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몰카와 상은(相隱)

소요유 : 2015. 8. 28. 20:36


최근 워터파크 여자 샤워실에서 몰래카메라로 나쁜 짓을 저지른 여자가 경찰에 잡혔다.

여자는 물의를 빚자 고향 집으로 숨어 들었다.

헌데 게서 사단이 벌여졌음이니,

여자는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고향집으로 잠적하였으면 국으로 죽치고 지내지,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갔으니 이 여자의 명운(命運)은 참으로 얄궂구나.

아버지는 경찰 조사 과정 중, 문제의 동영상 내 인물이 자신의 딸임을 진술하였다.


자식이 아비를 고소하고,

아비가 자식을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실로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말았음인가?


이에 여기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葉公語孔子曰:「吾黨有直躬者,其父攘羊,而子證之。」孔子曰:「吾黨之直者異於是。父為子隱,子為父隱,直在其中矣。」

(※ 證 : 告에 통함.)


섭공이 공자께 말하다.


‘내 봉지에 궁이란 정직한 자가 있습니다.

그 아비가 양을 훔치니 자식이면서도 고발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하다.


‘우리의 경우엔 정직한 자가 이와는 다르오.

아비가 아들을 숨기고,

아들이 아비를 감추오이다.

정직함이란 바로 이 가운데 있음이외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공과 사의 분별이 아니다.

여기 매몰되면 저 문장의 해석은 사뭇 고민스럽다.

공이 먼저인가 사가 먼저인가?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취하고자 하나 영 신통스럽지 않다.


도대체가 정치를 얼마나 엉터리로 하기에,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사태가 일어난단 말인가?


아비가 자식을 숨긴다든가,

자식이 아비를 숨긴다는 말은,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를 빌어 곧 저런 사태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황구조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섭공이 뻐기고 있음에,

공자는 발끈하여 되쏘아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 인심을 사고,

정치를 잘하고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래 고작 저 따위로 엉터리였는가?


공자가 그저 비꼬는데 그쳤을까?

정작은 분노하고 계셨음이라.


부자지간 고발 또는 은닉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여기 매몰되면 저 이야기가 내뿜고 있는 의미공간을 재대로 해석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도,

당연 공자는 자식이 아비의 허물을 보고 고발하는 짓을 바르다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령 묵자(墨子)라면 겸애(兼愛)설을 펴고 있는 바,

제 아비나, 남의 아비를 차별하여 대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가는 친소(親疏) 관계를 따지니 곧 별애(別愛)이다.

그런즉 남의 아비라면 모를까 제 아비를 고발하는 것을 어찌 용서할 수 있으랴?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橫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楊氏為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


성왕이 나오지 않자 제후들이 방자하게 굴고,

처사들은 제멋대로 의론을 펴며,

양주, 묵적의 말이 천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양주의 위아설이란 곧 군주를 부정하는 것이요,

묵적의 겸애설이란 곧 어버이를 부정하는 것임이라.

어버이를 부정하고, 군주를 부정하는 것은,

곧 금수와 같다. 


맹자(孟子)의 등문공하(滕文公下)편의 내용이다.


맹자는 이렇듯 친소(親疏)와 서열(序列)로써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자 한다.


‘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


‘왕이여 하필 이로움입니까? 역시나 인의만 있을 뿐입니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말씀이 있느냐 묻자 이리 말하고 있다.


양주나 묵적은 이(利)를 중심으로 사상을 폈다.

즉 전자는 극단적 이기주의라면,

후자는 극단적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의를 앞장세우는 맹자와는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헌즉, 無父無君,是禽獸也。임이라,

저들을 아비도 모르고 임금도 모르는 금수라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리 말하고 있다.


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則易位。


임금이 큰 허물이 있으면 간하고,

반목하여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갈아치웁니다.


물론 이는 귀척지경(貴戚之卿, 왕의 친족)의 경우이고,

이성지경(異姓之卿)인 경우는 다르다.


君有過則諫,反覆之而不聽,則去。


임금이 허물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하여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떠납니다.


하니깐 친족인 경우 왕위를 갈아치워도 좋다는 말이다.


순자(荀子)는 맹자보다 더욱 근본적이다.

