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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지일고(伯樂之一顧)

소요유 : 2009.08.14 20:19


앞글에 이어,
이야기를 보탠다.

戰國策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소대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유세차 떠났다.
(※ 소대는 합종연횡술 중 합종책의 주인공 소진의 동생이다.)
아직 제나라 왕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먼저 순우곤을 만나 이리 꾀어 말했다.

“어떤 사람이 준마를 팔려고 시장에 삼일 동안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도통 알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락에게로 가서 이리 말했다 합니다.

‘제게 준마 하나가 있습니다.
이를 팔려고 삼일 동안 장터를 서성거렸지요.
하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제발 바라노니 선생께서는,
제 말을 한 바퀴 휘 둘러보시고는 가실 때 슬쩍 뒤로 한번만 돌아봐주세요.
제가 하루치 장사 매상고만큼 사례를 하겠습니다.’

이러자, 백락은 휘 그 말을 둘러보고는 가면서 슬쩍 뒤로 돌아보며 눈길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러자 단박 하루아침에 말 값이 열배로 뛰어올랐습니다.
이제 오늘 제가 준마로써 왕을 만나 뵈려 하나,
저를 위해 선후사를 주선해 주는 자가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부디 저를 위해 백락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면 백옥 한 쌍과 황금 만일을 말 먹이로서 드리겠습니다.”

순우곤이 말한다.

“삼가 명을 받잡아 좇겠습니다.”

순우곤이 들어가 왕에게 이를 말하여 고한즉,
그를 불려 들여 보더라.
제왕이 소대를 접견하고는 크게 기뻐하였다.

蘇代為燕說齊,未見齊王,先說淳于髡曰:“人有賣駿馬者,比三旦立市,人莫之知。往見伯樂曰:‘臣有駿馬,欲賣之,比三旦立於市,人莫與言,愿子還而視之,去而顧之,臣請獻一朝之賈。’伯樂乃還而視之,去而顧之,一旦而馬價十倍。今臣欲以駿馬見於王,莫為臣先後者,足下有意為臣伯樂乎?臣請獻白璧一雙,黃金萬鎰,以為馬食。” 淳于髡曰:“謹聞命矣。”入言之王而見之,齊王大說蘇子。

이 이야기로부터 소위 백락지일고(伯樂之一顧)란 고사가 생겼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한들,
왕을 만나지 못하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아무리 현책(賢策)이라 한들,
왕의 신임을 받아 채택이 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소대로서는 자신의 실력이나 현책이 문제가 아니라,
(※ 실제로는 현책이 아니라, 제나라를 해치려는 간책(奸策)임.)
왕을 우선은 만나고 못 만나고가 중요한 문제이다.

중소기업에서 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한들,
지명도가 낮으면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이 때 유명 브랜드와 손을 잡고 그 브랜드 우산을 쓰고 등장하면 한결 수월하다.
거꾸로 질이 그렇고 그런 제품도,
유명 브랜드란 허울을 뒤집어쓰고 나타나면, 제법 잘 팔린다.

一朝之賈 : 하루치 장사 매상고, 또는 삯.
白璧一雙,黃金萬鎰,以為馬食。: 백옥 한 쌍, 황금 만일

이것이 바로 중개 구전(口錢)이고,
한 발 더 나아가 발전 하면 브랜드 가치가 된다.
백락이 다만 뒤를 슬쩍 돌아보는 가치의 현대적 표현은,
다소 건조하지만 이것과 대차가 없다.

만약 말을 사간 사람이 둔마(鈍馬)에 불과한 것을 알게 되면 어찌 될 터인가?
그 자는 혹 이리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백락이 말을 뒤돌아 본 게 아니라, 목이 아파 잠깐 목운동을 한 것을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한 두 번은 이리 넘어 갈 수 있지만,
이게 여러 번 계속 되면 백락의 명성에 금이 가고 만다.

그런즉 아무리 찔러주는 뒷돈이 탐이 나도,
백락 입장에서는 함부로 응할 수만도 없다.
어느 정도는 수준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하니 명성에 금이 가지 않을만한 정도까지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한편 말 주인 입장에서는 말을 팔고 쥔 돈에서,
백락에게 줄 뒷돈을 제하고도 이문을 남길 만 해야 한다.
이 양자의 한계효용이 마주치는 선에서,
흥정과 타협이 이루어진다.

순우곤의 경우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백옥과 황금을 탐하다가 잘못 인재를 추천하게 되면 까딱 잘못하면 목이 달아난다.
순우곤은 췌마(揣摩)라 부르는 소위 독심술을 익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목은 하나인 것이다.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에는 ‘브랜드 가치’가 하나의 재화로 인식되고 있다.
예전처럼 뒤로 찔러주는 인정전(人情錢)이거나 뇌물이 아니라,
당당히 양지로 나와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얼굴 팔아먹고, 몸뚱아리 파는 것이 예전에는 모두 주점, 기방(妓房) 등에서,
어스름 황혼녘 뒷전에서 은밀히 이루지는 금도(襟度)라도 지켜졌으나,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벗어 재낀 제 몸뚱아리를,
백주대낮 공중에 드러내길 사뭇 기꺼워하는 한편,
행여라도 뒤쳐질까봐 안달을 한다.

