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이소(離巢)

생명 : 2012. 8. 9. 18:09


요즘 아기 새들을 슬쩍슬쩍 엿보는 것이 제법 즐겁다.
아침에 얼음 물병을 넣어주는데 미동도 않는다.
예전 같으면 주춤거리며 몸을 움직여 둥지 안으로 사려 움츠릴 터인데,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하고 있다.
그런데 두 녀석이 둥지를 벗어나 둥지를 받치고 있는 박스 위에 떡하니 서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슬쩍 손을 대보았다.
아뿔싸, 그러자 녀석들이 우르르 날라 밑으로 떨어져 내려온다.

(※ 참고 글 : ⑤ ☞ 이소(離巢) - 본글
                     ④ 아기 새들
                     ③ 육추(育雛)
                     ② 부화(孵化)
                     ① 포란(抱卵))

마치 민들레 홑씨가 바람에 날리듯 그리 포르르 날아 산지사방(散之四方)으로 날아간다.
나는 황급히 저들을 잡아 다시 둥지 위로 올려주었다.
이 때 어미가 어디선가 날아와 짹짹거리며 야단이다.

이럴 땐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외려 사태 수습에 이로울 것이다.
나는 자릴 피해 멀리 숨었다.
다만 혹여 고양이가 나타날까 염려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근처에 고양이는 없는 것 같다.
걱정스런 가운데 밭일을 나가기로 한다.

(빈둥지가 되었다.)

한 차례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미가 하우스 후문 쪽에서 짹짹거린다.
그러다 잽싸게 아래쪽으로 비행하며 후미진 곳으로 들어간다.
가만히 다가가 살펴보니 아기 새들이 묘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
걸쳐놓은 차광막 자락에 몸을 의탁했는데 검은색에 감춰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녀석들이 거기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다.
아직은 충분히 자라지 못하여 조금 더 어미가 물어다주는 벌레를 먹어야 할 터.
그리 숨어 조금 더 시간을 보내야 할 노릇이리라.

아,
죽 다 쑤어놓고 코를 빠뜨릴라.
결정적인 순간을 무사히 넘기지 못하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인 것.
포란, 육추를 거쳐 이소에 이르도록 고비고비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소할 즈음에 고양이이게 한 순간 먹히우면 그간의 고생은 도로에 그치고 만다.
사람도 고비 때마다 누군가 보살핌을 받든가 용케 호운(好運)이 도래하여야,
욕(辱)을 면코 빛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크리티칼 포인트(critical point)
이 때에 명운이 갈린다.
어린 아이들에겐 어미 아비가 이 자리에 나타나 위험을 차폐하고 저들을 보호한다.
인간은 이런 보호망을 역사적으로 나름 잘 다듬고 정비해왔다.
해서 고아가 아닌 바임에랴 잘들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동물들은 천년이 지나든 만년이 지났든,
여전히 거대한 자연의 위세, 위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약과다.
재수가 나빠 인간의 손아귀에 옭히면 천만년 감옥에서 대대로 욕을 본다.
현대의 축산업은 지옥 나찰귀보다 몇 백 곱으로 극악스럽다.

단미(斷尾), 단이(斷耳), 단각(斷角), 단치(斷齒), 절훼(切喙,부리 자르기),
절조(切爪,발톱자르기), 코뚫기(鼻穿孔), 화두낙인(火斗烙印), ....
좁은 울타리, 항생제, 성장촉진제, ....
그 뿐인가 24시간 불을 켜두어 잠까지 방해한다.

아,
인간의 죄업은 참으로 무겁고 끔찍하고나.
 
내 잠깐의 소홀함으로 저들의 안전을 훼하였다면,
그야말로 죄업을 더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이 저들이 자리를 다시 잡고 다음을 기약하고 있음이니,
나 또한 한 시름을 놓는다.

그러한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어미 새가 하우스 안에서 시끄럽게 울어댄다.
내 급히 나가보니 고양이가 들어와 있다.

조금 전에 밥 달라고 앞 문께에 턱하니 턱을 괴고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평소 사료를 주던 후문 쪽을 피해 앞 문 쪽에다 먹이를 주고서는 내내 지켜보고 서 있었다.
행여라도 후문 쪽 아기 새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낭패다.
녀석이 사료를 다 먹자 농장 밖으로 밀어내고는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녀석이 어느 틈엔가 다시 들어와 오수를 즐기고 있다.
그러자 어미 새는 바로 가까이에 다가가 악을 쓰며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녀석을 일으켜 세워 밖으로 쫓아내었다.
이러길 벌써 두어 번.
오늘은 바짝 긴장하며 번(番)을 잘 서야 할 것이다.
아니 아기 새들이 제대로 하늘을 날 때까지 제대로 돌보아야 할 노릇이다.

요샌, 저 하늘을 나는 새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이리 천신만고 끝에 어엿한 하나의 成體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음이다.
아니 成體가 아니라 聖體라 일러야 하지 않을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곧 빛임이라.

농부인 나는,
앞으로 저들을 과연 어찌 대할런가?

여기 풍속은 새를 원수 대하듯 한다.
새들이 낱알을 훑고, 과일을 쫀다.
그래 농부들은 저들을 쫓고, 기어이 죽인다.

지금은 살리고자 마음을 보태고 있는데,
나중에 우리 밭에서 저들을 다시 만날 때,
과연 나는 어찌 변하여 있을런가?

참으로 산다는 것은 난사(難事) 중에 난사임이라.

농부란 천하 만인의 명을 부축이지만,
한편으로 억조(億兆) 생명들을 죽인다.
중들이야 턱하니 가부좌 틀고 앉아 진땀 흘리는 것을 본령으로 삼지만,
농부는 이리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서 새벽 이슬을 맞고 저녁 달님을 맞이한다.
참으로 농부의 자리란 지중(至重)한 가운데 또한 지험(至險)코뇨.

'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벌 ⅲ  (5) 2013.09.30
말벌 ⅱ  (0) 2013.06.28
포살(布薩)  (2) 2012.08.11
아기 새들.  (0) 2012.08.08
천지불인(天地不仁)  (0) 2012.08.08
부화(孵化)  (0) 2012.08.01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생명 : 2012. 8. 9. 1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