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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모려황(牝牡驪黃)

소요유 : 2009.08.14 18:28


전일 동물상법에 대하여 글을 올리고 보니,
이야기가 동물 그리고 상에 미치어 이어지고 있다.
해서 몇 가지 옛 이야기를 더듬어 본다.

다음은 열자(列子) 설부(說符)에 실린 이야기다.

진목공이 백락에게 일러 말한다.

“당신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네,
그대 자손 중에 자네 대신 말을 잘 구할 사람이 있을까나?”

백락이 답하여 아뢴다.

“좋은 말이란 형용, 근육, 뼈를 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천하의 명마는 꺼지 듯, 숨 듯 하며,
없는 듯, 잃은 듯하여,
마치 먼지하나 내지 않고, 자취 하나 남기지 않기도 합니다.
신의 자식 놈들은 모두 재주가 하급입니다.
양마(良馬)는 모를까, 천하의 명마(名馬)는 알아볼 기량이 없습니다.
저에게 땔나무와 채소를 져다 날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구방고라 하지요.
이 사람은 말에 관한 한, 신보다 결코 쳐지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만나 보십시오.”

진목공은 그를 접견했다.
그리고는 말을 구해오라고 시켰다.
석 달 만에 돌아와 고한다.

“이미 얻어 왔습니다.
사구(沙丘)에 있습니다.”

목공이 말한다.

“어떤 말인가?”

대답하여 가로되,

“암놈으로 누렁이입니다.”

사람을 시켜 데려오게 했는데,
그것은 숫말에 검었다.

목공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는,
백락을 불러 말한다.

“엉터리 같으니라고!
당신이 시켜서 말을 구하러 보낸 자는 색도 구별하지 못하고,
암수도 분별하지 못하니,
또한 어찌 말을 알아볼 수 있겠소?”

백락이 탄식하며 크게 한숨을 쉬면서 아뢴다.

“마침내 이리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천만 명의 신하가 있다하나 하나도 없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구방고가 본 것은 천기(天機) 즉 하늘의 기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정수를 얻었으되 그 나머지 거친 것은 잊은 것이며,
그 속 본질은 살피되 거죽 바깥은 알 바 없이 버린 것이옵니다.
그는 봐야 할 것은 보고,
보지 않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살펴야 할 것은 살피고,
살피지 않아야 할 것은 살피지 않은 것입니다.
구방지가 말의 관상을 본 바, 이내 말의 귀한 것이 있음을 알아보았을 뿐입니다.”

말이 당도하니,
과연 천하의 명마이더라.

秦穆公謂伯樂曰:“子之年長矣,子姓有可使求馬者乎?”伯樂對曰:“良馬,可形容筋骨相也。天下之馬者,若滅若沒,若亡若失,若此者絕塵弭轍。臣之子皆下才也,可告以良馬,不可告以天下之馬也。臣有所與共擔纏薪菜者,有九方皋,此其于馬,非臣之下也。請見之。”穆公見之,使行求馬。三月而反,報曰:“已得之矣,在沙丘。”穆公曰:“何馬也?”對曰:“牝而黃。”使人往取之,牡而驪。穆公不說,召伯樂而謂之曰:“敗矣,子所使求馬者!色物、牝牡尚弗能知,又何馬之能知也?”伯樂喟然太息曰:“一至于此乎!是乃其所以千萬臣而無數者也。若皋之所觀,天機也,得其精而忘其粗,在其內而忘其外;見其所見,不見其所不見;視其所視,而遺其所不視。若皋之相馬,乃有貴乎馬者也。”馬至,果天下之馬也。

이 열자의 이야기에서 빈모려황(牝牡驪黃)이란 고사성어가 생겼다.
빈(牝)은 암컷, 모(牡)는 수컷을 뜻하는데,
노자에서는 현빈(玄牝)이라 하여 천지만물의 근원으로서 암컷을 들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빈모란 암수이니 구방고가 암수를 구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게 본질이 아니니 암컷 말이라 부르든 수컷 말이라 부르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려(驪)는 가라말을 뜻하는데 털빛이 온통 검은 말을 가리키는데 본시 몽고 말(語)에서 유래한다.
털빛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의 기상(氣相), 기운(氣運), 정신(精神)이란 것이렷다.
구방고는 은근히 외로 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털빛을, 암수를 잊어버려도 좋은 것이야!
네들이 이 이치를 알아!”

