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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교주(媚惑敎主) 손수(孫壽)

소요유 : 2009. 1. 6. 23:08


후한(後漢)은 왕망(王莽)에 의해 전한(前漢)이 탈취 당하고 나서, 다시 찾아 새로 세운 나라다.
광무제(光武帝)에 의해 다시 유씨(劉氏) 나라를 세웠지만,
3대째인 장제(章帝) 때부터는 다시 나라가 꼬여가기 시작했다.
원인은 역시 외척(外戚)의 발호(跋扈) 때문이다.

장제의 황후 두씨(竇氏)는 정실이었지만 자식이 없었다.
해서 양씨(梁氏)라는 장제의 측실이 낳은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하지만 송씨(宋氏)가 낳은 아들이 황태자가 되었다.
두황후는 자기 양자를 황태자로 하기 위해서 황태자와 송씨를 모함했다.
이에 송씨는 자살하고, 황태자인 유경(劉慶)은 자리에서 떨어져나갔다.
대신 두황후의 양자인 유조(劉肇)가 황태자가 되었다.
두황후는 황태자의 생모인 양씨도 죽여 버렸다.

유조는 10세에 즉위했다.
이가 화제(和帝)인데, 이후부터 후한이 멸망할 때까지 9명의 황제가 세워졌지만,
모두 다 어린 아이 때 황제로 즉위했다.
환제(桓帝)는 15세에 즉위했는데 이가 최고로 많은 나이였고,
상제(殤帝)는 1세도 되지 못한 나이에 즉위했을 정도다.

살펴보면, 장제 때의 두씨, 화제 때의 등씨, 안제 때의 염씨(閻氏) 등
황후들은 황제인 유씨(劉氏)를 제치고 제 마음껏 국정을 전횡했다.
이 부근의 정세는 성씨만 바뀌어 등장하지 그저 외척들이 독무대이기 때문에
특별한 역사적 성과나 업적도 없이 마냥 어지로울 뿐이다.

유보(劉保)는 11세 때 즉위했는데, 이가 순제(順帝)다.
황후는 양씨(梁氏)였는데,
그녀는 그 이전의 황후들보다 더욱 심했다.
양황후의 동생에 양기(梁冀)라는 포학한 이가 있었는데,
순제이후 즉위한 단명(短命) 황제들로 인해 양황후가 섭정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기 역시 제 마음대로 발호했다. 
양기는 4대 황제를 섬겼는데, 황제 셋은 한 손에 가지고 놀았으며,
8세에 불과한 황제인 질제(質帝)는 독살까지 시켰다.
이리 제 마음대로 국정을 농단하다 급기야는 황제 자리까지 넘보게 된다.
이렇듯 후한(後漢)은 제3대 장제(章帝) 이후는 내리 국정이 문란했다.

양기의 부인 손수(孫壽) 역시 그의 남편 못지않게 제멋대로였는데,
그 이야기가 사뭇 흥미롭다.

손수는 미모에다 투기가 대단했다.
그녀는 집안 종 진궁(秦宮)이란 자와 사통을 벌였는데,
당연 남편인 양기 역시도 우통기(友通期)라는 애인을 따로 두고 놀아나고 있었으니,
부부가 짝으로 이 짓을 경쟁하듯 자행했다.

사치가 우심(尤甚)하였던 그녀는 또한 당시 최고의 유행을 만들어내었다.
그가 창안한 5가지 미용술을 소개해본다.

수미(愁眉)라는 것은,
눈썹을 밀어낸 후, 가늘고 휘어진 눈썹을 그리는 것으로
그럴 듯이 제법 쓸쓸한 모습으로 보인다.
양기가 대장군으로서 사대 황제를 섬기던 시절이니
이게 지금으로부터 대략 1850년 전 내외가 된다.
오늘 날도 이런 눈썹화장술이 있는 것은 물론 이하에 소개하는 것들도 역시 현대에도 여전한 것으로 보아,
손수의 화장술은 가히 미용술의 원조라 할 만하다 하겠다.

제장(啼粧)이라는 것은,
눈 밑을 칠하는 것인데, 이는 마치 막 울고 난 뒤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타마계(堕馬髻)라는 것은,
머리 쪽(髻)을 한쪽으로 기울어뜨린 것으로 어쩐지 나태하면서도 방탕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는 말에서 떨어졌을 때 머리칼이 기우러진 것 같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별칭으로 양씨신장(梁氏新粧)이라고도 하는데,
고대 주(周)나라 부터 明, 淸나라까지 널리 사용된 가장 보편적인 헤어스타일(發式)인
결추식(結椎式)의 변형이라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xit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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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墜馬髻, 출처:baike.baidu.com)

절요보(折腰步)라는 것은,
걸음을 마치 바람에 버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한들한들 걷는 것을 말한다.
허리가 부러질 듯 걷는 모습이라니 차라리 남정네 마음이 흔들리다 지쳐 까무라치지나 않을까 싶다.

우치소(齲齒笑)라는 것은,
웃을 때 마치 치통을 앓는 듯한 모습을 짓는 것인데,
이리 표정을 지으면 크게 웃지는 못하고 옅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련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니,
남정네들이 저것을 보고 부득불 애처로워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황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권세를 누렸으니,
사치를 부리려면 못할 바 없는 처지이겠으나,
당시 혹자는,

“심히 불길한 징조다. 양문(梁門)에 불상사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이리 말하였다.
쓸쓸하게 보이고, 울고 난 뒤의 모습, 찡그린 표정 등
모두 퇴폐적인 미감(美感)을 자아내는 것이니,
양씨 가문에 상서롭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우랴.

