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이(香餌)
내가 어제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어떤 이가 있었는데,
‘나는 이젠 평생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리 말하더란다.
이게 무슨 사연인가 하니 이러하다.
어떤 이에게 돈을 꾸어주었는데, 이자도 높고 꼬박꼬박 잘도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게 여간 재미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라,
적금을 헐고, 보험을 해약하여 야금야금 추가로 더 빌려주었다 한다.
바로 이즈음,
‘나는 이젠 평생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말을 뱉어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리 돈을 빌려간 자가 이 돈을 가지고 자신의 딸과 함께,
흥청망청 사치하는데 다 써버렸다 한다.
그리고는 나자빠졌던 것이다.
1억 원이 넘는 돈인데 참으로 걱정이 태산이라,
급기야 채권 추심을 도와주겠다는 소위 해결사를 샀다.
그게 8백만 원이 들었다 한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로 뜯긴 돈이 2백 정도 더 되는 모양이다.
해결사는 말한다.
“아무 걱정 말라, 내가 틀림없이 받아주겠다.”
채무자 또한 이리 말하고 있다.
“아무 걱정 말라, 내가 언제고 틀림없이 갚아주겠다.”
아시는가?
해결사의 문법은
그 어느 누가 되었다한들
“틀림없이 받아주겠다.”라는 것 하나 뿐이며,
채무자의 문법은
그 어느 누가 되었다한들
“틀림없이 주겠다.”라는 것 하나 뿐이라는 것임을.
이것은 거의 그들의 존립 근거이자, 존재 증명의 화법에 다름 아닌 것.
문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하지만 행동은 늘 안개 속에 감추어져 아리송하다.
1억이 반으로 탕감되고,
그것도 말 뿐인 공언에 불과하게 되었음이라.
급기야 채권자는 길을 가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 보철을 달고 다니게 되었다.
이를 일러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하지 않았던가?
설상가상(雪上加霜)
화불단행(禍不單行)인 게라.
다만 5천만 원만 받아도 다행이라 할 터인데,
해결해 준 것도 없이 해결사는 이미 앞서 1천만 원을 가져가 버렸다.
게다가 소송에서 이기면 성과 보수로 또 일부를 헐어 앗아간다고 한다.
이러하니,
어찌 실성(失性), 낙상(落傷)하지 않을 수 있으랴.
게다가 그 뿐인가?
주위의 이웃들은 수군수군 거리며 손가락질을 해댄다.
‘칠칠치 못하게 당하고 말았어’
‘바보처럼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군.’
돈을 뜯긴 것만도 억울한데,
이것은 동네에서 완전 바보 멍텅구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네게 다가와 갖은 달콤한 말을 늘어놓고,
온갖 친절을 베푸는 이가 제일 위험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자가 제일 먼저 당신을 배신할 것이다.’
필요할 때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다가와,
내가 너를 도와줄 테야 이리 말하며,
이것저것을 슬쩍 빼앗아 간다.
하지만,
소용 닿을 일이 없으면,
언제 보았느냐는 식으로 계절이 몇 순을 지나도 소식하나 없다.
君子之交 淡如水 小人之交 甘如蜜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이 담담하다.
소인의 사귐은 꿀과 같이 달다.
그러함이니,
매사 군자는 담담함을 본으로 하는 것.
물은 아무리 먹어도 설탕물처럼 쉬이 질리지 않는다.
그러하니 오래 장구하니 가는 것.
이제 나이를 많이 먹다보면,
자연 저게 감언인지, 진짜배기 친절인지 다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마다 벽을 치고, 강퍅하게 남을 의심하고 살 일도 아니다.
다만 내가 베풀 수 있을 상황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너그럽게 대한다.
왜냐하면 베푸는 것도 제법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병법서를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씀이 있다.
香餌之下必有懸魚,重賞之下必有勇夫。
향그러운 미끼 아래 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려 달리고,
상이 많으면 용감한 이들이 반드시 꾄다.
전쟁터에서 상을 많이 주면 용감하니 적진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저들은 대개는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된다.
물고기도 미끼에 꿰어 목숨을 잃는다.
향이(香餌)이든,
중상(重賞)이든 이게 모두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인 바라.
賞在火也。
賞在水也。
賞在兵也。
상은 불 속에 있는 것이며,
상은 물 속에 있음이며,
상은 병 속에 있는 게라.
나의 신명(身命)을 보존하려면,
상(賞)을 멀리해야 한다.
황금 보기를 돌 보듯 해야 한다.
위정자는 백성을 상으로 부려 불속, 전쟁터로 뛰어들게 하며,
사기꾼은 달콤한 말과 이자로 그대의 돈을 알겨가며,
낚시꾼은 향기로운 미끼로 물고기를 잡아 간다.
香餌之下必有懸魚라 해도 좋고,
香餌之下必有死魚라 해도 좋다.
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명심할지니.
여기 참고 글 하나를 연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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