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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를 들어라 - 聞其聲

소요유 : 2013. 1. 6. 16:02


孟子 《梁惠王》

제선왕이 물어 가로되,

“제환공, 진문공의 일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맹자 답하여 가로되,

“공자를 따르던 이들은 그들에 대해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후세에 전하여진 바도 없습니다.
 신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한즉 부득이하나마) 허나 왕도에 대하여는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왈, 덕이 어떠하여야 가히 왕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왈, 백성을 보호하는 왕 노릇을 하면 그것을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왈, 과인 같은 사람도 보민(保民)할 수 있겠는지요?

왈, 물론입니다.  
왈, 어떤 연유로 내가 그리 할 수 있는 것을 아십니까?

왈, 신이 호흘에게 들으니, 말하길,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시다, 소를 끌고 당하로 지나는 자가 있어,
   그를 보시고는 “소는 어디로 가느냐?” 하시니,
   답하여 아뢰길, “장차 흔종하려 하나이다.” 했고,
    (※ 흔종(釁鐘) : 새로 만든 종에 피를 바르는 일)
   왕께서 이르시기길, 
   “놔주거라! 내 차마 죄도 없이 사지로 끌려가면 벌벌 떠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노라.” 
   답하여 아뢰길, “그러면 흔종을 폐하리이까?” 
   왕께서 이르시길, “어찌 폐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꿔라!”고 하셨다니,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적이 있으셨습니까?

왈, 있습니다.

왈, 이런 마음이면 족히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왕이 아껴, 인색하다고 하지만,
   신이 보기엔 왕이 차마 죽이는 것을 보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왕왈,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런 백성이 있겠지만, 제나라가 비록 좁고 작다지만,
     내 어찌 한 마리의 소를 아끼겠습니까?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에 양과 바꾸라 한 것입니다.

왈, 왕께서는 백성들이 인색하다고 말하는 것을 괴이쩍게 여기시지 마십시오.
    작은 것으로써 큰 것과 바꾸셨으니 저들이 어찌 그 뜻을 알겠습니까?
    왕께서 만약 죄 없이 사지로 끌려 나가는 것을 측은히 여기셨다면,
    소와 양을 어찌 가리셨나이까?

왕소왈(王笑曰), 
    그것 참으로 무슨 마음이었던가? 내가 재물을 아껴 양으로 바꾸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의당 백성들은 내가 인색하다고 이르겠습니다.
왈, 나쁠 것 없습니다. 이야말로 인을 행하는 일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금수를 대함에 있어, 
    살아 있는 것은 보고, 죽는 것은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군자는 포주(庖廚)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 포주(庖廚) : 푸줏간과 부엌)


孟子 《梁惠王》

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孟子對曰:「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無以,則王乎?」
曰:「德何如,則可以王矣?」
曰:「保民而王,莫之能禦也。」
曰:「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曰:「可。」
曰:「何由知吾可也?」
曰:「臣聞之胡齕曰,王坐於堂上,有牽牛而過堂下者,王見之,曰:『牛何之?』對曰:『將以釁鐘。』王曰:『舍之!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對曰:『然則廢釁鐘與?』曰:『何可廢也?以羊易之!』不識有諸?」
曰:「有之。」
曰:「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為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王曰:「然。誠有百姓者。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即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故以羊易之也。」
曰:「王無異於百姓之以王為愛也。以小易大,彼惡知之?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則牛羊何擇焉?」
王笑曰:「是誠何心哉?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宜乎百姓之謂我愛也。」

曰:「無傷也,是乃仁術也,見牛未見羊也。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是以君子遠庖廚也。」
 

"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是以君子遠庖廚也。"

"
군자는 금수를 대함에 있어, 
살아 있는 것은 보고, 죽는 것은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소리를 듣고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군자는 포주(庖廚)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음미하여야겠다.

그럼 보지 않음으로써 가한가?

포주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인데,
이를 보지 않음으로써 족한가?

포주를 멀리한다면,
금수의 죽어가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고,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일까?

게다가 포주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떠한 경계의 사람들인가?
그들은 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仁하지 않아도 되는가?
만약 仁하지 않다면 그들은 누가 구제(救濟)하는가?

유가(儒家)는 인도(人道)를 말할 뿐,
그 너머 일엔 아직 충분한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유자입정(孺子入井)이라,
  (※ 참고 글 : ☞ 2009/09/15 - [소요유] - 무측은지심 비인야(無惻隱之心 非人也)
어린 아이에 대하여는 측은지심을 일으키되,
그 너머 일엔 아직 석연치 않아 불충분하다.

다만,
“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
이 말씀을 유가로부터 듣는 것만 일지라도 다행이라 할 터.

그 마음의 단서, 싹이야말로,
다음을 기약할 희망이니까.

군자라면 포주(庖廚)를 멀리할 일이 아니라,
외려 가까이 하여 그 실상을 직접 보고 깨우침의 도량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게에 들어 우선은 설거지부터 행하라.
접시에 낀 돼지기름, 쇠피로부터 저 단말마의 소리를, 聞其聲할지니.

지나가는 소에게,
스님들이 이리 이르곤 한다.

"如是畜生發菩提心 "
"축생이지만 보리심을 내거라."

불가(佛家)는 그 마음이 소에게까지 미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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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유 : 2013. 1. 6. 1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