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전이급(前二級) 바둑

소요유/묵은 글 : 2008. 2. 13. 17:19


저는 바둑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바둑을 두어본지 이미 오래전이라 저 스스로도 그리 짐작만 할 뿐입니다.
어려서부터 바둑 둘 줄은 알았지만, 그게 바둑을 잘 둔다는 게 아니라,
그저 바둑 규칙을 알았다는 수준이니, 바둑을 안다고 할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바둑 책을 보며 혼자 독학으로 공부 좀 했습니다.
1년여 책을 보니 단박에 기초가 닦여 실력이 늘더군요.
하지만, 그후는 책을 아무리 뒤적여 보았자, 더 이상은 별로 바둑 수가 늘지는 않더군요.

더욱이 바둑 상대를 많이 대하지도 못하였고,
기원 출입도 여나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실력이 늘 형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저, 집 식구들과 가끔 즐기던가,TV로 바둑을 구경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군대를 갔습니다.
당시 제 바둑은 7급정도였습니다.
요즘은 급수가 상당히 복잡한가 봅니다만,
흔히 말하는 기원급수로 7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군대에서는 바둑을 한 댓차례 둬 본 것 같습니다만,
저보다는 모두 하수들이어서 그저 싱겁게 대하였을 뿐입니다.
그것도 마지막까지 다 두어보지도 못하고
여러 사정으로 중간에 작파되었던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대했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제 글이 너무 밍숭밍숭합니다.
제 사정을 얘기하려니 이리 밋밋해졌습니다.

그런데, 제대후 당시 제 집식구중 하나인 1급과 접바둑을 두었는데,
순식간에 따라잡고 先으로 맞둘 정도가 돼버리고 맙니다.
바둑 책이야 가끔 보았지만, 그저 있던 책 무료할 때 조금 보는 정도였고,
기원 출입도 하지 않았고, 집식구와 가끔 두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그야말로 갑자기 수가 팍 늘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둑 수가 단기간에 이리 는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7급과 2급사이의 그 단절된 시간, 거기 군대시절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하니, 결국은 군대시절 제 바둑 실력이 절로 늘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더군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
그저 박박 기고, 구보하고, 기합 받은 기억밖에 없는데,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군대 가기 전에 아무리 바둑 책을 들여다 보아도,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을 보면, 바둑에 재능이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위인인
제 주제에 비추어, 저에겐 좀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래, 나름대로 그 원인을 추적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이를 추적해볼만 단서를 찾아낼 수가 없는 바임에라,
결국은 추리, 구성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짐작컨데는 이러합니다.
제가 학교 다니다 중간에 군대에 갔는데,
군대가기 전에 닥치는대로 책을 탐식했습니다.
전공은 시험 볼 때만, 벼락치기로 땜하였고,
틈 나는대로 영역을 가리지 않고 책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 때 어느 낡은 책 겉표지에 적힌 學海란 그 대양에 일엽편주 떠밀려 다니던
초라한 제 모습이 다시 상기됩니다.

2학년 1학기 마치고 갔으니, 그래 보았자 1년반 정도의 기간이니,
이 정도의 독서량은 별 것도 아닙니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돌이켜 봅니다만,
대부분 그러하듯이 입시 공부외에 뭐 특별히 공부한 바도 없습니다.

- 저 보고 한자 많이 쓴다고 탓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당시 고등학교 국어,한문 시간에 익힌 한자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정도의 한자,그것도 토씨 달아 괄호속에 넣는 친절 앞에서라니.
저는 외려 이를 보고 비웃는 그들을 이해 못하겠습니다. -

집식구중에 한 사람은 말하길,
군대 가기전 온실속에서 화초와 같이 자라던 이가,
비바람 맞아 사람이 좀 되어서,
바둑 수도 는 것이라고 놀립니다.
그런데,이 말도 미덥지 않습니다.
졸병으로 박박 기어, 제대할 무렵엔 자를 대고 줄을 그어도
비뚜루 선이 그어질 정도로 文으로부터,
완전히 방치된 생활,실종된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니,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까닭을 딱히 짚어낼 바가 없습니다.
그래 이리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요즘 초보지만 농사꾼 짓을 하고 있습니다.
콩을 심었는데,어마어마한 흙더미를 들추고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너무 장하고 대견하더군요.
저의 바둑도,이들 콩처럼, 군대란 망각의 시간속에 부려진 흙더미가 걷히자,
싹튀어 나온 것이 아닌가 저는 이리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영사기로 화상을 재현할 때 초당 24 프레임의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24 프레임을 연속으로 보내게 되면
스크린에는 마치 비가 오듯이 줄무늬만 보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임과 프레임이 바뀌는 순간에는 셔터로 빛을 차단해 주어야 합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어둠이 있습니다.
frame과 frame 사이에 영원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이 때라야 비로소,정적 세계가 동적 세계로 변신(變身)합니다.
어둠은 그러므로 생명의 점화자(點火子,igniter), 격발기(trigger)입니다.
frame들이란 잠복자 또는 잠재자(potential)일 뿐입니다.

