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졸린 장송(長松)
내가 이번 달 초순경 동두천시 지행동에 갈 일이 생겼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서성거리다가 커다란 마트 하나를 발견하고 간신히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하고서는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기왕에 이리 되었으니 산천경개나 구경하겠다며,
부러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만보를 했다.
그런데 좀 걷다 보니 신도시쯤 될런가 제법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더라.
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공원엔 작업 인부들이 열심히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이것을 트리머라고 하는가?
옥향 따위의 정원수를 마치 머리 깍듯 톱으로 자르는 것 말이다.
그것을 보면서 서양 아이들은 참으로 매정타 싶다.
거죽으로 보기엔 말끔해지련마는 나무는 참으로 고통스럽게 보인다.
저리 다듬는 방식을 고안해낸 저들은 역시나 기능적이고 몰.생명.가치 추구적이구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걷는데,
공원 한 켠에 커다란 교회가 서있다.
거 참 자리 한번 그럴싸한 곳에 잡았구나 하며 지나치는데,
교회 대문 바로 앞에는 장송(長松)이 여럿 심어진 구역이 보인다.
어디선가 날라져와 심어졌을 터이지만,
그 자태가 가히 빼어나고 기상이 늠름하다.
헌데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이들이 지지용 와이어로 묶여져 있는데,
묶여진 부분이 살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저것은 hanging man 모습이 아닌가?
목이 졸려 교수형(絞首刑)에 처해진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나는 사연을 알아볼 겸,
곧바로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헌데 문이 닫혀져있다.
예배당은 예배일에만 열려있고,
나머지는 닫아 두는가보다.
며칠 전에도 교회 하나를 방문했는데,
거기 교회도 꼭 닫혀져 있었다.
속에서 불끈 불이 솟는다.
도대체가 수많은 신도들이 저 문을 통해 나다녔을 터이며,
바로 앞에 서있는 저 늠름한 소나무를 쳐다보았지 않았겠는가?
헌데 저 지경이 되도록 누구하나 당국에 신고하는 이가 없었단 말인가?
나중에 알아보니 이미 식재(植栽)된지 5년이나 되었다 한다.
그러하다면 더욱 더 저들의 무신경이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거기서 일하는 용역 인부에게 이 공원 담담관서가 어디인가 물으니,
동두천시라고 한다.
그러냐 하며 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동두천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말하길,
그저 몸을 사려 내빼기 바쁘다.
‘여러 군데를 맡다보니 다 돌 볼 수가 없다.
내가 담당자는 아니니 연락하도록 메모를 남겨두겠다.’
공무원의 문법은 늘 이러한가?
이자의 말대로라면 저것은 거의 천재지변에 가깝다.
담당자는 있되, 업무가 관리할 한계를 벗어났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리 과중한 업무분장을 시킨 자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한데, 당시 현장에서 나무 다듬기를 하는 자들은 모두 용역뿐이었다.
시에서 나온 책임자가 있느냐 물었더니 나와 있지 않다고 하였다.
하여간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일단 담당자가 시민의 신고를 받았으면,
소홀히 관리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고한 시민은 공연히 트집을 잡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지 않은가 불가항력적인 일을 신고하고 있는 시민이야말로,
멀쩡한 공무원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 무뢰한이 아닐런가?
하여간 저 일이 있고나서 근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데도 시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래 내가 전화를 해보았더니 담당자가 부재중이란다.
한참 후에 담당자라는 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처구니없게도 저자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앞 선 전화는 싹 무시하고,
자신이 자진하여 지금 연락을 한다는 투다.
이 자의 참으로 맹랑한 휘갑칠에 속으로 실소가 다 나온다.
그 자의 말인즉슨,
심은지 5년 정도 되었지만,
장마철 도복(倒伏)에 대비하여,
우기가 끝난 다음에 조치하겠다고 한다.
목이 졸리고 있는데도 도복 염려로 더 늦추어야 된다면,
그동안 다른 조치가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라면 저런 지지 방법은 애초부터 무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건,
이게 그동안의 업무 해태(懈怠)가 없었음을 은근히 주장하기 위하여 부러 늦추는 것인지,
아니면 5년도 아직은 부족한 것인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저것이 시민의 자산이란 점에 비추어도,
대략 나무 한 그루 당 족히 돈 천은 넘을 것일진대 저리 허술히 방치되는 것이 내 주의력을 끌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도시 한 가운데 출몰한 신령스런 나무가 목이 졸려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은,
과시 목불인견,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심신 산골 안에서도 저리 큰 나무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가 사람들이 너무들 감수성이 메말라 있는 것이 개탄(慨嘆)스럽다.
또한 피드백이 없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여전한 것도 나로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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