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천지불인(天地不仁)

생명 : 2012.08.08 10:48


오늘 아침 노자에 나오는 말씀을 생각한다.

天地不仁,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以百姓為芻狗。

天地之間,其猶橐籥乎?
虛而不屈,動而愈出。
多言數窮,不如守中。

천지는 불인하다.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
성인은 불인하다.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

천지지간은 마치 풀무와도 같도다.
속이 텅 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바람을) 뿜어낸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진다.
속에서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다.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나서,
새 둥지가 자리 잡고 있는 책장의 하단 도구함이 떨어진 것을 보게 되었다.
제 풀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지난번 귀농인들이 와서 사진 찍을 때 그리한 것인가?
알 수 없어라.
그러면서 다시 물건을 제 자리에 올려두었었다.

새 둥지 안엔 새끼 다섯 마리가 급속히 커가고 있다.
좁은 둥지 밖으로 밀려나는 녀석도 생기고 있다.
어미 새는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연신 벌레를 물어들이는데 이 염천지절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조만간 녀석들이 이소를 하지 않을까 싶다.
해서 중간에 널판을 널어두었다.
높은 둥지에서 떨어질 때 일단 거기를 거쳐 땅으로 떨어지면 한결 부담이 적으리란 생각을 했다.
이게 충분치는 않지만 더 촘촘히 널판을 계단식으로 설치해주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드나들기에 자칫 녀석이 타고 오르면 탈이 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데,
오늘 아침 나가보니 도구함이 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젠 분명해졌다.
고양이가 새 둥지를 노리고 뛰어오르기를 한 것이리라.
그러다 미치지 못하니 발톱으로 도구함을 잡아채게 되고 그 사품에 떨어진 것이다.

아, 과연 천지는 불인하고뇨.
살고, 죽고,
먹고, 먹히우고,
죽이고, 살리우고 ...

이 풀무 같은 세상,
삶 하나는 타자의 命을 앗아 제 命을 이어간다.
그야말로 적나라(赤裸裸)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벌거벗은 상태.
리바이던의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아,
과시 이곳은 청정도량이요.
천하의 좋은 공부자리이고뇨.

내가 여기 와서는,
‘농사일을 하고 저녁엔 혹 틈이 나면 책이나 읽으리라.’
이리 단 꿈을 꾸었었다.
난 사실 이외에 그리 큰 욕심이 없다.
돈을 버는 것도,
빌딩을 짓는 것도,
내겐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책이나 마음껏 읽으면 다행으로 여길 소심한 위인에 불과하다.
밥도 나는 많이 먹지 않는다.
이리 진농사일을 하면서도 아주 힘이 들기 전에는 점심도 먹지 않는다.
하루 두 끼, 채식만으로 나는 행복하다.

헌데, 별 거래할 이유도, 유인도 없는데,
가만히 있으려는 사람을 이웃들은 텃새를 부리며 망나니짓을 저지르곤 했다.
난 저들과 말을 나눠도 즐거움을 못 느낀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말들의 행렬,
배움이 없는 허사들의 행진.
이런 것들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나는 없다.

게다가 최근에 행정공무원까지 와서는 억지 떼를 쓴다.
최근 군부대로부터 회수한 우리 땅을 노리면서 양보하란다.
수십 년 군부대로부터 무단 점유 당하여 불이익을 당하였고,
이제 그들로부터 점유 회복하여 제 권리를 찾았음인데,
엉뚱한 작자가 나타나서는 'No Touch' 이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이면 이게 깡패지 공무원인가?
그동안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불편하셨겠습니다란 위로의 말을 듣기는커녕,
이제 가까스로 되찾은 땅을 냉큼 공무원이 나타나서는 이젠 우리가 쓰겠다는 투다.
이쯤이면 이게 불한당이지 공무원인가?

