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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둔

소요유 : 2014. 3. 13. 12:00


내가 전에 내린천 살둔 마을 펜션에 든 일이 있다.
소문과는 달리 내가 묵은 곳 곁을 흐르는 내린천은 비린내가 심했다.
내가 묵은 곳은 좀 하류에 가까워서 그럴 수 있는데,
상류 쪽 형편은 어떠한지 살피진 못했다.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한데 가까이 다가가면,
필경은 물속에 질소와 인 성분이 많았기 때문이리니,
이끼도 많이 끼고 물에선 비린내가 났다.
강 속 돌을 건져보니 이끼가 많이 붙어 있었다.
 
그곳 표지판엔 살둔(生屯) 지명에 의지하여,
월둔(月屯), 달둔(達屯)이란 말도 빌려 병기해놓곤 하였다.
이게 묘하게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수필,
월든(Walden, or Life in the Woods)을 연상케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 때 둔주(遁走)란 말을 떠올렸었다.
 
둔(遁)은 이게 그냥 도망간다는 뜻이긴 하지만,
속세를 등진다는 표현법에 많이 쓰인다.
 
가령,
둔세(遁世), 둔속(遁俗) 등은 속세를 등짐을 뜻하며,
둔입공문(遁入空門)은 중이 되어 불문(佛門)에 드는 것을 말한다.
 
살둔(生屯)은 살만한 곳이란 뜻이라니,
둔입공문(遁入空門)과는 좀 괴리된 느낌이다.
전자는 생에 대한 애착이 아직도 한참 절절하나,
후자는 이 집착을 벗어나기 위해 길을 찾고자 함이 아니든가?
 
둔(遁)은 본시,
逃也임이라,
도망가는 것이 제일의적 뜻이다.
 
하지만,
避也,
隱也이라,
피하고 숨는다는 뜻으로 전화(轉化)된다.
 
내가 오늘 아침 이 글자 뜻을 새기고 있는 까닭은 실인즉,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 글자에 매여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둔입공문(遁入空門)은 속세를 떠나 법(法)을 구하려 함이겠으나,
요즘 사람들은 속세에 남아 제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남을 버리는데 매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는 출세(出世)나 둔세(遁世)가 아니라,
실인즉 입세(入世)에 나아가 계세(繫世)에 다름 아닌 것이 아니랴?
 
flee
 
재난, 위험으로부터 달아난다 함이지만,
이게 본래의 어의(語義)대로 흉포한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인즉 타자를 그리로 몰아버리고,
나만 챙기고 달아나 살겠다는 외표(外表)가 아니더냐?
 
ripple
 
저들은,
잔파랑처럼,
거죽만 나불나불 거리기 바쁘지,
파도 밑에 큰 바다의 근원을 볼보지 않는다.
 
불교에선 근원을 돌봄을,
반본환원(返本還源)이라 하여,
본바탕으로 돌려 본래의 진면목을 회복함을 이르곤 한다.
 
원래 반본환원(返本還源)은 반본환원(返本還元)으로,
이리도 표기하는데, 이리 되면 도가(道家) 쪽 술어로 보아주어야 한다.
 
도가는 불가 쪽과 달리 언제나 현실을 등지지 않는다.
 
‘氣全神備,道可克成。太白真人雲:老者復丁,壯者返嬰。此蓋明返本而還元者也。’
 
기(氣)가 온전해지고, 신(神)이 갖춰져,
도가 극성의 경지에 이른다.
태백진인이 말하길,
늙은이는 젊은이가 되고,
젊은이는 어린아이가 된다.
이 모두 반본환원의 그 명백한 모습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도가는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감을 이상으로 보지만,
불가는 아예 태(胎) 이전 상태까지 들어가 버린다.
 
도가는 출세(出世)와 입세(入世) 이 중간에 서서,
양쪽을 다 조망한다.
하지만 불가는 세상을 등지고,
출세(出世)하는데 그 뜻을 둔다.
유가는 애오라지 입세(入世)에 진력한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유가 또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불가도,
엄청나게 많은 말을 해대었다.
 
반면 노자는 기껏 5,400 여자에 불과하다.
(물론 도장(道藏)이야말로 말과 주문의 사태를 이루지만 말이다.)

 

 
극단에 선 이들은 세상을 향하여 할 말이 많은 것이다.
 
말이 많고, 적음을 떠나,
반본환원을 기약하지 않는 사태를 난 여기 당대의 현실에서 목격한다.
이의 외표는 당장 염치가 없는 바로 확인이 된다.
 
입세주의에 터를 둔 유가일지라도,
귀근복명(歸根復命)이라 하였은즉,
역시나 반본환원을 의식하고 있다.
 
‘瞽者善聽 聾者善視 絕利一源 ....’ 
(黃帝陰符經)
 
‘맹인이 듣기를 잘하고,
벙어리가 보기를 잘한다.
이익 됨을 끊으면 그 본원으로 들어간다.’
 
이 말씀을 끝으로 남겨두며,
세상을 향한 공연한 말씀을 그만 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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