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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소요유 : 2009.11.01 16:27


북한산.

내가 등산하려면 거치게 되는,
외진 산기슭에 터 잡은 배드민턴장 운동장에 마침 사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산 위로부터 골바람이 달려 내려온다.
도토리나무에 겨우 매달려 있던 갈색의 잎사귀들이 마지막 손을 놓고 길을 떠난다.
뿔뿔히 헤어져 눈송이처럼 날리는듯 싶자,
이내 나선을 그리며 운동장을 무대로 선무(旋舞)의 수를 놓는다.
아, 저들은 어이 저리도 절절 슬프듯 아름다운가?
미련도, 한도 없이 무연(無緣)히 흩어져 사라지는 저들의 영혼은 얼마나 기막히도록 고결한가?

소리도 없이 떨어지고 있으련만,
가슴께를 지나는 저린 선율(旋律)은 너무 고와 외려 아리다.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의 루이스 호수(Lake Louise), 로망스가 이러할까?
나는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면서 이들 노래를 오래 간만에 꺼내 다시 듣는다.
유키씨의 곡은 낙엽처럼, 혹 비처럼 내 가슴에 파문(波紋)을 남기며 저 안쪽 깊숙한 곳으로 잠긴다.
가을 또한 얼마지 않아 역시 그리 가고 말 것인 것을.

산 위에서 만나 뵌 지인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추색(秋色)으로 곱게 물든 계곡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다.
이 때 하늘에서 꽃비처럼 낙엽들이 분분 나려 오신다.

법화경에 부처가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드실 제,
만다라 꽃이 비처럼 하늘에서 내렸고,
부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하였음인가?

佛說此經已,結加趺坐,入於無量義處三昧,身心不動。
是時天雨曼陀羅華、摩訶曼陀羅華、曼殊沙華、摩訶曼殊沙華,
而散佛上、及諸大眾。普佛世界,六種震動。

여기 이 자리에도 낙엽이 법우(法雨)가 되어,
속진(俗塵)에 찌든 객(客)들의 마음 밭을 흔들고 있음이라.

순간 자리는 어느 덧 자색(紫色) 환몽(幻夢)처럼 아련하니 젖어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그 분도 나도 그만 입을 다물고 한동안 멍하니 넋줄을 풀어 허공중에 놔버리고 만다.

한참 후,
넋자리를 추스른 후,
그 분이 말씀 하신다.
아까 저 아래 산 밑에서 올라오는데 지나는 어떤 이가 이리 말하였다 한다.

“낙엽이 이렇게 많이 쌓이니 쓰레기 치우려면 걱정이야.”

백인백색, 천인천색이라지만,
가을 낙엽 앞에서,
쓰레기를 떠올리는 저 사람은 어떤 이일까?
청소부 아저씨일까?
혹여 일 할 사람을 염려하는 것임인가?
지인 말씀으로는 최소 후자는 아닌 것 같은데 ...

정녕코 바로 말하거니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
저이는 가여운 이라.
어쩌면 이 가을 제일 외롭고 가여운 사람 하나가 있다면 그가 아닐까?

어제 밤늦도록 오마이뉴스를 읽다가 대한 이야기 한 토막.

“사람이 어째서 사람한테 사기를 당하는 줄 아는가? 사기꾼은 거짓말을 해도 살살 긁어주믄서 하거든. 그래서 거짓말도 거짓말 같지가 않고, 어떤 때는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맘이 생기기도 하고, 요런 것 아니겠어?”
“요새 텔레비전을 보믄 기나 고둥이나 죄다들 행복, 행복 해쌌더라고. 그놈의 소리 듣고 있으믄 금방 행복해질 것 같제? 헤헷, 참말로, 자다가 일어나서 웃다가 복창 터져 죽을 일이제.”
(© ohmynews.com)

올가을,
북한산 자락에 사는 나야말로,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행복과는 상관없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기꾼의 뻔한 거짓말에 혹하여 거짓말 같다고 하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기 보다는,
차라리 알면서도 우정 모른 척 속아주면 또한 어떠하리.
소싯적에는 남을 속이는 천박한 이들이 마냥 밉더니만,
이제는 그저 가여와 외려 내 가슴이 더 아프지 않던가?
저들 역시 가엽기는 낙엽 앞에 서서 그를 쓰레기로 여기는 이와 뭣이 다르랴.
이나 저나 가엽기는 매일반 아닌가 말이다.
가여운 이들을 사랑하는 덕을 나는 한참 더 배워나가야 한다.
아니, 정작은 내가 천하에 유일무이 제일 가여운 이일 터이니,
나야말로 사랑을 받아야 할 영혼이 아니런가?

그래도,
가을 낙엽 앞에 서면,
다만, 행복할 뿐인 나.

북한산은 이제나 저제나 내 곁에 있다.
그래서 나는 가을 복을 거저 받고, 혹여 덩달아 복을 지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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