순자는 유가 쪽에선 방계로 보고 대접을 소홀히 하지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저들 주류보다는 한결 인본주의적이고 합리적이다.

법가가 순자를 남상(濫觴)으로 사상적 발전을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君者、舟也,庶人者、水也;水則載舟,水則覆舟。


임금은 배고, 서민은 물이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엎어 버릴 수도 있다.


군주가 천부(天賦)적 지위가 아니니,

엎어버릴 만한 사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엎어버릴 수 있다.

맹자의 간하다 통하지 않으며 물러난다(則去)란 것이 순자에 비하면,

얼마나 소극적인가 말이다.


섭공은 초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섭이란 땅의 지방 장관으로서 선정을 펴서 유명한 사람이다.

특히 중국 역사상 농업 수리(水利) 관개 시설로서는 제일 일찍 공을 세운 사람이다.

공자가 주유천하할 때 제자들을 거느리고 초나라로 가서 섭공을 만났는데,

여러 차례 그와 정치에 관한 담론을 나눴다.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近者說,遠者來。”


“가까운데 있는 이들은 즐거워하고,

먼데 있는 사람은 찾아오게 한다.”


이리 말하였다.

이는 곧 정치가 펴지는 역내(域內)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역외(域外) 사람들의 경우엔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정치를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자 섭공은 궁(躬)이란 정직한 사람이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 살고 있다며,

자기가 정치를 잘하고 있는 양 뻐겼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가 논어 외에도 여러 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그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이거 재미가 있다.

간단히 소개를 해본다.


가령 장자(莊子)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直躬證父,尾生溺死,信之患也。


궁이 제 아버지를 고발하고,

미생이 물에 빠져 죽으니,

믿음의 우환이라 하겠다.


여기 미생이란 누구인가?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지도 않는 여인을 기다리느라 약속 장소인 다리 밑에서 

꼬박 기다리다 물이 불어 기둥을 껴안고 죽은 고사를 가리킨다.


믿음을 갖는 일이란 게 믿음을 갖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며,

만구득(滿苟得)은 유자(儒者)들의 충(忠), 효(孝) 따위를 비웃고 있다.


한비자(韓非子)는 유자(儒者)를 더욱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楚之有直躬,其父竊羊而謁之吏,令尹曰:「殺之,」以為直於君而曲於父,報而罪之。以是觀之,夫君之直臣,父之暴子也。魯人從君戰,三戰三北,仲尼問其故,對曰:「吾有老父,身死莫之養也。」仲尼以為孝,舉而上之。以是觀之,夫父之孝子,君之背臣也。故令尹誅而楚姦不上聞,仲尼賞而魯民易降北。上下之利若是其異也,而人主兼舉匹夫之行,而求致社稷之福,必不幾矣。


초나라에 정직한 궁이 있었다. 그 아비가 양을 훔쳤는데, 이를 관리에게 일렀다.

재상이 이르길 죽여라 하였다.

군주에겐 정직하지만 아버지에겐 그르다 하여 죄를 주었다.

이로 보건대 무릇 군주의 정직한 신하는,

아버지의 포악스런 자식이다.

노나라 사람이 군주를 따라 전쟁에 나가,

세 번 싸워 세 번 도망을 갔다.

공자가 그 까닭을 물었다.

대답하여 가로대,


‘나에겐 늙으신 아버지가 계시다.

내가 죽으면 봉양하지 못한다.’


공자가 효자라 여겨 천거하여 위로 올렸다.

이로 보건대 대저 아버지의 효자는 군주의 역신이다.

고로 재상이 처벌하여 초나라엔 간신의 출현이 더 이상 위로 들리지 않았고,

공자가 상을 주어 (거양하였기에) 노나라 사람은 항복하여 달아났다.

상하의 이익이란 이처럼 다르다.

(이치가) 이러함인데, 군주가 필부의 행동을 겸하여 거들어,

사직의 복을 구하려 한다면,

반드시 기대할 수 없으리라.


유가(儒家)는 친소(親疏)를 따지고, 차례를 두어 윤상(倫常)의 도리를 세운다.

