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벼슬, 나이, 덕

소요유 : 2009. 10. 16. 19:07


제선왕(齊宣王)과 맹자 사이에 선약이 있었다.
그런데 왕이 독감(寒疾)에 걸려 만나기 어렵다고 통지가 온다.
그리고는 다음 날 조정에서 만나자고 한다.
이 소리를 듣고는 맹자는 자신도 아프다며 외로 틀어버린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앞에서 이미 잠깐 다룬 적이 있다.
(※ 참고 글 : ☞ 2009/05/20 - [소요유] - 농단과 시장)

이러자, 경자(景子)가 맹자를 상대로 이는 예(禮)가 아니라고 말한다.

다음 장면은 이에 대한 맹자의 말씀이다.

말씀하시되,
“어찌 이를 이름인가?
증자가 이리 말씀했노니,

‘진(晉)과 초(楚)의 부(富)에는 가히 미치지 못하나,
저들은 그 부(富)로써 하거든, 나는 나의 어짊(仁)으로써 하며,
저들은 그 벼슬(爵)로써 하거든, 나는 나의 의로움(義)로써 할지니,
내 어찌 한(恨)스러워 하리.’

하니 어찌 의롭지 않은 것을 증자가 말씀 하셨겠는가?
이 역시 하나의 도리(이치)이니라.
천하에 달(達)한 존귀한 셋이 있다.

벼슬이 하나요, 연치가 하나요, 덕이 하나다.

조정엔 벼슬만한 것이 없고,
향당엔 연치(年齒)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기르는 데는 덕만 같은 것이 없느니.

어찌 그 하나를 두었다고 써(以) 그 둘에게 거만하리오.
(※ 왕은 벼슬 하나이지만, 맹자 자신은 나이와 덕을 가지고 있다는 말.)

고로 장차 크게 이루는 바가 있을 인군(人君)은 반드시 부르지 못할 신하가 있느니라.
꾀하고자 함이 있은즉 나아가느니.
그 덕을 존숭하고 도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못하면 더불어 이루는 바가 없을지니라.
(※ 이 말씀은 신하를 불러도 가볍게 오지 않을 정도의 신하가 있어야지,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와 아첨을 일삼는 신하가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가령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할 정도로,
불러도 쉬이 오지 않을 정도의 신하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탕(湯)이 이윤(伊尹)에게 배운 뒤,
그를 신하로 삼은 고로 수고롭지 않게 왕 노릇을 하였고,
그러므로,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배운 뒤,
그를 신하로 삼은 고로 수고롭지 않게 패왕 노릇을 하였음이다.

이제 천하의 땅이 비슷하고 덕이 가지런해서 능히 서로 지나침이 없음은 다름이 없다.
그 (왕이) 가르치는 신하를 좋아하고, (왕이) 가르침을 받을 만한 신하를 좋아하지 않음이라.

탕(湯)이 이윤(伊尹)을,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을 감히 부르지(召) 못하였다.
관중도 또한 가히 부르지 못하였는데,
항차 관중을 하고자 하지 않는 자임에랴?
(※ 맹자 자신이 관중의 역(role)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즉 자신은 관중보다 훨씬 낫다는 의미이다.
그런 관중을 제환공이 어려워 감히 마음대로 부르지 않고 삼갔다.
맹자 자신은 그런 관중보다 훨씬 낫다.
사정이 이러한데 제선왕이 약속을 깨뜨리고도,
자신을 보자고 감히 조정에 들어오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孟子 公孫丑下>
曰:“豈謂是與?曾子曰:‘晉楚之富,不可及也。彼以其富,我以吾仁;彼以其爵,我以吾義,吾何慊乎哉?’夫豈不義而曾子言之?是或一道也。天下有達尊三:爵一,齒一,德一。朝廷莫如爵,鄉黨莫如齒,輔世長民莫如德。惡得有其一,以慢其二哉?故將大有為之君,必有所不召之臣。欲有謀焉,則就之。其尊德樂道,不如是不足與有為也。故湯之於伊尹,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王;桓公之於管仲,學焉而後臣之,故不勞而霸。今天下地醜德齊,莫能相尚。無他,好臣其所教,而不好臣其所受教。湯之於伊尹,桓公之於管仲,則不敢召。管仲且猶不可召,而況不為管仲者乎?”

***

맹자의 프라이드는 실로 대단하다.

남의 부(富)와 벼슬(爵)에 대해
맹자는 인(仁), 의(義)로써 맞선다.

왕이야 기껏 물려받은 벼슬이 자신보다 높을 뿐,
나이도 자신보다 적고, 게다가 덕도 못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한데도 먼저 약속을 깨고는,
자신 보고 다음 날 조정에 들어와 보자고 하니,
맹자는 배알이 틀린 것이다.
어찌 하나 가지고 둘을 상대하려 하느냐 이리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왕에게 굽실굽실 거리는 신하를 밑에 두고는 왕 노릇을 할 수 없다.
왕보다 더 뛰어난 신하를 두어야 수고롭지 않게 왕 노릇을 할 수 있음이다.
자신은 이윤이나 관중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데,
어찌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 있음인가?

실로 대단한 자긍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퇴지(韓退之)가 맹자서설(孟子序說 )에서

“맹자가 없었다면 모두 오랑캐 옷을 입고, 오랑캐 말을 하였을 것이다.”
(※ 然向無孟氏, 則皆服左衽而言侏離矣. 故愈嘗推尊孟氏, 以爲功不在禹下者, 爲此也.)

라고 말한 것은 그들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도하다.
(※ 좌임(左袵)은 바로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우리나라 풍속이다.
     즉 이는 중국이 고구려에게 먹혔으리란 이야기다.)

감히 왕에게도 덕으로서 겨루겠다는 기개를 가진 맹자가 나타나자,
비로소 미개한 중국인의 가슴 속에 자존의식이 심어지기 시작했다.
부처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도,
당시 인도 사회에 미만(未滿)한 각종 신에 예속된 민중들의
뇌 속에 뿌리내린 노예근성을 깨뜨리고 자존의식을 일깨우는 혁명적 역할을 하였듯이,
절대왕권의 권위를 해체하고, 보편적 가치인 의(義)를 가르침으로써 개인의 자존의식을
역사상 처음으로 일깨웠던 것이다.
한퇴지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독존의식이 중국민족에게 심어지자,
인격적 또는 민족적 자각이 생겼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고구려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절대인격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기독교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도 나는 생각하길 맹자의 자존의식 때문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혹자는 맹자의 영기(英氣), 규각(圭角)을 비판하기도 하나,
인의(仁義)가 구체적 현실에서 실천력을 획득하려면,
맹자와 같은 적극적인 기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책상위에 놓인 옥돌처럼 뽀얀 빛만 비추며,
가만히 그럴 듯이 천년 고상함을 뽐내고 있을 뿐,
실천현장에서 유위(有爲)한 결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 영기(英氣) : 뛰어난 기질, 혹은 혼자 잘났다고 으시대며 뽐내는 것.)
     규각(圭角) : 모가 난 것이니, 괴팍스럽고 별난 기질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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