마돈나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난 미국 시민임이 자랑스럽다고.
왜인가?
자기가 무슨 짓을 하여도 미국은 자신을 보호해주었다고.
그래서 오늘의 자기가 있을 수 있다고.
이러할 때 애국심이 자동으로 솟을 것이다.
국가의 위기가 다가올 때 이런 국가를 위해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국가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시민.
그런 시민은 국가 평소 시민에게 애국하라고 조르고 의식화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줄 때 자동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함인데,
20여 년 동안은 국방부가 그냥 무단 점유해서 쓰고,
이젠 읍이 나서서 건드리지 말라고 한 개인을 윽박지른다.
이게 21세기 개명한 민주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가?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이리 패악질을 할 수 있음인가?
난 저들 사이비 공무원을 단호히 온 천하에 고발한다.

백번양보하여 情理에 기하여 양해를 구한다 하여도,
이리 강압적인 언사로 마치 위법인 듯 윽박지르고 있음이니,
이들은 불한당, 깡패라 불러도 아무런 지나침이 없다.

이게 우리 땅임을 인정하느냐 이리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러함인데 왜 내가 양보하여야 하느냐 이리 물었다.
그랬더니 여기 시골 동네에선 사유지가 공도(公道)로 들어 간 곳이 많단다.
그래서 그게 여기 시정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였더니,
하여간 그렇단다.
게다가 도로는 자진하여 내주고 거기로부터 곁으로 움푹 빗겨간 곳인데도,
저들은 마저 내놓으라는 식이다.

소유권은 절대권에 속한다.
대세(對世) 배타적인 권리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그러하다.
이게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사유재산권이 인정된 자본주의 세상에선 그 누구라도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할 수 없다.
이게 너와 나의 약속인 게다.
행정 공무원은 이를 보호해줄 책무가 있다.
그러한데도 이자들은 남의 재산권을 아무런 대가없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기를 요구한다.

땅을 내놓을 까닭도 없지만,
하긴 애초엔 사람들이 오갈 때 쉬라고 공원이나 쉼터 형식으로 열어둘 생각까지 하였었다.
나는 이를 위해 길다란 의자를 세개나 만들어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들의 패악질, 쓰레기 투기 등을 보고는 우리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다.
여기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땅을 할애하고 아니고가 아니다.
저 정도의 의식 밖에 가지지 못한 공무 담임자의 인식 수준에 나는 놀라고 있는 것이다.
토지공법은 둘째고, 하다못해 민법을 공부하였다든가, 행정법이라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있다면,
저런 안하무인, 촌무지렁이식의 떼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저들이 과연 제대로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었는가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함께 온 하위급 공무원들은 모두 다 내 말에 동조를 하고 있다.

“저게 내 개인 소유 땅이 맞느냐?”
“그렇다.”
“그럼 바로 아래에 지목 상 도로 위에 세워진 저 무허가 건물은 불법이 아니더냐?
게다가 해마다 지붕을 씌어 넓혀가고 있으며, 바로 저 파란 지붕은 금년에 해씌운 것이다.
저것은 불법이 아닌가?”
“불법이다.”
“그럼 또한 저들이 도로에 무단 주차하고 있는 것은 불법 아니냐?”
“불법이다.”
“그럼 무권자의 불법 행위는 방치하고,
유권자의 권리를 향해 양보하라고 말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 틀렸다.”
“내게 양보를 구하려면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여도 모자람인데,
저 불법행위는 도리가 없다고 말하면서,
내겐 'No Touch'라고 말할 수 있음인가?”
“잘못되었다.”

이 지경인 것이다.
어젠 여기 전곡읍 산업팀장이란 자가 군청에 연락을 한 모양이다.
군청 직원 세 명이 나왔다.
내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자신들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겠단다.

당연 선생님 땅이니,
우리로선 아무런 조치할 일이 없단다.
그리고는 저들은 그저 돌아갔다.

먼젓번 전곡읍장은 와서는,
저것에 손을 못된다고 윽박지른다.
전곡읍 산업팀장이란 사람은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내놓으라는 식이다.

내가 같이 온 하위 공무원에게 확인을 구했다.
저들이 분명 저리 말했음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내가 저이들을 상대로 토격(討檄)하고, 제소할 때 증인이 되어 달라고 청했다.

내 짐작하건대,
저들에겐 말 못할 무슨 사정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는데,
이리 거의 협박에 준하는 말들로 사리를 거스를 수 있음인가 말이다.

