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드잡이질 후기

소요유 : 2014.11.10 14:12


내가 앞에서 드잡이질을 하고프다 하였다.
(※ 참고 글 : ☞ 드잡이질)

며칠 후 군청 당국에 신고를 하였다.
녀석들은 신신당부를 하여도 언제나 피드백(feedback)이 없다.
신고 후 그 처리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이것을 제대로 전해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아직도 관료란 민 위에 군림한다는 의식이 가시지 않은 증좌(證左)다.

그런데 신고를 받은 이가 나의 목소리를 알았음인가?
몇 차 접촉한 적이 있기에 그는 나를 알고 있다.
그 이튿날 신통하게도 회신이 왔다.
밭 관리자를 찾아 처리를 하였다고 한다.
미뤄 알 수 있음이니, 
역시나 밭을 빌려 쓰고 있다는 말이렷다.
전일 신고 시 어떻게 처리하기를 원하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것은 그대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나는 오직 그를 벌하는 데,
그 뜻이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연년세세 벌어질 일을 우려하는 바,
그것이 차단되면 그로써 다행이라 여기겠다.‘

그는 주의만 주고 말았다 한다.
우리네 풍속은 이리 무르다.
이를 혹자는 관대하다고 말한다.
본디 관대(寬大)하다 함은,
법을 집행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법은 엄정(嚴正)함을 그 으뜸 가치로 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
공명이 마속을 참할 때,
울음(泣)을 누르고, 목을 베는(斬) 행동,
그 가운데 법은 바로 선다.

법이란 본디 그러한 것이다.
관대하다, 엄혹하다
이런 따위의 것으로 재단할 노릇이 아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삿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정법을 드러내는데,
법의 참다운 의의가 있음이다.

천하통일을 한 진나라지만,
그것은 진시황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그 초석은 법가(法家)를 일찍부터 초빙하여,
사회를 일신한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시황보다 6 대(代)나 앞선,
진효공(秦孝公)이 중용한 상앙(商鞅, 前390年-前338年).
그 상앙(商鞅)의 변법(變法)을 소개한다.
이는 진시황의 천하통일보다 근 130 여년 앞선 때이다.
진효공이 상앙(=衛鞅, =公孫鞅)을 임용한 것은 서력기원 전 359년이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이 기원 전 221년이니까,
정확히는 138년이 되겠다.

변법(變法)이란 기존의 법을 바꾼 새로운 법이란 뜻이다.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엔 소위 일컫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어느 하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변법(變法)은 진나라뿐이 아니라, 
예컨대,
초(楚)나라도 병법의 대가인 오기(吳起, 前440年-前381年)를 등용하여 변법을 썼고,
위(魏)나라도 당시로선 大사상가인 이회(李悝, 前455年-前395年)를 등용하여 역시 변법을 썼다.
그런데, 이 이회가 남긴 저작은 지금은 일실되었지만,
대개는 법가의 사상을 폈으며, 중농(重農) 정책을 시행했는 바,
나 같은 농부는 특별히 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쓴 정책은 평적법(平糴法)이라 부르는 것인데,
그 실천 내용인즉 소위 조귀적천(糶貴糴賤)하는 것이다.
이게 무엇인고 하니,
풍년이 들어 쌀이 쌀 때는 국가에서 사들였다가,
흉년이 들어 비쌀 때는 팔아서 전체적으로 곡가를 안정시키는 정책이다.

實行“平糴法”。豐年時政府以平價購入糧食,災年再以平價出售。

이런 정책 수단은 현대에서도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것인 바,
기실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다.
허나, 문제는 이런 정책은 백성을 의식하지 않으면,
결코 집행 현실이 나타날 수 없는 데 있다.

그는 또한 법경(法經)을 지었는데,
이를 후에 상앙이 지니고 진나라에 들어가 등용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를 법가의 시조(始祖)로 특별히 새기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법은 주장하는 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를 채용하고 시행할 군주가 없으면 다 허사일 뿐.
상앙은 군주를 마침 맞게 잘 만나 일을 꾸밀 수 있었다.
허나 진효공이 죽자 판은 다시 뒤집히고 만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기득권자(귀족)의 저항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역사에서 변법이 등장하면 사회가 요동을 친다.
대개 변법은 기득권자의 권리와 이익을 제한하는 것을 본령(本領)으로 한다.
늘 그러하듯이 먼저 가진 자는 그것을 지키기에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놔두게 되면 자원의 분배가 편협히 고착되기 때문에,
공정함을 잃게 되고 인민(人民)들은 도탄에 빠져 마냥 신음하게 된다.

물론 당시의 변법이란 인민만을 위하였다기보다는,
왕과 신하 즉 귀족들 간의 권리 제한과 확보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는 이 자리에서 자세히 논할 여유가 없다.

참고로 내가 여기서 인민(人民)이라고 썼는데,
이것을 자칫 공산주의내지는 사회주의적 용어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의미로 쓴 것이 아니다.
人民이란 人과 民으로 나눠서 보아야 한다.
人이란 본디 사람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나,
나는 이리 나눠 보면서 타자(他者)를 가리킨다고 한정해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고전엔 인민이란 말이 곧잘 등장한다.
그 때는 인생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사람의 집합을 가리키기도 한다.

