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

소요유 : 2009. 9. 29. 10:37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겪은 일이다.
대로로 들어가는 좁은 길목 앞에 이르렀다.
내가 막 대로로 진입하려는 중인데,
대로에 서 있는 버스가 바로 앞길을 막고 서있다.
나는 반쯤 열린 길을 빗겨 핸들을 크게 꺾어서는 대로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핸들을 바로 트는데 그 때쯤 버스가 서서히 길을 터내고 있었다.
그 사춤에 바로 내 뒤에 섰던 차량이 내 차와 버스 사이를 비집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나는 그 때 핸들을 바로 잡고 버스를 따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간발의 틈을 노려 잽싸게 그 차가 고개를 살짝 넣고는 달려가려 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삽두족(揷頭族)이라고 하여야 하나?
(※ 참고 글 : ☞ 2008/10/21 - [소요유] - 삽족배(揷足輩))
내가 만일 그를 의식하지 않고 속력을 높였다면,
필경은 그 자와 충돌하였을 것이다.

내가 선행 차이었음인데,
그자가 나를 앞서면 나는 필경 그의 뒤를 따르게 된다.
혹은 이어 그 차를 뒤 따르는 차들이 따라 나서게 되면,
나는 대로에 그냥 서 있어야 할 판이다.
선행 차를 뒤 따르는 차가
앞 차를 차분히 지켜보아줄 단 수초 간의 여유도 증발한,
어두운 저녁 길엔 낯선 승냥이 울음이 ‘커~엉 컹~’ 하늘가로 지피어 오른다.
마침 잿빛 포도(鋪道)위 천 길 높이엔,
초승달이 페르시안 삼쉬르(shamshir)처럼 희고 차갑게 빛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rc : http://www.vikingsword.com/ethsword/shamshir/index.html)

앞 선 차는 뒷 차를 편안히 유도하고,
뒷 차는 앞 차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수는 없는가?

이건 뭐 완전히 살벌한 전쟁터가 아닌가 말이다.
차에 올라탄 순간 저들은 철갑옷을 두르기라도 한 양,
핸들을 창검(槍劍) 삼아,
염치 팽개치고 실틈을 노려 상대를 겁탈하려고 눈알이 시뻘겋다.

내 경우는 평생토록 방향 지시등을 켜고 끼어들기를 하겠다는
차량에게 앞길을 양보하지 않은 적이 없다.
설혹 한참 멀리 앞에서 점멸등을 켜고 들어서려는 차일지라도,
형편에 따라 우정 길을 늦춰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곤 한다.

도대체가 사람은 뒤에 눈이 달리지 않았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경우엔 뒷 차가 앞 차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점멸등도 없이 치고 급히 들어오는 치한들은
나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렇다한들, 약삭빠른 저들에게 거지반 당하고 말지만.

언제 차도를 저 홀로 독점할 권한이라도 가졌단 말인가?
양보, 이게 당연한 것이지만,
앞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인생에서 크게 지는 것이라도 되는 양,
막무가내 틈새로 대가리를 쑤셔 박는다.
모두 하나같이 천격(賤格)들이다.

우리 처가 동네 아주머니 하나를 사귀었다.
그 아주머니 왈,
자기 남편은 남들은 다 서있는 직진 차선을 이탈하여,
좌회전 차선으로 바꿔 달려 맨 앞에 서서는,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직진 차선으로 앞질러 달려 나간다고 한다.
자기가 옆에 타고 있다가 비상등을 점멸하며 뒷 차량에게 미안한 표시를 하면,
그 남편은 그런 짓을 바보처럼 왜 하느냐고 나무란다고 한다.
못하는 게 바보지 무엇이 어떠냐고 기세등등하다고 한다.
나는 어쩌다 행여 그 자를 소개 받을까 두렵다.

이 이야기를 나는 오늘 새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9/25/2009092501758.html
이 글을 읽자 이 분이 어이하여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싶은 것이다.

우리 동네 저 아저씨가 기염을 토하며 기고만장하지만,
기실 그의 만행(蠻行)은 그 외의 선량한 사람들 때문에 가능하다.
만약 만인이 모두 저 자 방식대로 대로를 달린다면,
아마 한 식경(食頃)도 되지 않아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대저, 그 자가 비웃는 저들 선량한 사람들의 희생을 전제로,
저 자는 한껏 제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그가 믿듯이 저 홀로 유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홀로 파렴치할 뿐이다.
그가 지혜롭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교활할 뿐이다.

남을 속이고, 남을 등쳐서,
장사하고, 정치하면 자신에겐 적지 아니 이가 남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잘 나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나머지 정직한 사람들이 정갈한 멍석을 깔아놓았기에,
그가 거침없이 그 짓을 해도 용케 사회가 굴러 가는 것이다.
그로서는 여럿에게 신세를 지고, 천년 빚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 강은교는 이리 노래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잘난 그대 뒤엔,
어진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야말로 햇빛보다 더 따사로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지하씨는
정운찬씨가 천만 원 받았다고 시인한 것을
맹자를 빌어 명지(明志)라 이르고 있음인가?

그러하다면, 그보다 먼저 천만 원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암지(暗志)가 아닐런지는 몰라도 최소 명지(明志)는 아닐 터.
그러하다면 일엔 반드시 선후가 있을 터인데,
先은 박하게 깎아 아니 다루고,
後만 후히 앞세워 치켜세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孟子 滕文公下>
“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
得志與民由之,不得志獨行其道。
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천하의 넓은 곳에 거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도를 행하라.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말미암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
부귀가 음탕케 하지 못하며, 빈천이 지조를 옮겨 놓지 못하고, 위무가 절개를 굽히게 할 수 없다.
이를 대장부라 이른다.”

김지하씨가 맹자를 거론하니,
그가 과연 맹자 전부를 읽었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

정승 자리를 탐하여,
절개와 지조를 버린 것이 아니라면,
어이하여 정운찬씨는 평소 지론을 바꿔 4대강 사업을 인정하고 있겠음인가?

게다가 김지하씨는 어이하여,
정운찬씨의 병역회피 의혹, 위장전입, 세금탈루, 논문 중복게재 등,
그 숱한 허물을 외면하고,
고작 ‘천만 원짜리 개망신’이라고 낄낄대고 있음인가?
이게 그의 말대로 '×' 같은 일인가?

한 사람이 병역을 피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 짊어져야 한다.
한 사람이 위장전입하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대신 내주어야 한다.

이 자명한 이치를,
김지하씨는 그가 이른대로 고작 천만 원짜리와 비교하고 있음인가?
돈의 값어치로 따지면 과히 천억금이라 이른들 어찌 넘치랴?

그의 미학은,
지금 廣居,正位하고 있음인가?
과연 行天下之大道하고 있음인가?

그의 시학은,
지금 不能淫,不能移,不能屈하고 있음인가?
그는 과연 丈夫인가?

누구든,
맹자를 읽으려면,
바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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