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왕(王)과 공(公)

소요유 : 2015. 8. 25. 19:47


昔者楚靈王為申之會 ...

 옛날 초영왕이 신에서 회합을 가졌다 ...

昔者衛靈公將之晉

 옛날 위영공이 진으로 가던 중 ...


춘추시대 초영왕(楚靈王)과 위영공(衛靈公)에 대한 글인데,

내가 그 모두(冒頭) 부분만을 떼어낸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왕 이름은 영(靈)인데,

왜 초나라는 왕(王)이라 하고, 위는 공(公)이라 이르는가?


당시 왕이라 칭할 수 있는 나라는 오직 주(周)나라 뿐이다.

초나 위는 주 왕실이 분봉(分封)하여 제후로 삼았은즉,

실인즉 왕이 될 수 없고, 공(公)이라 불러야 온당하다.

헌데 왜 초는 왕이라 칭하고 있는가?


춘추 말기 주 왕실의 권위가 실추하자,

각국은 제 멋대로 왕이라 참칭(僭稱)하게 된다.

남쪽 너른 땅을 차지하고 있던 강국 초나라는,

일찌감치 스스로를 왕이라 부르며 주나라를 능멸하게 된다.


이는 춘추 말기의 일이고 나중 전국시대에 들어가면,

주왕실은 쇠미(衰微)하여 그 권위가 유명무실하게 되고,

각국은 왕호(王號)를 스스럼없이 사용하게 된다.

이는 곧 제국(諸國)은,

모두 정치적으로 독립한, 주체적인 나라임을 천명함과 같다.


참고로 이름에 영(靈) 자가 들어간 왕들은,

사서엔 대개 황음무도(荒淫無道)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좋게 보면 주나라 권위로부터 일탈하여 자주성을 발양하였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내적으론 제멋대로 국정을 농단하고, 민생(民生)을 돌보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서도 재벌 2세들 간에 경영권을 두고 다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곤 한다.

주식을 암암리에 사 모으거나, 우호 세력을 모아,

창업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사회를 소집하여 대표이사에 취임한다.

고대에도 부왕(父王)을 폐하고 스스로 왕에 오르는 일이 적지 않다.

이 역시 패거리 도당을 만들고, 세를 모아 왕위를 찬탈(簒奪)한다.


이 말씀을 하는 동안 나는 제환공(齊桓公) 그를 떠올린다.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가장 뛰어났던 패자(霸者)인 그의 말로는 실로 비참했다.


刁蒞事三年,桓公南遊堂阜,豎刁率易牙、衛公子開方及大臣為亂,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公守之室,身死三月不收,蟲出於戶。


수조가 정무를 본지 삼 년,

제환공은 남쪽 당부 땅을 유람하였다.

수조는 역아, 위공자 개방 그리고 대신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켰다.

제환공은 목이 마르고 굶주린 채,

남문의 침전에 연금된 채 죽었다.

시신을 3개월 동안 거두지 않아 구더기가 문 밖으로 기어나왔다.


수조는 제환공이 여색을 밝히는 것을 알자,

스스로 불을 발라 까고 내시가 되었으며,

역아는 재환공이 아직 맛보지 못한 것이 사람 고기라 하자,

제 자식 머리를 삶아 바쳤다.

개방은 본디 위나라 공자로서 제에 와서 환공을 섬겼으되,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제 부모를 뵈러 가지 않았다.

환공이 관중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런 위인들을 가까이 하더니만,

종국엔 이리 처참한 말로를 걷게 되었다.


무릇 왕이든 재벌가이든,

후계자를 제대로 미리 선정해두지 않으면,

늙어 힘이 빠지고 총기가 흐려질 때,

난이 일어나고 변고를 겪게 된다.

아, 두려울진저.


주주권(株主權)이야말로 현대판 권세(權勢)의 양적 세력 척도라 하겠다.

고대의 권세란 피로써 물려받아 내려온 세습(世襲)적 지위에 의해 확보된다.

하지만 오늘날 주식회사의 소유내지는 경영권은 주주(권)에 의해 결정된다.


자본주의(資本主義)란 말 그대로 자본을 으뜸 가치로 삼는 주의란 뜻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란 얼마나 놀라운가?

신분에 의해, 또는 피가름에 의해 사회적 지위와 재록(財祿)의 크기가 결정되는,

고대 사회란 또한 얼마나 놀라운가?

옛날엔 부(富)와 귀(貴)가 신분에 매어 절로 따라왔다.

하지만 오늘날엔 귀(貴)가 탈거되고 애오라지 부(富)만 중심 가치가 되었다.

따라서 부귀(富貴) 이리 병렬로 나뉘어 쓰이던 절목(節目)들이,

요즘엔 부(富) 하나로 급속히 수렴되고 말았다.

