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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베리

농사 : 2013. 3. 13. 12:22


블루베리는 품종이 수백 종이나 된다.
그런데 품종 관리가 철저히 되지 않아 품종 명을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이 때 흔히 이를 지칭하길 몰라베리라 한다.

블루베리 품종 개발은 지금도 쉼 없이 계속된다.
열매가 크고, 풍미가 그럴 듯한 것을 목표로 한다든가,
수확량, 수확기 등 여러 조건을 따져 원하는 품종을 새로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 뉴질랜드, 일본 등에 퍼져있는 개량업자들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일로매진하고 있다.

세상이 이리 치닫고 있는데,
몰라베리란 얼마나 한가한 모습인가 말이다.

그런데 몰라베리는 왜 생기는가?
내가 생각하기엔 ‘철저함’이 부족하기 때문인 아닌가 싶다.
실수 때문에 간혹 생기기도 하지만 대개는 관리의식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의 경우엔 내가 한참 바빠 블루크롭을 BC, 버클리를 BK로 약하여 이름표를 달아두었는데,
처가 총망중에 이를 한데 모아 분갈이를 한 적이 있다.
다행이 양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큰 낭패를 당했을 뻔했다.
이들을 한데 모아두고 나는 과감히 포기하였다.

도대체가 이름이 확정되지 않은 것은 내 농장 안에선 제 역할을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포장 전체를 묘목별로 구역을 정하고 이름표를 철저히 달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어느 농장을 가면 팻말 하나 없이 죽 늘여놓은 경우를 본다.
품종을 물어보면 주인은 열심히 주워섬긴다.
하지만 나로선 이게 영 찜찜하고 믿음이 가지 않는다.

블루베리를 증식하는 방법엔 몇 가지가 있다.
대개는 삽목과 조직배양을 이용한다.
그런데 혹간 실생(實生)으로 묘목을 키워내는 경우도 있다.

씨로 증식하여 얻은 묘목을 실생묘라고 이르는데,
나는 이게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꽃가루받이가 농장내 여러 품종 간에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씨로 직접 키워낸 묘목은 도대체가 품종 확정을 할 수가 없다.
그러하니 이런 것들은 몰아서 한 농장 안에 심어두고 그저 열매만 취하려 한다면,
일응 그리 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확정불능의 품종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과실 품질이 고르지 않다.
게다가 숙기도 다를 확률이 있기 때문에 계획 생산이 어렵다.

어떤 이는 실생묘를 다량으로 증식하여 농장 전체를 식재하고 이를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저게 영 언짢기 짝이 없다.
당연히 식재 비용은 대폭 줄였을 터이지만, 
도대체가 농장 전체에 출신이 불명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로선 견디어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묘목을 구하려 한다면 저런 농장에선 구입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설혹 별도로 관리된 품종이 있다한들 주인의 저런 안일한 의식을 보고 두고는,
나머지에 나눠줄 신뢰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요즘은 삽수를 비교적 구하기가 쉽다. 
하지만 남의 농장에서 옹색하게 구하다보니 품종이 뒤섞이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리 구한 것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키우다 보면 필경 나중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보유한 나무의 전체적인 품종 관리가 엉망이 되어버리곤 한다.

가끔 농장을 새로 조성하려는 이들 중엔,
여기저기서 삽수를 얻어 집안에서 사전 증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저리 알뜰한 모습을 보자면 옆에서 도와주고 싶고 칭찬도 아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러 농장에서 구하다 놓은 삽수를 다루다가 혹간 섞이기도 하고,
좁은 곳에서 다량으로 키우다보니 나중에 분갈이를 하면서 취급 부주의로,
또 다시 섞이기도 하는가 보다.

그러다보니 일정분은 늘 품종 불확정품이 생기게 된다.
나중에 정식으로 농장 조성에 들어갈 때,
이게 아까워 필경은 그냥 농장에 심기에 이르게 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어떤 모임에서 보자하니,
한 분이 이리 모아둔 묘목을 정식으로 밭에다 내다 심는 작업을 하는데,
몰라베리가 상당량 되는가 보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동안 키운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밭에다 심게 되는데 저것은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되리라 나는 확신한다.
저리 몰라베리가 심겨진 농장은 대외적으로 우선 체면이 깎이고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저 농장에선 도무지 묘목 생산을 하여도 외부에 공급할 명분이 없게 된다.
도대체가 품종을 확정할 수 없는 묘목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의 경우엔 묘목장은 물론이거니와,
정식 포장에도 일일이 명찰을 달아 엄격히 품종 관리를 하고 있다.
어떤 이가 방문하여서 나중에 토로하기를,
저 철저히 내붙여놓은 표찰을 보고서는 우리 농장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중앙 통로 좌우 식재 줄별로 가지런히 팻말을 세워두다.)

흔히들 이름이 없는 것을 몰라베리라 부르고 있는데,
사실은 베리라는 post-fix를 붙이기도 민망한 것이다.
천덕꾸러기 몰라베리를 끼고 살며 안타까와할 노릇이 아니라,
애초부터 원천적으로 이리 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리라.

다만, 연구 목적상 의도적으로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려 한다면,
모계와 부계를 계통적으로 관리하며 실생으로 키워볼 수는 있겠다.
나 역시 조만간 이런 시험 재배를 할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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