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율법주의

소요유 : 2012. 5. 17. 23:21


내가 어느 날 기독교 신자 한 분을 만나 뵈었다.
한비자에 대한 말이 잠깐 나왔는데,
율법주의 운운 하신다.

알다시피 한비자는 법가(法家)의 완성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분은 필시 法에 묶이어 순간 율법주의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한편,
기독교외에도 타종교인 불교 따위도 교회에서 공부를 하신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교는 無이기에 어쩌니 저쩌니 하신다.

내가 그것은 교회에서 공부가 충분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릇된 오해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간단히 말씀을 드렸지만,
짧은 자신의 안목으로 남의 세간살이를 엿보는 것은 늘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쨌건 율법주의 운운하실 때,
아, 그러한가?
하며 나는 이 또한 법가 사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토론을 더 이상 진행할 기분은 아니 생겼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철갑을 두르고,
손을 뻗쳐내 잰 거리엔 성곽을 둘러치고 산다.
나 역시 그러하니 살고 있음이라.
그러함인데, 종교니 정치니 하는 마당 판에는,
언필칭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니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격으로,
판가름이 나눠져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 물이 옳으니, 불이 옳으니 따진들,
이미 머리가 굳을 대로 굳은 사람들 간에 상용(相容)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법가(法家)를 두고,
法에 매몰된 인간형으로 치부하는 것과,
法으로 규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철학적 성찰을 하고 있는 인간을 떠올리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실제 법가는 그 기원을 순자에 두고 있다.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대비하여 성악설을 주창한 학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듯이,
성악설은 본원적으로 인간 부정의 사상이 아니다.
인간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더 이상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다.
물론 후에 법으로 통제하자는 법가가 갈래를 터서 흘러나오긴 하지만,
이도 본질은 法 자체가 아니다.
그 구극의 목표는 실용적으로 보자면 부국강병이지만,
내재적으로는 인간 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철학적인 성찰의 과정, 도상에서,
법을 통한 규율, 그리고 勢, 術 따위의 메카니즘을 규명해내었던 것이다.
인간 심리를 실용적, 그리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치하게 연구 집대성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인간을 본원적으로 원죄를 가진 설정한 기독교야말로 극단적인 성악설의 본령이다.
이들은 때문에 신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식인데,
순자는 신을 상정하지 않았다.

다만 예법을 배우고 닦은 연후라야 사람이 된다.
저 세상, 천국에 가서 복락을 누린다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의 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하기에 그는 말한다.

고로 굽은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로 뒤집거나 증기로 쪄낸 후에라야 곧게 되고,
무딘 연장은 반드시 연마한 후에라야 예리해진다.
지금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반드시 스승의 법을 본받은 후에라야 발라지고,
예의를 얻은 후에라야 다스려질 수 있는 것이다.

故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鈍金必將待礱厲然後利;今人之性惡,必將待師法然後正,得禮義然後治

인간 본성이 악하지만,
예법을 익히고 수양을 통하여 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서 구원이 완성된다.

법을 좋아하며 행하는 이는 선비다.
뜻을 돈독히 하여 체로 삼는 자는 군자다.
가지런하니 밝은데도 그치지 않는 이는 성인이다.

好法而行,士也;篤志而體,君子也;齊明而不竭,聖人也。

여기 호법이란 단순히 법을 지킨다는 것에 한정시킬 일이 아니다.
굽은 나무를 펴는 증기처럼 참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때문에 세인이 오해하듯 법에 매인다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다.

요즘은 할 일도 많고, 해결하여야 할 과제도 산적하여,
논의를 깊게 펼 여유가 없다.

다만 다행인 것은,
농사일이란 게 막연한 듯하지만,
이리저리 궁리를 트니 하나 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들은 찾아내고 있다.
이게 뜻을 일으키고 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조그마한 기쁨과 재미를 주고 있다.

대략 너댓가지의 중요한 문제가 있었으나,
거지반 해결의 단서를 찾은 양 싶다.
다만 하나의 문제만은 아직도 시간을 더 투하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조만간 좋은 대책이 발견되리라 기대를 한다.

오래되면,
이 자리(율법 관련 문제)를 잊을까 해서,
이리 급하게나마 초(抄)를 쳐두는 것이다.

마침 율법에 대한 간단하지만,
바로 적실하니 잘 설명한 글 하나를 소개해두며 끝마친다.

율법과 율법주의는 다른 것임이라.

***

율법과 율법주의와 복음
 
'율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선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규범으로써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 철저하게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사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외식하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신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주의자들의 '율법주의'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걸리기 때문에 죄, 낙태, 이혼, 혼전 동거, 거짓말, 불법, 불의, 교만, 탐심, 욕심, 투기, 도박... 이런 주제의 설교를 하지 못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다 때려죽이라고 했는데, 그런 설교를 들으면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오히려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율법을 기쁜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복음'을 '율법'과 상관없는 것이거나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아는데 아닙니다. '참된 은혜의 복음'은 율법을 지키게 합니다. 율법을 기만하면서 '복음'의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 것은 속이는 것이나 속고있는 것입니다. ⓒ최용우
(출처 : http://cyw.pe.kr/xe/51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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