金玉之賤,人民是寶。
금과 옥은 천하고, 인민은 보물이다.

제환공이 사냥하다 우연히 만난 노인 하나는 왕에게 이리 아뢴다.
이 때 인민은 그냥 백성 정도로 보아주면 된다.

실제 한문에선 人은 타자를 뜻한다.
내가 아닌 남이란 말씀이다.
民이란 백성이니 요즘이라면 국민, 나아가 시민을 뜻하니,
권리의 주체로 해석하여야 한다.
역사적으로는 거꾸로 이를 치자(治者)의 객체로 취급하였지만,
오늘날엔 존재론적 자각과 의식을 가진,
정치, 사회학내지는 철학적 주체로 바로 잡아 두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이 부분과 맥을 함께 하고 있음을 이해하면 도움이 되리라.

그러니까,
人民이란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
그리고 왕만이 아닌 백성내지는 시민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니,
여긴 언제나 이들 양 부류 간에 갈등과 긴장이 흐르고 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원 분배, 정의 실현 문제가 가장 큰 요체가 될 터인데,
한마디로 전자는 부.귀(富.貴)의 문제가 되겠다.
역사적인 부귀와 관련된 내용은 실로 재미있는 주제인데,
이에 대하여는 언제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해 볼 틈이 있겠다.

이제, 상앙이 시행한 변법 중 이 글에서 내가 환기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것을,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棄灰於道,以惰農論

길에다 함부로 재를 버리면, 농사일을 게을리 한 죄로 묻겠다.

그런데 이런 전통은 그보다 사뭇 앞선 은나라에도 있었다.

殷之法,棄灰于公道者斷其手

은나라의 법(엔), 재를 공도에다 버리면 그 손을 자른다.

이런 모습을 두고는,
혹자는 고대의 법제는 너무 무자비하다고 평한다.
요즘 의식으론 그러하지 않다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형량(刑量)의 경중, 또는 양형(量刑)의 정부(正否)를 시비하기 이전에,
그 법의 집행 정신을 살피기는 것이,
여기 이 자리의 분수를 지키는 것이리라.

殷之法,棄灰于公道者斷其手,子貢曰:「棄灰之罪輕,斷手之罰重,古人何太毅也?」曰:「無棄灰所易也,斷手所惡也,行所易不關所惡,古人以為易,故行之。」
<韓非子 內儲說上>

은나라의 법(엔), 재를 공도에다 버리면 그 손을 자른다.
자공이 공자에게 여쭙는다.

‘재를 버린 죄는 가벼운데,
손을 자르는 벌은 무겁습니다.
옛 사람은 어찌 이리 엄하오니까?’

공자가 이리 말씀 하시다.

‘재를 버리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다.
손을 잘리는 일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다.
쉬운 일을 행하는 것과,
싫어하는 일은 서로 무관한 일이다.
옛 사람은, 쉬운 일이니까,
그로써 그리 행할 뿐이니라.’

대개의 시골 사람들은 밭에다 온갖 비닐 따위를 버리고,
태워서 다이옥신을 온 세상에 퍼뜨린다.

(난 기실 여기 시골 땅에 와서,
이 지경으로 허물어진 저들의 모습에 경악하였다.

도시에 살 때,
나는 저들이 마냥 순박하고 지순한줄 만 알았다.
저들의 일방적인 사회적 희생을 아파하였고,
지지를 보내고 응원하였었다.
물론 지금도 그 태도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면,
저들의 천박한 모습, 무지한 행태에 대해서는 용인하기 힘들다.)

그것은 참으로 쉽다.
수거하는 일도 귀찮고,
만에 하나 혹 수거하였다하여 그것을 챙겨 쓰레기봉투에 넣거나 집으로 가져가는 일은,
성가신 일이다.
그러나 밭에다 버리거나,
슬쩍 태워버리는 일처럼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이게 과연 쉬운 일인가?
온 천하의 공기를 발암 물질로 더럽히고, 
토양을 오염 시키는 일을 어찌 쉽다 할 수 있겠음인가?
천하인 모두에게 위해를 가하는 짓이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저들의 패악질로 자연은 신음하고, 하늘 창은 오존층이 파괴되어 뻥 뚫리고,
극지의 천년설, 얼음이 엿가락처럼 녹고 있다.
실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저지르는 개인에겐 쉬운 일이지만,
천하인에겐 중하고 큰일이다.

하니깐,
앞 선 공자의 말씀은,
쉽다 이르신들 그게 결코 쉽다는 뜻이 아니다.
천하에 큰 해악이 된다는 말씀이다.

헌즉 큰 벌로써 저들을 응징하는 일이야말로,
쉬운 일이어야 한다.

저런 패악질은 저지르는 족족 엄한 벌로써 징치(懲治)하여 한다.
그러고서야 비로소 온 천하가 태평하리라.