게다가 그러한 열정과 충심으로,
바로 아래 이웃에서 일년 열두달 멀쩡한 도로를 점유하여 무단 주차하고 있는 것은 어찌 제재할 수 없는가?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저 도로는 대부분이 사실 우리 땅이다.
그리고 그 바로 옆 땅을 무허가 건물이 차고 들어 앉은 것인데.
그곳은 바로 지목상 도로인 게다.
이쯤이면 원래 도로를 놔두고 남의 사유지에 도로를 낸 담당 공무원의 책임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함인데도 저 무단주차는 어쩔 수 없다고 이른다.
그런데 저 무단 주차한 차량만 없어져도 여긴 얼마든지 차량 통행이 원할해진다.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저들 무단 도로 점유자는 해마다 제 땅도 아닌 땅을 야금야금 먹어가며 지붕을 덮어간다.
빈말이 아니라, 가령 고아원을 한다든가 무연고 노인들을 모시느라 터가 부족하다면,
내 자진해서 우리 땅이라도 나눠주겠다.
하지만 저이는 두 부부와 아들 하나가 전부이다.
그러함인데 빈 터들을 해마다 침식해들어가며 지붕을 해씌우고는,
제 차는 두 대씩이나 도로에 무단 주차하고 있다.
애초 저 빈 땅을 본래의 지목대로 도로를 만들어나갔다면,
차량 통행은 물론이거니와 10여대 주차장까지 해도 모자람이 없을 판이다.
제 땅 아닌 국유지를 무단히 침탈해 창고를 짓고, 집을 짓고는 그것도 모자라,
차는 도로가에 내버려두어 거길 통과하려는 차들은 모두 주춤주춤 속도를 늦추며 살펴 지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함인데도 전곡읍 산업팀장이란 자는 저것은 어찌할 수가 없단다.
유권인은 권리를 내놓아야 하고, 무권인은 철저히 보호 하고 있는 읍 공무원.
이게 도대체 어느 당나라 시절 공무원인가 말이다.

내 단호히 저들의 과오를 낱낱이 밝히고,
바른 도리를 세울 작정이다.
실수는 용서할 수 있지만,
그릇됨은 그저 넘어갈 수 없다.

과시 시골 촌동네는 관민불문 불한당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음인가 말이다.
그러한데,
마침 고양이가 일을 저지른 아침.
난 천지불인을 떠올린다.
과연 천지는 이리도 불인하고뇨.

여기 시골에 들어오길 너무 잘 한 것 같다.
그저 검은 콩(글)을 주워 먹기만 하였는데,
이제 비로소 꼭꼭 씹어, 체험으로써 글 뜻을 뼈에 새기고 있음이다.
노자든 공자든 저들의 말씀은 그저 머릿속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을 글로 남기셨음을 알겠도다.
과시 성인일진저.

그런데 그저 농사지으려고 온 사람 그냥 내버려두면 아니 되겠니?
내가 여기 사람들에게 교제를 청한 것도 아니오,
거래를 하자고 안달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함인데도 그대들은 관민이 합쳐 부단히 넘어오고 뛰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여기 연천군은 현재 인구가 줄어들어 금년부터 대대적인 귀농 유인책을 쓰고 있다.
허나 귀농한 사람을 이리 홀대하고 궁박하고 있는 실정을 저들이 알면 어찌할까나?
내 조만간 틈을 내서 이 실상을 널리 알릴 것이다.
하여 굽은 것은 펴고, 구겨진 것은 다려,
천하에 바른 공도가 다시 서도록,
행장 꾸려 나설 예정이다.

여기 연천군에 내 땅 가지고 들어와서,
별 거지 같은 일들을 다 겪고 있음이라.

참으로 천지불인이고뇨.
아니 이는 천지불인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다.
천지불인은 만물을 생하는 이치이다.

하니,
천지불공(天地不公), 아니,
연천부당(漣川不當)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삶을 죽이고,
귀한 것을 내버리고 있음이니.

귀농한 사람을 쫓아내려하고,
궁박하고 있음이니,
도대체 저들이 무슨 물건이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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