나중에 결국 환제(桓帝)의 역공을 당해 양씨 일족은 모두 절단이 나고 만다.
양기의 재산을 몰수하고 나니 천하의 조세가 반감되었다고 한다.
원래 세상이 말세가 되면,
여자들의 얼굴은 가름한 것을 다투어 좇아 기리고,
화장술 역시 퇴폐적인 모습으로 흐른다고 한다.

후대에 미혹교주(媚惑教主)라고까지 불리어진 손수(孫壽)가
질펀하니 놀아나다 기어코 일족 전체가 사형을 당하고 말았으니,
퇴폐적인 화장술이 말세의 징조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할 것이다.

허나, 미태(媚態) 화장술이라는 것이 현대에는 술장사하는 이들뿐이 아니고,
이미 여염집 여자들에게도 일상적인 일이 되고만 지 사뭇 오래전 일이다.
요즘 여인네들은 손수(孫壽)의 오대(五大) 미태술(媚態術)은 물론이거니와,
그까짓 눈썹에 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신을 새겨 넣기까지 하며,
가슴엔 풍선 넣어 맘껏 부풀리고,
코에다가는 뼈다귀 넣어 한옥 처마처럼 하늘 높이 세운다.
그 뿐인가,
키 크게 보이려고, 종아리뼈를 분질러 늘리는 놀부가 나자빠질 수작도 부리고,
입술도 까뒤집어 물에 퉁퉁 불어터진 벌레처럼 만들기도 한다.

손수(孫壽) 시절엔 홀로 미태술(媚態術)로 사치를 부리다 그들 일족만 망했으나,
현대엔 가가호호 천하가 모두 이러하니 망하려한들 천하가 다 망할 수는 없어서인가?
아직은 그런대로 견디어 내고 있는가 싶다.
하긴, 현대엔 노다지 망하는 것이 일상이라 망한줄 미쳐 모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엔 산부인과 의사 하나가 너무 장사가 되지 않아,
박피기(剝皮機)를 들여다 놓고 염가로 손님을 맞아 수지를 맞추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산과(産科)에서 애 받는 일이 아니라, 미태술(媚態術)로 돈을 버는 세상이라니,
이제사 손수(孫壽)가 여기로 놀러온다면 환호작약(歡呼雀躍) 놀만한 세상이라고 좋아하였을까나?
하기사 200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 1인당 1.2명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193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10년이 지난 2016년 통계에 따르면,
1.3명의 출산율로, 전 세계 기준 꼴찌에서 4번째에 해당한다.
전 세계 인구 성장율은 1.2%인데, 한국은 0.5%에 불과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아이 낳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애 받는 일로 의원을 꾸려나가는 것은 이젠 도통 가망이 없는 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인구가 적어지면 현재 인구 수준에서 결정된 정책들이 치명적인 문제들을 양산할 것이다.
그러하니 인구를 다시 늘리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위정자들이 한마디씩 하고들 있다.
국방, 국민연금, 경제적Activity저하, 경쟁력 저하 문제 등등 염려가 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어려움이 있다한들 그 고비만 제대로 극복하면,
그 후로는 오히려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인구가 적은 게 아니라, 너무 인간들이 많아 걱정이라는 게 옳으리라.
가령 인구가 지금의 반으로 줄면 어떻게 될까?
설사 조금 덜 먹고 살더라도 훨씬 평화로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부동산 가격도 뚝 떨어질 터이고,
자녀 교육문제로 가계경제가 피폐해질 까닭도 없고,
비정규직 문제도 자연 해소될 터이고 ...
오늘날의 문제는 결국 모든 부문에 경쟁이 너무 살벌할 정도로 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게 인구가 적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편이다.
국방, 경제문제 등 제 문제는
사태의 진전에 따라 조금씩 적응해나가면서 좋은 도리를 찾아낼 수 있겠거니 하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고 단순히 인구를 늘려서 대응하려는 것은
근원적인 처방이라기보다 여전히 현상을 유지하며,
미래로 문제를 이월해가는 미봉책이 아닌가 싶다.

양(量)이 차지 않으면 굴러가지 못하는 세상이란 얼마나 미련한가 말이다.
양(量)이 차지 않아도, 아니 제대로 말한다면 양에 옭매이지 않고,
제 품성대로 그를 제각각 길러(養)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가?

분수 넘게 질펀하니 먹고 싸대려고, 실력 이상으로 우악스럽게 아둥바둥 살려니 이 난리가 아닌가?
조금씩 덜 먹고, 욕심을 덜더라도 제들 품성을 올곧게 지키고들 살자는 게다.
이젠 이게, 즉 욕망-만족 방정식이 포화(saturation)상태에 이르니까,
제풀에 지쳐 애 낳기를 포기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연스러운 제 자리로의 회귀(回歸)이자, 잘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게다.

아,
나는 사람들이 적적하다고 느낄 정도로 좀 한적한 세상이 도래하길 바라노라.
내가 살기엔 세상은 너무 비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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