게다가 예인(藝人)들이 이제는 자칭타칭 공인(公人)이라고 으스댄다.
나로서는 저들이 공인(公人)과 공인(共人)이나 분별하고 저러는가 의심스럽다.

아니 왜 저들이 공인(公人)인가 말이다.
공인(公人)이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를 이름이다.
대중 앞에 서는 일이 어찌 공적인 일인가?
저들은 사적 이해에 따라 기획하고 연출하고,
자기계산에 따라 경제행위를 하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나는 저들이 굳이 공인이라고 불리우길 원한다면,
공인(共人)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거나 공인(工人)이라 부르는 편이 그나마 조금 낫다고 생각한다.
그렇다한들 공연히 오해를 일으키는 공인이란 말을 쓸 바 없이,
그냥 바르게 예인, 연예인으로 부르는 것이 마땅한 노릇이리라.
공인(共人)이라 함은 한 가지로 함께 즐기고 노래하는 사람이란 뜻이겠거니와,
저들은 대중과 함께 한 자리 마당에서 흥감(興感)함으로써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말의 뜻을 한번 더 꺽어 풀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닌 즉, 이 자리에서는 숨겨 감춘다.
한편, 공인(工人)이라 함은 조선 시대에 악기를 연주하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을 뜻하니,
악공(樂工), 고인(鼓人) 등이 그것이다.
나는 차라리 이 뜻을 늘려 펴 저들이 원하는 대로 공인(工人)이란 이름을 돌려줄까 한다.

혹자는 이르길 대중적 영향력이 있으니,
공인(公人)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은가 하는 사람도 있다.
대중적 영향력이 있다면 그럼 그들이 대중을 위해 진정 제 사익을 헐어,
사회에 환원을 하기라도 하였단 말인가?
나는 당연 그들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 채근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 사익을 위해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였을 뿐이지,
애시당초 공적인 봉사를 위해서 세간에 나타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함이니, 공적인 봉사를 해라, 말라 할 수도 없고,
이를 기대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저들이 여느 사람처럼,
그저 제 직분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좋겠다.
공인 아닌 사인으로서 말이다.
그러다 혹 잘 팔려,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면,
그저 고마워하고 겸손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백 번 양보하여,
그 모습이, 행실이, 정녕 아름다워서 남들이 공인(公人)이라고 부른다며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나서서 부끄러움도 없이 자칭 공인(公人)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語弊)를 넘어 작폐(作弊)가 심한 노릇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갓 길로 잠시 접어들었다.
다시 제 길로 바로 들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백락의 일고(一顧)란
기왕의 권위, 명성이 가진 파워를 말한다.
시장에 가면 장삼이사 모두 뒤를 힐끗 돌아볼 수 있다.
그렇다한들 여기 마음을 얹어 두고 모종의 의미를 건져 올리는 일은 좀체 없다.
하지만, 백락이 뒷 눈길 한번 주면 열배의 가치가 새로 생긴다.
가히 마이더스 손을 방불한다.

그러하다면,
천하의 명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작 백락이 있음으로서 비로소 명마가 탄생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모수(毛遂)가 먼저 있어봤자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가 평원군(平原君)에게 발탁되어서야 비로소,
모수(毛遂)란 인물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송곳이 저 홀로 꼿꼿한 것이 아니다.
주머니에 집어넣어져야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 때라서야 비로소 송곳의 날카로움이 만천하에 알려진다.
(※ 참고 글 : ☞ 2008/07/24 - [소요유] - 낭중지추(囊中之錐))

가사(假使), 어떤 화상이 일고(一顧)의 가치도 없다며 시부렁대며 외면한다한들,
제까짓 놈이 그러는 것이 그게 무슨 대수랴,
백락의 일고(一顧)라야,
둔마가 명마로 변신하고,
지렁이가 문득 용이 되어 하늘가로 날아오른다.

중국의 쓰레기 정크 제품도,
그럴듯한 브랜드 고깔을 씌우면 천하의 명품이 된다.

상(相)이 허물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세상은 상(相)이 아니라 이미지 즉 상(象)으로 기체화하고 있다.
저 아찔아찔 현기증 나는 추상의 세계로 사다리조차 없이,
그저 깃털이 되어 가없이 비상(飛翔)하고 있음이다.

백락의 일고(一顧)가 아니라,
음란한 계집의 추파(秋波)처럼 말초(末梢)가 짜릿하니 저려오는,
유혹의 거리로 변한 당대에도,
하마, 천하지마(天下之馬)가 어디엔가 숨어 있을까나?
백락이 돌아온들,
여기, 오늘,
천하지마를 과연 불러들일 수가 있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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