 개인적으로는 미네르바가 아니더라도 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껏 달아오르듯 경도되는 현상을 경계하고 그리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 입장이기에 그는 내 관심의 적(的)이 아니다. 게다가 전적으로 그의 의견을 믿지도 않는 바임이라 내가 나설 자리가 없다.
다만, 오늘 아침에 한국일보 사설을 대하고는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네르바 사건 일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을 보는 태도가 대단히 엉터리이기에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예전엔 한국일보를 브라우저 즐겨찾기 최상단에 올려 두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맨 밑으로 내려두었다. 기사 논조가 점점 내 소신과 달라지더니만 급기야 어청수에게 상을 주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럴듯한 변명을 아무리 해대어도 이미 값어치 있는 언론은 아니란 판단 때문이다.
각설하고 오늘 한국일보의 사설은 아주 유치하고 비지성적이다. 사설은 “공고, 전문대 출신의 독학 30대 청년”이라는 사실(검찰 측)을 앞장 세워 온갖 편견과 독선을 세상을 향해 흩뿌리고 있다. 사설은 말한다.
“정부의 위신과 지성계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지극히 부박(浮薄)한 우리사회의 양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온 사회가 말 그대로 지성의 빈곤을 자인하며 허공을 향해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지적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경력과 이력조차 모를 정체불명의 인터넷 논객을 '경제 마이스터'로 떠받드는 것을 방관하고 부추긴 지성의 타락, 지적 리더십의 실종이다. 내로라 하는 경제학자가 그를 '뛰어난 경제스승'이라고 칭송한 것은 참으로 민망하다.”
만약 “공고, 전문대 출신의 독학 30대 청년”라는 사실을 “교수” 또는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로 바꿔 놓는다면 저 사설은 설 자리가 없다. 이 사회가 부박하다든가 히스테리 증상에 빠졌고, 지성의 타락이라고 울부짖는 저 사설의 근거는 미네르바가 교수가 아니라 전문대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독학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아주 천박한 인식이고 반지성적 태도이다.
그 내용에 대한 지적은 이제껏 하나도 없다가, 그가 전문대, 독학이라는 사실 그것도 검사 측 주장에 기대어 게거품을 물듯이 이제껏 농락을 당하였다는 듯 한껏 비분강개하고 있다. 의견을 내놓는데 왜 교수라는 직분이 필요하고,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가 ? 의견 그 자체에 주목하지 못하고 껍데기에 집착하는 저들의 태도야말로 그들이 그리 훼손당하였다고 애통 절통해 마지않는 지성에 반하는 것 아닌가?
교수라야 경제적 식견을 가질 수 있고, 독학이 아니라야 전문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저런 맹신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지닐 수 있게 되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편견을 키워온 저들을 이해할 수 없다. 용서할 수도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세상을 오도해왔을까 싶은 것이다. 저들은 펜을 굴리며 허위의식 속에서 세상을 분절(分節)하고 저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으며 자신의 기득권을 무작정 사수하기 바빴을 것이다.
천하는 넓고 깊다. 도도처처에 기인(奇人), 이사(異士)가 보석처럼 숨어 있다. 어느 학교를 나와 무슨 박사를 땄다고 마치 그것이 제왕으로부터 세상을 재단할 부절(符節)을 수여받고, 인수(印綬)를 하사 받은 줄 착각하며 우쭐대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저들이 그리 통탄해 마지않는 지성의 타락이란 독학한테 한 수 가르침을 받은데 있단 말인가 ? 그게 그리 원통절통한가? 지성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 미네르바가 교수가 아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게 어째서 당신들 지성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가 말이다. 심히 가증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배움에 귀천이 있을 터이며 가르침에 빈부를 따질 겨를이 어디에 있겠는가?
전공도 아니오 게다가 독학으로 공부를 한 사람을 격려하고 반기지는 못할망정, 그 자리에 퍼질러 않아 곡지통(哭之痛)을 쏟아 내고 있는 저들 볼썽사나운 몰골들이라니, 참으로 측은하고 가련토다. 제대로 된 인사라면, 오히려 학력이나 직책이 없으면 세상에 나와 자신의 의견을 펼 공간이 없게 되어 버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반성하고 안타까워해야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리하기에 자신을 학력으로 치장하고, 경력으로 분식(粉飾)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땅의 현실을 슬퍼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지성이 마땅히 지녀야할 덕목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사설 쓴 사람은 마지막에 더욱 해괴한 말을 뱉어내고 있다.
“미네르바 해프닝은 '침묵은 가장 야만적이고 무책임한 지식'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다 늦게 나타나 사설로 떡하니 나무라고 있는 그의 말 속에, 결국은 미네르바가 학력이나 경력이 짧다는 것 밖에 더 무엇이 실려 있는가? 그야말로 정작은 앞서 침묵한 자신에 대하여 무책임하다고 스스로를 나무라야 하지 않겠는가? 미네르바야말로 침묵이 아니라 절절한 말씀으로 그대들이 걸핏하면 앞세우는 지성들의 침묵을 질타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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