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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대가리

소요유 : 2015. 9. 19. 17:59


좆대가리


좆대가리와 관련된 한자는 실로 여럿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간 재미롭지가 않다.


 좆을 뜻한다.

 글자를 들여다보면 尸 속에 吊가 들어 있다. 

 尸는 시체이나, 본디 고대엔 죽은 이를 대신하여 제사를 받는 사람을 뜻한다.

 吊는 매달려 있다는 뜻이다.

 가령 조교(吊橋)란 우리가 흔히 쓰는 현수교(懸垂橋)를 가리킨다.

 양쪽 교각 사이에 줄을 매달고 다리 상판을 올린다. 

 그러하니 다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성기(性器)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흔히 욕설에 동원된다.

 屌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살아 있는 놈도 아닌 죽은 시체 가랑이 사이에 덜렁거리며 매달린 것이니,

 한껏 비아냥거리며 내뱉는 욕설이 되고 만다.


𨳒

 𨳒 역시 들여다보면 재미있게도 門과 小가 결합되어 있다.

 문짝 밑에 조그마한 것이 달려 있음이니,

 위신을 내세우며 뽐낼 형편이 아니다.

 헌즉 이도 한껏 조롱하는 말이 아닐 까닭이 없다.

   

 이 조어(造語)도 사뭇 재미롭다.

 고깃살이 고깃살 안으로 들어갔음이니 곧 성교(性交)를 의미한다.


이 모두 막말, 욕설에 당(當)한다.


오늘 농장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신새벽에 밖이 시끄러워 급히 옷을 챙겨 입고 나가보았다.

자동차 두 대, 오토바이 두 대가 농장 주차장을 차지하고서는,

야단법석 난리를 치고 있다.


여기 왜 들어와서 소란을 피는가?

이리 물었더니 회차를 하려는 중이란다.

이리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인접한 군부대 윤형(輪形) 철망이 찌그러져 있고,

그 위에 우리 농장 박스며 호수 꾸러미가 걸쳐져 있다.

아마도 (비어 있는) 부대 담을 월장하여 본드라도 흡입하였지 않았는가 싶다.


계집 아이 둘과 사내 녀석 둘인데,

행색을 보건대 핏짜 배달하는 아이들인 것 같다.

자동차는 머플러를 떼어버렸든가 폭음기를 달았는지,

마치 탱크 굴러가는 듯 엔진 소리가 지축을 흔든다.


농장 안으로 무단히 침입하는 저런 이들이 싫어,

지난해에는 공을 들여 진입 금지 간판을 설치하였음인데,

이게 다 소용이 없다.

저들은 이게 안중에 없는 것이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고 말 뿐,

도무지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다.


자리를 수습하고 돌아서자 하니,

의식 위로 ‘좆대가리’란 말이 떠오른다.

도대체가 저들은 왜 머플러를 떼고,

심장 폭발하는 굉음(轟音)을 내고 있는가?


낮 동안 찌들렸던 저 가여운 자존(自存)들,

밤이 되어서야 그 자존(自尊)을 소리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랴? 


머플러를 떼어서라도 고함을 질러야 살아 있다는 자존감이 회복된다.

그리하여 폭주족들은 밤을 패며 거리를 마냥 질주한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생의 의지를 가진다.

염세주의자들은 이를 특히,

‘맹목적 생의 의지’라 부른다.


정처(定處) 또는 지향(指向)없이, 

애오라지 살고자 하는 의지만 발동하는 사태.

이 어찌 비극적이지 아니하랴?

우리네 명(命)붙이들이란 이리도,

가련하다.


정염(情炎)도 일으키지 않는데도,

하초(下焦) 밑의 좆대가리는 시도 때도 없이 절로 꺼덕거리며 일어선다.


이 어찌 맹목적 생의 의지, 그 준동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음인가?


니체는 권력의지라 하였지만,

이는 다분히 사회적 관계를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 생의 의지는 이와는 무관하니,

개별 단독자들에게 생래적으로 주어진다.


누세(累世) 업력(業力)에 의해 추동되는 저 굉음의 외침.

우주의 끝까지라도 달려가고 말겠다는 저 광란의 폭주(暴走).

가엽다.


저들을 용서한다.

다만 저들이 현장을 바로 떠날 수 없다며 내뱉는 변명이 영 구차스러워 한심스러웠다.

공부(工夫)가 한참 모자라는구나.

폭주 좀 삼가고 가끔은 문(文)의 틈을 걷는 것이 좋겠다.


내가 늘 거니는 길목에 휴대폰 가게 하나가 있다.

아침에 가보면 담배공초와 휴지가 도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버려져 있다.

어제 거길 지나는데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어떤 젊은 녀석이,

무슨 즙이 들어 있는 비닐 파우치(retort pouch)를 뜯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백주 대낮 대로 위에 그냥 스스럼없이 버린다.


바로 녀석을 나무라다.

녀석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줏을 꺼예요.’


내가 녀석에게 되쏴준다.


‘바로 줏을 것이라면 방금 전엔 왜 버리는가?’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씩씩거릴 뿐이다.


못난 녀석이다.


바로 잘못을 사과하며 허리를 굽히고 주우면,

그나마 땅에 떨어진 체면을 약간 양일지언정 건져 올릴 수 있다.


이 간단한 이치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못하고 있음이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다만 이런 처지에 몰렸음을 원통, 절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모자란 녀석이다.


대로뿐인가?

등산길에도 심심치 않게 건강 음료 파우치가 버려진 것을 목격한다.

그리도 잘난 제 몸뚱아리 악착같이 챙기면서,

온 산하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것을 나몰라 할 수 있음인가?


참으로 염치없는 불상것, 그 인간 군상들이다.


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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