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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와 쓰레기 2

소요유 : 2009.09.17 16:14


오늘 미리 벌초를 다녀왔다.
수십 년 전 그 일대는 포도밭 등으로 수십만 평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 상전벽해 차들이 씽씽 달린다.
예전에 다니던 길은 끊기고 새로 신도시가 들어서는가 보다.

당시 산에 오르려면 헉헉 대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힘이 넘쳐 단 숨에 산소에 이른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쇠하고 말련만,
나는 지금 오히려 힘이 여전하다.
여전한 것이 자랑이 아니다.

나는 이발을 하러 동네 단골 미장원에 들른다.
턱하니 의자에 않으면,
이내 생각 키운다.
무명초(無明草).
바삐도 자란다.
번뇌는 왜 이리 성(盛)한가?
스님들은 삭도로 아예 싹 밀어버린다.
무명이, 번뇌가 민다고 과연 다 없애지기라도 하나?

다 늙도록 財色을 밝히는 것도,
힘자랑하는 것도,
이내 자라고 마는 무명초(無明草)처럼,
번뇌가 아니런가?
언제 불어 끌 터인가? - 吹消吹滅.

열반(涅槃)은 그래서 Nir(消) + vana(吹)라 했다.
갈애(渴愛)는, 번뇌는 어찌 검은 머리카락 자라듯 쉼이 없는가?

예초기를 매고 산에 오르니,
이미 누군가 먼저 벌초를 하고 말았다.

거기,
한 점 바람도 없는
한 낮,
하얀 빛의 비늘이,
묏등을 쓸며 자락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큰 것은,
하나 하나 셀 법도 싶구나.

나는 주변을 죽 돌아본다.
작년에도 나는 이웃 뫼를 돌아보며 쓰레기를 주은 것이 아니라, 차라리 캐어내었었다.
(※ 참고 글 : ☞ 2008/09/03 - [소요유] - 벌초와 쓰레기)
오른 쪽, 바로 아래, 위 산소께를 보니 쓰레기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꽃을 쌌던 비닐,
캔,
플라스틱 화분,
스티로폼 접시, 그릇, 담배꽁초.

오살을 맞을 놈들.

제 조상 성묘 와서는 쓰레기를 슬쩍 버리고 가는
저 치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꽃다발을 바치려는 마음과,
그 꽃다발을 쌌던 비닐을 옆에다 그냥 휙버리는 마음이 어찌,
그 날 제 조상 묏자리에서 동시에 병발할 수 있는가 말이다.
둘 중 하나는 필경 가식(假飾)이 아니겠는가?

가식이 아니라면,
내 묘 아니면,
더럽혀도 그 뿐이란 그 더러운 셈법,
그 지저분한 영혼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제 조상 묏자리에 올라와서도,
쓰레기를 버릴 양이면,
도대체 왜 성묘를 가야 하나?

이 위선들.
가증스런 치들.
제 집에 돌아가서는,
백주(白晝)엔 거죽으로 넥타이 매고, 점잖 떨면서,
어두운 가운데서는 제 음욕을 채우려고 게걸스럽게들 헐떡이겠지.

내가 사방을 훑어 수거하여 내려가서는 관리인을 만났다.
관리인이 말한다.

“여기 고랑을 보세요.
저들이 여기에다 버려서 이 지경입니다.”

입구 한켠 골짜기는
그저 쓰레기 밭이다.
성묘객들이 버리고 갔다 한다.

여기 이곳은,
요즘엔 단독 산소를 개비하여,
가족묘로 바꾼 것이 적지 않다.
거문 돌로 열병하듯 늘어선 돌덩이들을 보니,
가뭇가뭇 슬픈 정조가 귓가를 쌩하니 흐른다.

흙으로 봉분을 돋은 것은 백년, 천년 가면 허물어져 스러질 터이지만,
그리 자 대고 반듯하니 베어낸 돌로 쌓은 것들은 어찌 될 것인가?
저 무성한 자손들도 어느 날인가 가물 때가 있을 터인데,
때에 이르러서는 어찌 될 것인가?
차라리 화장이 얼마나 깨끗한가?

드문드문 버려진 산소들을 보게 될 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에도 예초기를 가지고 올라갔지만,
나중에 내려오면서 하나, 둘 정도는 내가 손 좀 봐드려야지 했었다.
풀은 마치
國破山河在,城春草木深。
바로 이 장면처럼 어지럽게 자라 있다.
필경 자손이 외국에 나갔거나,
손이 끊겼을 터라.

예초기를 조립하는 것은 제법 번거롭다.
해서, 일없는 예초기를 조립하는 것을 생략했으니,
이번에도 못해드렸다.
내년엔 한 발 앞서 와서,
예초기를 쓰련만,
그 때를 기약하고 만다.

봉두난발(蓬頭亂髮)
버려진 묏등은 저리 어지러운 데,
묘석으로 철갑을 두른 가족묘들은 수 십기가 차갑게 도열해 있다.
이 묘한 흑백의 대비가 너무 생경스럽다.
북망산에서까지 갈려 권병(權柄)을 휘두르고,
모창(矛槍)으로 위엄을 더하려는 저 안타까움이란,
도시 저 늘어선 정적보다 더 서늘하니 무겁다.

한 낮의 에피타(epitaph)는,
부조리한 현장을 홀로 지켜보고 있다.
뫼르소의 태양은,
물고기 비늘 같은 백색 포말들을 누군가의 묏등에 떨군다.
다 내려오자,
불암산 묘역 아래도,
씽씽 달려가는 차량들로 매연이 난분분(亂紛紛)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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