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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살(布薩)

생명 : 2012. 8. 11. 20:18


지난번 내가 아기 둥지를 건드려 아이들을 흩고 말았다.
그 날 저녁 녀석들은 하우스 후문 쪽 방충망 자락에 몸을 숨기며,
남은 세월을 기다리며 날갯죽지에 힘을 길러야했다.
(※ 참고 글 : ☞ 2012/08/09 - [소요유] - 이소(離巢)
                     ☞ 2012/08/08 - [소요유] - 아기 새들.
                     ☞ 2012/08/05 - [소요유] - 육추(育雛)
                     ☞ 2012/08/01 - [농사] - 부화(孵化)
                     ☞ 2012/07/16 - [농사] - 포란(抱卵))

그런데 저녁이 되자 도처에서 야웅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칫 어린 아기 새들이 큰 탈이 날 판이다.
나는 몇 차 순찰을 돌며 휘하며 고양이 녀석들을 뒤로 물렸다.
이대로는 밤을 나기 힘들겠다.
나는 깊은 생각 없이 그 주변에 울타리를 둘렀다.
지난번 풀방구리(강아지)를 농장으로 데리고 와서는,
내가 일하는 동안 잠시 넣어둘 작정으로 준배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풀방구리에겐 단 한 차례만 사용하고는 그냥 버려져 있었다.
이 철망을 꺼내 아기 새 주변을 둘러쳤다.
그리고는 이 정도면 고양이가 덮치지 못하겠지 하며,
나는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근처로 가보니,
아뿔싸, 녀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짐작컨대 어미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신해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리 몸을 숨겨보아야 가봐야 사방은 풀숲이다.
밤엔 이슬을 맞아야 하고, 벌레도 많으니 여기 하우스에 비하랴.
게다가 늘 풀숲을 헤치고 다니는 고양이에게 해를 입기 싶다.

아, 다 내 잘못이다.
불가에선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포살(布薩) 자자(自恣)이란 의식이 있다.
난 오늘 이리 깊이 참회한다.
사뭇 죄가 깊다.

그날 녀석들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으며,
울타리도 치지 말아야 했다.
얼음병을 넣어주어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기에,
차츰차츰 방심하며 저들에게 가까이 다가선 게 문제다.

“有心栽花花不開,無心插柳柳成蔭”

“마음을 써서 꽃을 재배하나 꽃은 피지 않는다.
허나 무심하니 버들을 꺾어 심었으되 버들은 잘 자라 그늘을 이를 정도로 잘 자라다.”

여기서 有心과 無心은 대귀를 이룬다.
아울러 栽와 插 역시 서로를 對하고 있다.
栽는 인간이 有心으로 식물을 대하는 것이요,
插은 그저 無心히 식물을 땅에 꽂으며 첫 출발만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러하였던 것인데,
不開,成蔭
이리 양 극단으로 나뉘고 만다.

결국은 기심(機心)이 문제다.
(※ 참고 글 : ☞ 2010/03/07 - [소요유] - 기심(機心)과 중기(重機))
무엇인가를 꾀하는 마음.
자기 딴에는 잘 해보겠다고 용심(用心)을 내서 용력(用力)을 쓰나,
이게 다 좁은 소견인 게다.
나무는 다 제 명운대로 자라는 것,
사람의 손길대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새나 동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오지랖 넓혀 별 요상스런 짓들을 다하나,
이게 저들의 본성을 거스르고 자칫 해를 가하곤 한다.

나는 이를 일러 일찍이 조작질(manupulation)이라 불렀다.
이 조작질의 극치를 작금의 한국 땅에선 ‘4대강 살리기’란 허명으로 꾸며진,
부끄러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기실 이 자리에선 남을 탓할 형편이 아니다.
하지만 난 조작질의 극치, 4대강 죽이기를 한 이들을,
천하의 바름을 빌어 저주한다.
아울러 이들을 변호하고 동조한 자들 역시 역사의 죄인인 바라,
광장으로 끌어올려 회술레를 돌려야 하리라. 
내 부끄러움도 서발이 넘지만,
저들 몰염치, 양아치를 상기하자니 피가 끓는다.
이제, 그만 그치고 내 허물을, 내 부끄러움을 묻자.

無爲而萬物化

무위로써 만물이 화하는 것.
내 여기 농원을 만들면서도 가급적 무투입 자연재배를 지향하지 않았던가?
유기농 한다는 이들조차도 다 거치는 길인 방초망조차 씌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풀을 잡겠다고 초기엔 예초기 매고 온 밭을 누비며 허우덕거렸다.
그러나 이즈음엔 차츰차츰 도리를 찾아 풀과 타협하는 길을 걷고 있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그 이치를 깨우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힘이 난다.

결코 구하지 말라.

隨遇而安
만난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따라 가는 것이 편안한 것임이라.

應無所住而生其心
마음을 낼지언되 머무르는 바 없이.
무엇을 도모하겠다고 욕심을 사납게 내면 천리호차라 큰 탈이 나고 말리.

그러한 것인데,
저 어린 아기들을 밖으로 내쫓고 말았음이니,
나는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저들의 안위(安慰)를 위해 기도한다.
모쪼록 별다른 위험없이 잘 자라 어서 빨리 창공을 향해 힘차게 오르길 빈다.
어느 날 마주치면 내 녀석 식구들에겐 농원 과실을 그저 내주련다.
그런데 속보이는 이런 마음이란 참으로 단작스럽고 구차하구나.

나누고 말고가 아니라 함께 하고 싶다.
인연, 우정이란 이름으로.
  (난 인연, 우정, 의리란 말을 깊이 신뢰하고 중히 여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자.)
다만, 부디 좋은 도리를 찾길 바랄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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