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말벌

생명 : 2012. 6. 11. 20:46


하우스 안에 요즘 새가 날아들더니만,
이젠 말벌까지 집을 지었다.

처음엔 새들이 들어와서는 나가는 길을 몰라 당황하더니만,
요즘에 내가 나타나면 멋지게 U턴을 하며 여유롭게 밖으로 뛰쳐나간다.

말벌이 세면장 안 깊숙한 곳에 터를 잡았다.
저들이 드나들려면 문을 두 개나 통과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찌 하자고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았는가?


나는 수주 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이를 내쫓자니 필경 살(殺) 판이 벌어지고 말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보니 이게 9월 정도 되면 살림이 엄청 불어나,
위험하다고 한다.

하여 고민 끝에 소방서에 연락을 취했다.

“말벌이 들어왔는데 집이 크지는 않습니다.
조치하는 법을 일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아, 그것은 송구스런 노릇이고,
그냥 처치 요령만 일러주십시오.”

“아닙니다. 저희 일이니 걱정 마십시오.
10분 안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불자동차가 농원 앞에 도착했다.
제복을 입은 대원 셋이 들어서자,
말벌 하나가 갑자기 뛰쳐나왔다.

내가 아무리 드나들어도 미동도 하지 않던 녀석들인데,
용케도 낯선 사람을 알아보는 양 싶다.
소방대원은 그게 보초병이라고 한다.

나는 망 같은 것으로 포획해서 멀리 산에다 놓아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애기 나눌 틈도 없이 순식간에 에프킬라를 뿌려서 제압해놓았다.

이 조그마한 일에 셋 씩이나 나서니 그저 송구한 노릇이나,
소방서가 농원과 가깝고, 다른 곳도 들린다 하니 다소 안심이다.

소방대원은 떠나고 아까 뛰쳐나온 말벌은 정처 없이 혼자 남아 떠돈다.
순식간에 벌집이 박살나니 그야말로 혼비백산(魂飛魄散) 어쩔 줄을 모른다.

아,
말벌과 인간은 더불어 지내기 어려우니,
이리도 잔인한 살판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이게 너와 나의 나뉜 명운(命運)이니,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저녁이면 수많은 날벌레들이 불을 찾아 날아들고,
낮엔 낮대로 파리들이 성가시게 군다.
평생 이리도 많은 벌레들을 가까이 접한 것은 여기 시골살이 덕분이다.

저들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저리도 질기고,
곡절이 굽이굽이 깊어 악착같이 삶을 탐하고 있는 것인가?

내 저들을 가급적 잡아 죽이지 않으려 갖은 방책을 강구했지만,
올해엔 금기를 깨고 약국에서 끈끈이를 사서 두 개 설치했다.
일주일 사이에 파리가 대략 30여 마리 붙어 죽었다.
내가 밭일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
공교롭게도 말벌이 거기 달라붙어서 죽어 가고 있었다.
이리도 허망할 수 있는가?
말벌 일단의 식구들이 이리도 한 순간에 절단이 나다니.
아, 가련토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허무하고나.

나는 유기견을 돌보면서,
어찌하여 파리는 잡아 죽일 수 있음인가?

이규보의 슬견설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자, 어찌 하려는가?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   
 
슬견설(蝨犬說) - 이규보(李奎報)

어떤 손이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어떤 불량자가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 죽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 광경이 너무 비참하여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네.”
하기에, 내가 대응하기를,

“어제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한 화로를 끼고 이[虱]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아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네. 그래서 맹세코 다시는 이를 잡지 않을 것이네.”
하였더니, 손은 실망한 태도로 말하기를,

“이는 미물이 아닌가? 내가 큰 물건이 죽는 것을 보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에 말한 것인데, 그대가 이런 것으로 대응하니 이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ㆍ말ㆍ돼지ㆍ양ㆍ곤충ㆍ개미에 이르기까지 삶을 원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이네. 어찌 큰 것만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것은 그렇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개와 이의 죽음은 동일한 것이네. 그래서 그것을 들어 적절한 대응으로 삼은 것이지, 어찌 놀리는 말이겠는가 ? 그대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거든 그대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게나. 엄지손가락만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겠는가? 한 몸에 있는 것은 대소 지절(支節)을 막론하고 모두 혈육이 있기 때문에 그 아픔이 동일한 것일세. 더구나 각기 기식(氣息)을 품수(稟受)한 것인데, 어찌 저것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것은 죽음을 좋아할 리 있겠는가? 그대는 물러가서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게나. 그리하여 달팽이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큰 붕새처럼 동일하게 보게나. 그런 뒤에야 내가 그대와 더불어 도(道)를 말하겠네.”
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譯)

蝨犬說

客有謂予曰。昨晚見一不逞男子以大棒子椎遊犬而殺者。勢甚可哀。不能無痛心。自是誓不食犬豕之肉矣。予應之曰。昨見有人擁熾爐捫蝨而烘者。予不能無痛心。自誓不復捫蝨矣。客憮然曰。蝨微物也。吾見庬然大物之死。有可哀者故言之。子以此爲對。豈欺我耶。予曰。凡有血氣者。自黔首至于牛馬猪羊昆蟲螻蟻。其貪生惡死之心。未始不同。豈大者獨惡死。而小則不爾耶。然則犬與蝨之死一也。故擧以爲的對。豈故相欺耶。子不信之。盍齕爾之十指乎。獨拇指痛。而餘則否乎。在一體之中。無大小支節。均有血肉。故其痛則同。況各受氣息者。安有彼之惡死而此之樂乎。子退焉。冥心靜慮。視蝸角如牛角。齊斥鷃爲大鵬。然後吾方與之語道矣。

(※ 참고 글 : ☞ 2013/11/28 - [소요유] - 식육(食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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