제게 다가온 그 망각의 시간이 영사기의 빛가림 장치 shutter가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여기 또 한가지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동조(同調,synchronization)가 그것 아니겠습니까 ?
영사기에서 필름 한 frame이 다른 frame으로 바뀌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하여
shutter로 빛을 막아주어야 합니다.
만약 이게 어긋나면(asynchronous) 화면이 파르르 떨게 됩니다.
아니면, 동영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점화자는 시간을 엿보는 자이기도 합니다.
(光) 또는 불(火)과 시간(時)의 존재.
이를 저는 생명의 발화자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총을 겨눕니다.
공이가 총탄 뇌관을 칩니다.
이를 우리는 격발이라고 합니다.
이 때 비로서 탄피에 들어 있는 장약이 터지고 총알은 목표를 향해서 날아갑니다. 
하니,격발(擊發,triggering)이란
사수의 사총(射銃) 의지가 펴지(發)는 순간과 폭발이라는
두가지 요소에 의해 목표를 타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말하는 그 시간이 저의 바둑 이야기에선 바로 군대가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이 때의 불, 폭발인란 것이 저의 바둑 이야기에선 바로 군대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허니,정작 그 지겹던 군대가 저의 바둑에선 급수 frame의 shutter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그럼 frame, 장약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유발됩니다.
그것은 저의 “바둑 인격”이 아닐런지요 ?
바둑을 대하는 기사(棋士)의 태도, 식견, 알음알이, ... 등등. 
그러하니, 정작 바둑은 정석이니,
대국 보다도,한편으로는 정신의 개혁, 혁명이 없으면 수가 늘기 어렵다.
저는 이렇게 추리해 보는 것입니다.

저, 개혁이니, 혁명이라 할 때,
총탄의 장약같은 혁명 추동세력이 있어야 하고,
한편으론 혁명의 동기, 敵이 있어야 합니다.
저 敵이야말로 혁명의 전제임이니,
실로 혁명이란 적과 함께 자라는 것 아닐런지요 ?

저의 앞선 글 feedback에서의 noise와 signal의 관계.
댓글 뒷구멍 나들이들의 헤살짓거리.
개구락지들의 합창이 논둑을 뒤덮을 때라야 여름밤이 온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매미들의 악 쓰는 소리라야 비로소 여름이 무르녹습니다.
분란이 지나야,
바람은 그제서야 자신의 첫 페이지를 열고, 새벽을 가르며 지나갑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추론은 시비가 여하간에,
행여 맞더라도 저에게만 유효합니다.
혹, 이런 의론들이 다른 곳에서 행여 빗대 쓰여질까 이를 경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시호탕이라고 있습니다.
소시호탕(小柴胡湯), 대시호탕(大柴胡湯) 모두 肝병에 쓰입니다.

하지만, 모든 간환자에게 쓰여서는 아니 됩니다.

千人이 있으면,千人에 맞는 처방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모든 간병환자에게 일괄 시호탕을 쓰면,
혹인은 치료되지만,
혹인은 외려 독으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千人의 千病엔 千藥이 있을 뿐입니다.

####

제가 TV를 보지 않은지 오래전이라,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엔 설날 연휴에 특집으로 바둑대국을 방송했습니다.
그런데, 바둑은 殺氣를 뿜어 다투는 것이라,
정초엔 바둑을 두지 않는 게 예법입니다.

논어에 보면 바둑에 대한 공자님 말씀이 나옵니다.

"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者乎? 爲之猶賢乎己"
종일 배터지게 먹기만 하고 마음씀이 없는 사람은 어찌 할 수 없다.
바둑이나 장기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지 않겠는가 !

이로 미루워 공자는 기박(碁博)을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적극 나쁜 것으로 나무라지 않았음이니,
요즘 스트레스에 파김치가 된 이에게 당의정으로 건네지는
여가활용이란 미명하에 바둑이 각광을 받을 때,
공자님의 저 말씀은 여간 천만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한 때 바둑을 좋아했습니다만,
이게 너무 시간을 잡아 먹는다는 폐단이 있습니다.
한번 바둑을 차리면, 족히 하루가 다 소비됩니다.
그래서 삼갔던 것인데,
이러다 보니 어느덧 바둑을 두지 않은게, 사뭇 오래전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지금 두어보면 훨씬 바둑 수가 줄었을 듯 싶습니다.
더욱이 군대를 다시 한번 더 갔다오지도 않았으니,
틀림없이 바둑 수가 대폭 줄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군대 두 번 가지 않는 세상이 제겐 너무 행복합니다.
우선은 또 다시 박박 기지 않아도 되고,
한번만 더 가면 “내가 말야 바둑 9단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이리 맘껏 우쭐거려도,
시비 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은 아마추어 강8급으로 명인기원을 들어서자 마자
장내에 웃음소나기를 퍼붓었다고 하였습니다만,
저는 이제 빛 바래 이미 죽어 있을 前2급으로
이곳 ooo를 이리 재미없어서 허탈하게 웃겨드렸습니다.

'소요유 > 묵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로(披露)와 피력(披瀝)  (0) 2008.02.14
대수의 법칙과 물태우의 법칙  (4) 2008.02.13
line feed와 carriage return & 2편집인  (0) 2008.02.13
전이급(前二級) 바둑  (0) 2008.02.13
feedback(피드백)  (0) 2008.02.13
주리(主理)와 주리(主利) - 남녀의 code  (0) 2008.02.12
매실 이야기  (2) 2008.02.11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