이리 한껏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숙맥불변(菽麥不辨)이란 콩인지 보리인지 구별 못하는 경우 쓰이는 말이다.
헌데, 빈모(牝牡), 려황(驪黃)을 구별하지 않으면 상마(相馬)의 달인이 되는데,
숙맥(菽麥)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는 어찌 하여 칠칠치 못한 위인으로 불리워지는가 말이다.

빈모려황(牝牡驪黃)는 또한 백락상마(伯樂相馬)란 사자성어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어쨌건 이 말을 빌어 경계하고자 하는 바의 그 본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대함에 있어,
외모에 치중하지 말고 본질을 바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새겨진다.
과연 그것으로 족한가?
그것만으로 이 고사의 소임은 다하고 있음인가?

위 본문에 보면 양마(良馬)는 얼굴 생김, 근육, 골격 등을 보고 판별할 수 있지만,
천하의 명마는
若滅若沒,若亡若失,若此者絕塵弭轍。
즉 그 형체조차 가늠할 수 없이 자취를 거죽으로 남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어찌 거죽으로 들어난 상(相)으로 명마 여부를 알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죽 상(相)이 아니라 심상(心相)을 읊어내야 한다.
이 중간에 서 있는 것이 관상학에서 말하는
기색론(氣色論)이자 관안술(觀眼術)이다.
관안술은 결국 정기신(精氣神) 중 신(神)을 눈빛을 보고 알아내자는 것이다.
정기신(精氣神) 중, 정(精)은 물질이니 거죽으로 볼 수 있으나,
기신(氣神)은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알아내자니,
거꾸로 상(相)을 보자는 것이다.
위 기색론(氣色論)이자 관안술(觀眼術)의 요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색으로, 또는 눈빛으로 드러나 미리 신호를 발한다는 것이다.
이게 관상학(觀相學)이다.

결국 돌고 돈다.
면상(面相)은 못 믿으니 심상(心相)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이를 무슨 수로?

빈모려황(牝牡驪黃)의 고사를 잘못 받아들이면,
인사(人事)에 임할 때,
얼굴, 경력, 학력 등을 모두 무시하고,
사람 됨됨이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날까 싶기도 하다.
마치 심상이 중요하니 면상은 아무 것도 아니야 하며 치부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면상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사가 어찌 심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겠음이며,
기하학도 모르면서 측량을 할 수 있겠음이며,
가위질도 못하면서 재단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가 설혹 제 아무리 마음보가 흥부처럼 어여쁘다한들 말이다.

그러하니 면상(面相)도 중요하고 심상(心相)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기술도, 실력도, 경력도, 학력도, 마음보도 때로는 필요에 따라 긴요하다.
그런즉, 빈모려황(牝牡驪黃)에서,
‘빈모(牝牡), 려황(驪黃)이 중요하지 않고 본질이 중요하다’라고만 새기는 것은
구체적 현실에선 오히려 폐단을 일으킬 수 있다.

빈모려황(牝牡驪黃)이란 이야기의 공덕은,
이런 일련의 feedback 사고 과정을 일으키는 환기(喚起), 그 작용에 있지 않을까 싶다.
면상(面相) -> 심상(心相) -> 면상(面相) -> 심상(心相) ....
이리 이어져 가는 일련의 연환(連環)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
도상(途上)에 서 있는 자의 겸손한 삶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중간 어디 한곳에 멈추어 머무르면 죽음(死) 뿐이다.
이와 비슷한 구조의 논의는 진작에 다룬 적이 있다.
(※ 참고 글 : 2008/04/23 - [소요유] - 지식과 지혜)

게다가 나는 말하고 있다.

"觀相不如心相"에 보태,
"心相不如一枝行."인 게다.

관상은 심상보다 못하다 하지만,
심상은 단 한 조각의 행동에 미치지 못한다.

***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백락이 등장하였으니, 이야기 하나 더 보태야겠다.
글을 토막 내 다음 차 본 글로 이어 실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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