저런 천(賤) 불한당이 농부로 있을 땐,
비료를 퍼부어 아질산염이 그득 든 짙푸른 소채(蔬菜)를 만들어 낼 것이며,
토양은 온갖 오물로 더럽혀져 예토(穢土)가 되어 갈 것이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혹, 저들이 도시로 나아가 공인(工人)이 된다면 어떤 짓을 일삼을까?
가령 두부 장수를 한다면,
두부에다 횟가루를 처넣을 것이요.
콩나물 장수를 한다면,
농약물을 거침없이 들이부어 콩나물을 만들지 않을 터인가 말이다.

또한 저들이 상인(商人)이 된다면 무슨 짓을 할런가?
교묘히 저울 눈금을 조작하여 근량(斤量)을 속일 터이며,
거짓 간판을 세워 소비자를 우롱할 것이다.

실제 여기 시골엔,
서울에서 내려온 농부 허울 쓴 장사꾼 하나가 있다.
농장 개설한지 일 년도 되지 않아,
‘ooo 농업인 대상’
이런 상을 받았다.
아직 열매도 달리지 않았는데,
그는 유기농, 자연 재배 명품 과일을 생산한다며,
유명 언론사가 주는 상을 받았다.
아니 이 상은 받는 것이 아니라 기백만 원을 주고 사온다.
난, 나중에 이를 또한 이 자리를 통해 고발할 것이다.

그러함이니,
농부니, 공인이니, 상인이니 하는 허울은 문제가 아니 된다.
사람 하나가 있어,
그가 서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옳게 사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농부라면,
땅을 아끼고,
식물을 귀히 여겨,
천하인의 목숨을 바로 부축할 수 있도록,
삼가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아니 갖추어진다면,
유기농 인증, 자연 재배라는 명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속임 수, 헛짓거리일 뿐이다.

내가 머무르는 이곳 가근방을 통틀어,
그들이 유기농 인증을 준다면 내가 첫 째가 될 터이며,
혹여 자연 재배 인증이 있다면 나를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허지만 유기농 인증도 가짜가 판을 치고 있음은,   
이미 온 천하에 밝혀졌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을 참고하라.
☞친 환경 유기농의 진실- 1부. 가짜 인증의 덫)

난 진작 이런 인증 따위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만, 내 양심을 지킬 뿐이다.
그 외의 것은 사번(事繁)스런 짓일 뿐이다.
호무의(毫無意),
터럭 하나만큼도 뜻이 없다.

(※ 事繁
사마중달이 제갈공명과 오장원에서 대치한다.
촉나라 사자에게 사마중달이 제갈공명의 근황을 묻는다.
사자는 말하길 식사는 적게 하고, 업무량이 많다고 아뢴다.
이 말을 듣고는 사마중달은 
“공명이 그리 적게 먹고 일을 많이 하니 어찌 오래 살 것인가?” 
(食少事煩 安能久乎)
이리 짐작한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명은 죽고 만다.

공명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인데,
홀로 걱정을 도맡아 하다 끝내 명을 재촉하고 만다.

도대체가 유기농이니 자연재배하면 그 뿐이지,
왜 제 삼자가 나서서 인증을 하는가?
또한 농부는 마른 혓바닥 내밀며 죽 늘어서서 이를 받지 못할까 안달을 하는가?
이는 모두들 속임을 으뜸 가치로 삼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 이를 감시하고자 국가를 내세웠지만,
국가 또한 미덥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
결국 천하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그래 사람을 직접 구하고자 한다.
미더운 사람을 구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이를 찾으면 이젠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내가 잠시 한눈을 팔아도 그가 곁에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이런 이들이 이 시대에 남아 있는가?
나는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그런 이들은 별처럼 하나 둘 어둔 하늘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파도가 일더라도,
깊은 바다 속에서 명주(明珠) 진주를 영글리며,
제 고상한 뜻을 안으로 고이 익히 듯.)

두부장수가 설혹 횟가루를 섞는다한들,
야밤에 몰래 숨어서 한다.
그러함인데 농민 하나가 있어,
백주대낮 도로변 밭에다 태운 채 내뺄 수가 있는가?
 
숨어서함은 일말의 수치스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리 안하무인 태연하게 일을 저지름은,
부끄러움이 실종되어 있음이다.
이러고도 과연 농부라 이름할 수 있겠음인가?
나는 결단코 말하거니와,
저들은 농부가 아니라 천민(賤民)일 뿐이다.
농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無羞惡之心 非人也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의 말씀이다.
이 어찌 삼엄한 가르침이 아니랴?

(덧붙임)

내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처리 흔적이 수상쩍어,
저들이 처리하였다는 곳을 가서,
오늘 직접 삽으로 파보았다.

헌데, 어련할려고, 
그 자리는 오물이 적지 아니 나왔다.
그저 적당히 흉내를 내고,
근처 밭 흙을 떠서 파묻고 말았던 것이다.

의식이 따르지 못하면,
곤장 백 대를 쳐도 변함이 없다.
이를 일러 불상것이라 칭함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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