귀(貴)는 다만 부(富)의 종속적 가치로 천이(遷移)되었음은 물론,

천하의 모든 가치 역시 급속히 부에 포섭되고 있는 중이다.


'부자 되세요'


이런 말들이 인사법으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이 따위 천하디 천한 말법이 거리를 횡행하여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이가 없다.

하기사 대박이란 말이 대통령 입에서도 꺼리낌없이 나오는 세태인데,

더 이상 무엇을 탓할손가?


춘추시대 때 가장 강력한 패자였던 제환공도 비참한 최후를 마쳤음인데,

무도하기로 호(號)를 날렸던 영(零)자 가진 왕들의 말로(末路)는 또한 어떠하였으리오?

가령 초영왕의 경우를 살펴보자.


초령왕(楚靈王)이 스스로 패자(覇者)임을 자처하며,

장화궁(章華宮)을 지었다.

장화궁은 넓이가 사십 리며, 

한가운데 높은 대(臺)를 쌓았기 때문에 사방을 맘껏 조망할 수 있었다. 

그 높이가 삼십인(仞)이나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선 장화대(章華臺)라고도 하고,

일명 삼휴대(三休臺)라고도 했다.

즉 너무나 높아서 그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누구나 세 번은 쉬어야 오를 수 있다고 해서 삼휴대라고 한 것이다.

또한 이 고대(高臺)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궁실과 정자들도 모두 웅장하고 화려했다.


원래 초령왕은 괴이한 취미가 있었다.

그는 가는 허리를 가진 여자를 지극히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남자라도 허리가 굵으면 싫어했다.

장화궁이 낙성되자 초령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만을 뽑아서 거처하게 했다.

그래서 장화궁을 일명 세요궁(細腰宮)이라고도 했다.

궁녀들 중에는 초령왕에게 허리를 가늘게 보이려고

음식을 조금씩 먹는 여자가 많았다.

심지어는 허리가 가늘어지기 전에 굶어 죽는 여자도 생겼다.

궁중에서 이 야단들을 하자,

마침내 초나라 모든 백성들 간에도 이것이 유행이 되어,

허리가 굵은 자는 여자나 남자나 모두 무슨 일이라도 난 양,

음식을 조금씩 먹었다.


이렇게 장화궁을 지었으나,

모든 나라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렇듯 속에 든 것이 없는 이는,

괴이한 취미가 있어 자신을 과장하여 포장하는 것이 상례이다.


恥其無功,乃大興土木,欲以物力制度,誇示諸侯。


그 공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크게 토목공사를 일으키다.

물력으로써 뭇 제후들에게 제도를 과시하려 하다.


바로 초영왕이 장화궁(章華宮)을 지을 때의 모습이다.


그러던 그는 차후 나라 안에 반란이 일어나,

쫓기다가 세궁역진(勢窮力盡)하여 자결하고 만다.


대저, 괴이함을 쫓고, 세를 과시하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도(道)를 기르고 덕(德)을 펴는 일이다.


그러함인데 요즘 세태를 보라.

기이함을 쫓는다는 엽기(獵奇)적 기행이 뭇 사람들의 찬탄(讚歎)을 일으키고,

어깨를 치켜세우고, 가슴을 부풀려 잔뜩 뽐을 내면 박수가 쏟아진다.

어즈버 세태의 전변(轉變)이 꿈결인 양 변화무쌍하고뇨.


예전엔 절대 군주들의 전횡이 문제였으나,

이젠 외려 일반인들이 자청하여 이를 불러들이고 있지 않은가도 싶다.


일상에 지친 이들은 급기야 계차적(階差的)으로 강도를 높여가며,

스스로 엽기적인 일을 불러들이며 제 혼을 불사른다.

火借風勢라,

불이 바람을 부르며 무서울 정도로 타오르고 있음이다.


또한 영웅을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일개 연예인에 빠져,

저들을 스타(star)라며 하늘가로 올려두고,

열목(熱目)으로 선망(羡望)한다.


임연선어(臨淵羨魚)임이라,

못가에 임하여 헛되이 고기를 기다림이라,

漁父勞苦 焦喉乾口 虛空無有

어부의 노고만 자심하구나.

목구멍은 타고 입이 마를 뿐,

텅 비어 아무 것도 없구나.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좆대가리  (7) 2015.09.19
지도 정보 오염  (0) 2015.08.29
몰카와 상은(相隱)  (0) 2015.08.28
활시위를 늦추지 말라  (0) 2015.08.25
술에 취한 듯  (0) 2015.08.21
담록(淡綠)  (0) 2015.08.19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소요유 : 2015. 8. 25. 19: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