세상의 만물에 줄을 세우고 상하 질서를 잡는다.

하지만 법가(法家)는 친소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법에 의율(擬律)하여 만인을 공평하게 대한다.

묵적의 겸애설도 만인에 차별을 두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이니,

법가와 주장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인간을 차별적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는 같다. 


父為子隱,子為父隱,直在其中矣。


아비가 아들을 숨기고,

아들이 아비를 감추오이다.

정직함이란 바로 이러함이외다.’


공자는 이리 말하고 있음이로되,

법가의 입장에선 이는 그저 범인 은닉죄에 해당할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오늘 날 우리나라 법체계 안에서는 

형사소송법상 직계 존속에 대하여는 고소를 못하게 되어 있다.

다만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예외 규정을 두어,

우회적으로 고소를 할 수 있다.

어쨌건 직계 존속에 대한 고소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네 사회가 유가의 강상윤리(綱常倫理)에 구속되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개인 단자(單子)로 급속히 파편화 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전개 양상을 보건대,

이 법률은 끊임없이 위헌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2011년 합헌 결정,

위헌 의견 5인, 합헌 의견 4인

위헌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규정에 따라 6인 이상의 위헌의견을 요하는데,

본 사건에서는 위헌의견이 5인이어서 결국 합헌결정이 내려짐.)


회남자(淮南子)에는 이를 이리 기술하고 있다.


直躬其父攘羊而子證之,尾生與婦人期而死之。直而證父,信而溺死,雖有直信,孰能貴之?


정직한 궁의 아비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이를 신고하였다.

미생은 기약한 여자를 기다리다 죽었다.

정직하였으나 아비를 신고하고,

미더웠으나 물에 빠져 죽었다.

비록 정직하고 믿음이 있다하나 어찌 귀하다 할 수 있음인가?


정직이 부자지정(父子之情)을 헤치고,

믿음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음이니,

이를 어찌 귀하다 이를쏜가?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위와는 조금 다르게 윤색되어 있다.


楚有直躬者,其父竊羊而謁之上,上執而將誅之。直躬者請代之。將誅矣,告吏曰:「父竊羊而謁之,不亦信乎?父誅而代之,不亦孝乎?信且孝而誅之,國將有不誅者乎?」荊王聞之,乃不誅也。孔子聞之曰:「異哉直躬之為信也,一父而載取名焉。」故直躬之信,不若無信。


초나라에 정직한 궁(躬)이란 이가 있었다.

그 아비가 양을 절도하였는데 이를 상부에 신고하였다.

상부에선 이를 잡아들이고는 장차 벌을 주려 하였다.

궁은 벌을 아비 대신 받겠노라 청을 드렸다.

벌을 주려는 때 궁이 관리에게 고하였다.


‘아비가 양을 훔쳤기로 이를 신고하였음이니, 어찌 믿음이라 하지 않을쏜가?

아비 대신 벌을 받으려고 하니 이 어찌 효라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믿음과 효를 갖추었는데도 벌을 주려 하심이니,

나라에 장차 벌 받지 않은 이가 남아 날 턱이 있겠습니까?’


초나라왕이 이를 듣고는 벌을 주지 않았다.

공자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이리 말씀하시다.


‘정직한 궁의 믿음이란 것은 참으로 괴이쩍구나.

일개 아버지를 팔아 명성을 얻다니.

고로 정직한 궁의 믿음이란 것은 믿음이 없는 만도 못하구나.’


여씨춘추(呂氏春秋)란 여불위(呂不韋)가 거느리고 있던 수하의 사람들을 시켜,

당시의 모든 사상을 모아, 분석,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여불위는 이 책에 자부심이 대단하여 일자천금(一字千金)이란 고사를 남겼다.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여불위(呂不韋傳)에 이리 전하고 있다.


布咸陽市門,懸千金其上,延諸侯游士賓客,有能增損一字者,予千金。


함양시 문에다 현상금 천금의 포고문을 걸어,

제후, 유세객, 외교관을 청하노니,

단 한 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다면,

천금을 주겠노라.


초나라는 대의멸친(大義滅親),충어국군(忠於國君)이라,

즉 대의를 위해 사사로움을 등지고,

나라 임금에 충성하니 궁을 방면하였음이다.

