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부조(扶助)

소요유 : 2009. 8. 3. 23:07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는데 처가 내게 말한다.
어느 외국인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제법 명성이 높은 편인데,
그 까닭은 그의 뛰어난 요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와 관련을 맺은 사람들로부터의 호평도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예컨대, 지인 하나가 음식점을 개업했는데,
경영이 여의치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그 요리사가 아낌없이 조언을 하며 그를 도와주었다 한다.
이렇듯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심 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러하니, 도움을 받은 그의 지인들은 감격하여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그를 칭찬하였고 이게 그의 명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한다.

그러하니, “남을 도운다는 것은 역시나 사뭇 아름다운 일이다.”
결국 나는 처와 이런 결론에 이르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 때 한 마디를 보태었다.
“잠깐 하나 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 있다.”

이런 서사(敍事)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결론이 뻔히 정해져 있다.
“남을 도운다는 것은 역시나 사뭇 아름다운 일이다.”
“남을 도우면 결국 자신에게도 보탬이 된다.”
“그러하니 남을 적극 도와라.”

하지만,
나는 처에게 이리 말했다.
“이 이야기가 완성이 되기 위해서는, 내 말을 마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처에게 이하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 더 보태었다.

춘추오패 중에 하나이자, 으뜸 패자(覇者)인 제환공(齊桓公) 이야기다.

어느 날, 홀연 형(邢)나라가 제나라에 사람을 보내와 급히 고했다.

“적(狄,오랑캐)이 또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습니다.
저희는 세가 약하여 감히 지탱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저희를 구원해주십시오.”

제환공이 관중에게 묻는다.

“형나라를 구해야 할 노릇인가?”

관중이 대답하여 아뢴다.

“여러 나라 제후가 우리 제나라를 섬기는 것은 제가 저들의 재앙과 환란을 구해주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위(衛)나라를 구해주지 않았고,
이제 또 형나라를 구해주지 않으면 패업을 이루는데 손상이 갑니다.”

제환공이 묻는다.

“그렇다면 형나라를 먼저 도와야겠소?
아니면 위나라를 먼저 구해야겠소?”

관중이 대답하여 아뢴다.

“형나라부터 도와준 후에,
위나라에 성을 쌓아주면 이는 백세의 공이 될 것입니다.”

제환공이 말한다.

“옳거니!”

즉각 노, 조, 주나라에 격문을 보냈다.
섭북(聶北)에 모두 모여 우리 제와 군사를 합한 후,
형나라를 구하자는 것이었다.
송, 조나라 군사가 먼저 당도했다.

관중이 또 아뢴다.

“적(狄)이 바야흐로 기세가 뻗치고 있습니다.
형나라는 아직 완전히 기진맥진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적군의 기세가 클수록 우리의 노고는 배가됩니다.
아직 형나라의 기세가 다하지 않았는데 그를 도우면,
그 공이 적으니 조금 더 기다림만 못합니다.
형나라가 적(狄)에게 밀려 지탱하지 못하게 되면 필경 궤멸될 것입니다.
적(狄)이 형나라를 이기면 필시 피로할 것입니다.
피로한 적(狄)을 치고, 궤멸되는 형나라를 구원하면,
힘을 아끼면서 공은 크게 세울 수 있습니다.”

제환공은 관중의 이 꾀를 채택했다.
노, 주나라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핑계를 대고는,
섭북 땅에서 둔을 쳤다.
그리고는 첩자를 보내어 형나라와 적(狄)의 형편을 살폈다.

忽邢國遣人告急,言:“狄兵又到本國,勢不能支,伏望救援!”
恒公問管仲曰:“邢可救乎?”

管仲對曰:“諸侯所以事齊,謂齊能拯其災患也。不能救衛,又不救邢,霸業隕矣!”
恒公曰: “然則邢、衛之急孰先?”

