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청풍자(聽風者)

소요유 : 2013. 1. 17. 15:19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사뭇 오래 전이다.
하지만 영화는 틈을 내서 보곤 한다.
그저 쉴 겸 재미로 보기 때문에 영화란 문화 장르에 대하여 별로 아는 바 없다.
때문에 남들처럼 감칠 맛 있는 감상평은커녕 깊이 있는 비평을 할 처지도 아니 된다.

하기에 이리 영화 하나를 두고 글을 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어제 본 청풍자란 영화는 일견 구성이 탄탄한 것도 아니고,
남다른 스릴과 긴장감이 편편히 흐르는 것도 아니오,
허를 찌르는 반전이 관객을 채잡아 두는 바도 없다.
그렇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나는 잔잔한 여운에 내 몸을 맡기며,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청풍(聽風)이라니 이거 그럴싸하다.
청음(聽音)이나 문성(聞聲)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니 하등 별날 것이 없다.
그러한 것인데 청풍(聽風)이라니.
이는 바람을 듣는다는 것 아니냐?

바람을 어떻게 듣는가?
곧장 다가가 바람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퇴락한 사찰 처마 끝에 달린 풍경(風磬)이라야,
바람이 다녀가시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메마른 갈대의 서걱이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우리는 바람이 지나고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눈이 먼 사람은 바람 소리가 아니라 '바람' 그 자체를 듣는다.

주인공 ‘아병(阿兵)’은 눈 먼 피아노 조율사다.
주신(周迅)이 분한 첩보요원은 이 눈 먼 자를 조직 안으로 끌어들인다.

첩보국은 적정(敵情)을 비밀리에 감청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만 기존의 감청 주파수를 다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아병 같은 새로운 감청 능력자가 필요했다.

아병의 뛰어난 청력은 잃었던 적국의 주파수를 다시 복원해낸다.
사실 이 장면은 약간 억지가 따른다.
하지만 이를 물리학이랄까 전파공학적으로 따지진 않기로 한다.
그리되면 너무 인색한 짓이 되거니와,
영화란 장르를 대하는 예의 바른 태도는 아니니까.

아병을 데려와, 첩보국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비극은 잉태되고 만다.

아병의 공로에 대한 답례인가?
아병은 눈을 수술 받게 된다.
그리고는 시력을 회복한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나는 앞질러 가며 두어 가지 의심을 하게 된다.

춘추시대 악사 사광(師曠)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음악이 마음대로 익어 나가지 않자,
자신의 눈을 쑥불을 태워 지진다.
그리고는 득음(得音)한다.
(※ 참고 글 : ☞ 2008/02/15 - [소요유/묵은 글] - 어둠의 계조(階調))

사광은 오감 중 하나를 덜어 나머지 감각을 키워 나간다.
즉 시각을 지우고 청력을 배가한다.

그런데, 아병은 잃었던 시각을 되찾으며 거꾸로 오감을 넓혀간다.
넓혀가는 것인즉슨 희석해 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하니 청력은 당연 무뎌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난 앞으로 비극이 벌어질 것을 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의심은 무엇인가?

남해의 제왕 숙과, 북해의 제왕 홀은,
중앙의 제왕 혼돈(渾沌)에게 하루에 하나씩 구멍 뚫어 7규(七竅)를 만들어준다.

그러자 칠일 만에 혼돈은 죽어 버린다.
이 혼돈의 고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참고 글 : ☞ 2012/05/04 - [농사] - 철공적(鐵孔笛))

내 짐작이지만,
영화 연출자는 내 의심의 자료들,
그것들을 뒷 배경으로 이미 깔아 두었지 않았을까?

이제 아병은 어찌 될 것인가?

영화는 바로 내 의심대로 흘러간다.
눈이 열리자 귀가 멀어간 것이다.

과연, 아병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실수를 저지른다.
첩보국 대장의 암호명 ‘老鬼’와 상대 편 두목의 암호명 ‘重慶’을 만드는 방식이
엇비슷하여 암호를 해독(解讀, 破解)하는 과정 중에서 차질을 빚는다.

실제는 아군 두목이었던 것을,
상대편 두목으로 오독하고 만다. 

이로서 작전은 실패하고,
역으로 아군 대장이 죽고 만다.

그런데, 아군 대장은 아병을 첩보국으로 데려온 미모의 그 여자 첩보원이었던 것이다.
마침 당시 그녀가 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간 둘 사이에는 산골짜기에 은은히 번지는 암향(暗香)처럼,
따뜻한 때론 아리고 시린 정감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병은 자책과 함께 깊은 시름에 잠긴다.
어느 날 아병은 스스로 눈을 칼로 찔러 다시 장님으로 돌아간다.

일득일실(一得一失)
득이부실(得而復失)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
얻으면 언제고 다시 잃고 마는 것.

다시 장님으로 되돌아 간 아병.
이제 영화는 빠른 결말을 향해 내닫는다.

아병은 다시 저들의 무선망을 장악하고는 암호를 해독한다.

적들은 일망타진 되었지만,
그날, 그 현장,
코드명 ‘200’
그녀는 장작더미 위에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장님 아병은,
저 바람을 듣고 있음인가?

聽風


※ 중문 자막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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