허나 공자는 이를 두고 믿음은커녕 아비를 팔아 제 명성을 사니,

참으로 해괴한 짓거리라며 꾸짖고 있다.


예로부터 친족이라 하여도 연좌제로 묶어 고발을 장려하거나, - 告姦連坐

친족끼리는 서로 숨겨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  親親相隱

역사를 보면 이리 양쪽을 오갔는데,

이는 정권의 색채에 따라 법의 내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자는 진(秦)나라 상앙(商鞅)의 변법(變法)이 유명하다.

고간(告姦)과 연좌(連坐)를 제도화하였다.

고간이란 고발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하지 않으면 허리를 잘랐다. 

하지만 죄인을 은닉시켜주면 잡힌 적군에 상당하는 벌을 주었다.


不告姦者腰斬,告姦者與斬敵首同賞

죄 지은 자를 보고도 고발을 하지 않는 자는 허리를 자르는 벌을 주고,

고발을 하는 자와 적의 머리를 베는 자에겐 같은 상을 주었다.

匿姦者與降敵同罰

죄지은 자를 숨겨주면 항복한 적군과 같은 벌을 주었다.


연좌란 백성을 열 또는 다섯씩 묶어 관리를 하는 것인데,

하나가 잘못하면 연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친친상은(親親相隱)이란 친한 사람끼리 죄를 숨겨주는 것을 말한다.

대개 이것은 유교로부터 그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되는 바,

친족의 내용에 따라 여러 제한이 있지만,

최소한 부자상은(父子相隱) 즉 부자 간 서로 죄를 숨겨주는 것은 확실히 벌하지 않았다.

한선제(漢宣帝) 때는 칙령을 내려 법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이후 친친상은(親親相隱) 원칙은 대개는 후대가 따르는 바가 되었다.


그 주요 요체는 셋이다.

첫째는 상은(相隱)은 죄를 논하지 않거나 감형해주는 것이다.

둘째는 상은할 수 있는 친족 간에 고발을 하면 도리어 유죄로 인정하였다.

셋째는 단 대역(大逆)을 꾀하는 경우나 친족 간 상해죄 따위로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곤란한 경우엔 예외로 한다.


역사상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 금지는 정권에 따라 개폐의 변동이 있었지만,

대체로 유지가 되어온 폭이다.

하지만, 현대에도 이 제도가 유지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개인의 존엄과 가치는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이 비록 직계존속에 의해 훼손되었다 하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몰래카메라(몰카)로 나쁜 짓을 저지른 여자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면,

존속이라 하여도 법이 구제해주어야 한다.


몰카 범죄는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

생각만 하여도 화가 난다.

동영상이 온 세상에 흩뿌려질 터인데,

저것은 거둬들일 방법이 없다.

참으로 원통스런 노릇이다.


법원은 저 간악한 자들을 엄히 주벌(誅罰)하여,

피해자들의 견디기 힘들 치욕(恥辱)을 씻어주고,

골수에 맺힌 원한(怨恨)을 달래주길 바란다.


見善不敢不賞,見暴不敢不罪。


착한 일을 보면 상을 주지 않을 수 없으며,

포악한 일을 보면 죄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천하치리(天下治理)라 하였음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는 실로 간단하다.

악한 자에게 벌을 주고,

착한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嘗若鬼神之能賞賢如罰暴也。蓋本施之國家,施之萬民,實所以治國家利萬民之道也。


응당 귀신이 현명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포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는 것을 믿는다.

저 본을 국가와 만민에게 펴는 것이야말로,

실제 국가를 다스리고, 만민에게 이익이 되는 도리임이라.


헌데 옥에 갇힌 악한 자도 사면합네 하며 툭하면 풀어주고,

독립투쟁하면 3대가 망한다는 자조(自嘲)가 온 사회를 뒤덮고 있음이니,

착한 자가 이리 버림을 받고도 천하가 태평할 수 있겠음인가?


묵자는 저리도 귀신의 밝은 지혜와 덕성을 믿었음이온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제 홀로 영악하여,

귀신이 외면하고 찾아오시지도 않음이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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