管仲對曰:“俟邢患既平,因而城衛,此百世之功也。”

恒公曰:“善。”

即傳檄宋、魯、曹、邾各國,合兵救邢,俱於聶北取齊。
宋、曹二國兵先到。

管仲又曰:“狄寇方張,邢力未竭;敵方張之寇,其勞倍;助未竭之力,其功少,不如待之。
邢不支狄,必潰,狄勝邢,必疲。
驅疲狄而援潰邢,所謂力省而功多者也。”

桓公用其謀,托言待魯、邾兵到,乃屯兵於聶北,遣諜打探邢、狄攻守消息。

결국 형나라가 거덜이 날 정도가 되도록 방치하다가,
제나라는 나중에 나서 그들을 구했다.
내막을 제대로 모르는,
형나라 모든 백성은 마냥 제환공을 칭송하고, 고마워했다.

도움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저들을 환란 속으로 밀어 넣고,
나중에 의뭉 떨며 나타나 생색을 크게 내었으니,
이런 술수란 게 저들에겐 제법 득책이 되었을런가?

하지만, 상대가 이 꾀를 나중이라도 모를 텐가?
만약 이를 눈치 채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된다.

결국 이런 종류의 술책이란 교묘한 위장과 숨김이,
긴장 속에서 행해져야 성공한다.
막상 도움을 받을 당시,
상대는 궁지에 몰렸으니 이를 세세히 살필 처지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중에 한 숨 돌리고 형편이 나아졌을 때,
이 내막을 알게 되면 그 공은 도리어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이 지경이 되면 이것은 ‘도움’이 아니라 그저 거래요 흥정, 투자라 불러야 할 것이다.

나는 처에게 말했다.

“남에게 도움을 주려 할 때,
관중의 이런 술책을 취하려 함이 옳다 그르다 함을 말하려 함이 아니라,
이런 부조(扶助)의 배리(背理)가 도움의 수수(授受) 현장에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아지 못하면 그저 순진한 멍텅구리가 되고 말지.
그러하니 저 요리사 이야기는 내 이야기를 마저 겸해 들어야,
그 마친 끝을 제대로 보게 된다.”

마냥 순진한 이야기, 달콤한 이야기는 그래서 가끔은 경계가 필요하다.
슬픈 노릇이다.

하기사,
부자 감세에다, 부동산 등귀(騰貴)를 방조하는 현 정권도,
어느 날 새벽녘 자리에서 일어나,
새 소식이거니 하고 듣고 있자면,

“우리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폈다.”

이리 낯가리지 않고 말을 펴 다려 내놓는다.
매일 맞는 새벽이 도대체 새벽 같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이쯤이면,
관중의 술책이 오히려 순진하니 양심적이다.

헐벗은 거지 사타구니는 미쳐 가릴 바도 없으니,
비록 동지섣달이라 하여도 밑천이 그저 드러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 다 드러난 이 마당,
경계조차 필요 없는 이 시대는 차라리 어찔하니 현기증이 나도록 현란(眩亂)하다.
이런 뻔뻔함이 극치에 다다른 문란(紊亂)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내일이란 이름으로 기대를 유보해도 좋을,
한 조각이나마 푸른 공간이 남아 있을까?

***

글을 마치려니 마침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를 마저 더 보태 이 글을 조금 더 꾸며본다.
부조(扶助)를 주제로 한 생각의 공간을 넓혀 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정무공(鄭武公)이 호(胡)를 공격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우선 그의 딸을 호에게 시집보냈다.
그가 군신을 모아놓고는 묻는다.

“군사를 출동시켜 어느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러자,
관기사(關其思)가 대답해 아뢴다.

“호를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무공은 버럭 화를 내고는 관기사를 처형했다.

“호는 우리와 형제의 나라다.
어찌 그 나라를 공격할 수 있음인가 말이다.”

호왕(胡王)은 그 말을 듣고는 정나라가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나라에 대하여 경계를 하지 않았다.
정나라는 호를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 유사 관련 참고 글 : ☞ 2008/11/13 - [소요유] - 귀인(貴人)과 중고기)
(※ 이어지는 참고 글 : ☞ 2009/08/10 - [소요유] - 부조(扶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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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09. 8. 3. 2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