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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과 긍정 사이

소요유 : 2015.09.29 12:49


부정과 긍정 사이


내가 앞글에서 인용한 글에 혹 오해가 있을까 저어되어,

잠깐 몇 마디 첨언해둔다.

(※ ☞ 2015/09/26 - [소요유] - 엘사)


먼저 그 해당 글을 다시 여기 모아둔다.


僧問。蛇吞蝦蟆。救則是。不救則是。師云。救則雙目不睹。不救則形影不彰。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중 하나가 있어 스님께 여쭙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데, 

구하는 게 옳은지 아니면, 구하지 않는 게 옳은지요? 

스님이 이르다. 

구하는 즉, 두 눈이 멀 것이요. 

구하지 않은 즉, 형체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昔洪州廉使問馬祖。喫酒肉即是。不喫即是。祖曰。喫是中丞祿。不喫是中丞福。徑山國一禪師。人問。傳舍有二使。郵吏為刲一羊。二使聞之。一人救。一人不救。罪福異之乎。國一曰。救者慈悲。不救者解脫。


(※ 郵吏 : 驛戰管郵遞的小官

   서양식으로 말한다면 postman쯤 된다할까?

   공문서 수발 담당 관리를 일컫는다.

   郵館 : 設在驛站的旅店

   郵驛 : 古時辦理傳送公務信件的地方)


지난 날, 홍주 염사(안찰사)가 마조 스님께 여쭙다.


‘술을 먹는 게 옳습니까?

아니 먹는 게 옳습니까?‘


마조 조사께서 이르신다.


‘먹으면 승상의 재록이요.

아니 먹으면 승상의 복이니라.‘


경산에 국일 선사가 계시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여쭙다.


‘역참에 관리가 둘이 있었습니다.

우리(郵吏)가 양 하나를 막 잡으려(죽이려)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는 하나는 구하려 하고,

하나는 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죄와 복이 어찌 다른지요?


국일 선사가 이르다.


‘구한 자는 자비,

아니 구한 자는 해탈!’


이 세 가지 글은 내용은 다르나,

기실은 동일한 말씀에 불과하다.


뱀 ↔ 개구리

술 ↔ 계율

사람 ↔ 양


모두 제자가 스승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형식을 취하되,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해치려는데,

어찌 할 것인가 하는 동일 구조 양식을 갖고 있다.


이제 설명의 편의를 위해 순서대로 ①, ②, ③으로 번호를 매겨둔다.


스승의 말씀에 있어 ①과 ②, ③은 다르다.

우선 ①은 부정화법, ②, ③은 긍정화법이라 칭하자.


만약 내가 지적하듯이 ①, ②, ③이 결국 동일한 말씀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①을 긍정화법 ②, ③을 부정화법으로 바꿔보면 이게 보다 명확해진다.


① 

 구하는 즉, 살아날 것이요.  

 구하지 않은 즉, 두 눈으로 멀쩡하니 잘 볼 것이다.


 먹으면 승상의 화(禍)요.

 아니 먹으면 승상의 손재(損財)이니라.


 구한 자는 무명,

 아니 구한 자는 무자비!


이렇듯 ①, ②, ③은 각기 그 구조 내에,

救不救(喫不喫)의 짝으로 대귀(對句)를 이루고 있다.

이 대귀들은 상호 배반사건(排反事件,exclusive events)이다.

따라서 ①의 경우 부정 → 긍정 ②, ③의 경우엔 긍정 → 부정으로,

그 제한 형식을 거꾸로 바꿔도 논리적 관계는 동치다.


①, ②, ③은 각기 부정 또는 긍정의 한 형식만 기술하였을 뿐이지만,

이리 각기 긍정, 부정으로 바꿔 숨어 있는 형식을 마저 드러내면,

이 삼자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2년 전 일이다.

농원에 지방 공무원 둘이 찾아 왔다.

환경 보호과 직원들인데,

환경을 훼손하는 일을 목격하면, 

사양하지 않고 나는 대개 신고를 하는 편이다.

여기 시골은 정말 환경보호 의식들이 한참 낮다.

이 천둥벌거숭이들을 보고 나는 시골 사람들을 믿지 않기로 하였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는 마냥 시골사람이 순박하고,

약자인즉 애정을 갖고 대하였었다.

그래 그들을 열심히 응원하기도 하였다.

헌데 직접 겪고 나니 저들을 바로 대하기 힘들다.

시도 때도 없이 생활 쓰레기를 제 집 마당가나 밭에 태워버린다.

이것은 정말 참아내기 힘들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땅을 이리 소홀히 할 수 있음인가?

그 땅에서 온갖 곡식과 열매가 소출되지 않는가?


난 이제껏 농원에서 불 한번 낸 적 없다.

그 흔한 불드럼통이나 화덕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우리 밭은 풀 외에는 일체의 외부 물질이 들어가지 않는 청정토이다.

저들 불드럼통이나 화덕엔 필경 비닐 따위가 아니 들어갈 것 같은가?


그런데 직원 중 여성 하나가 말한다.


“참으로 난처할 때가 많다.

몹쓸 짓들인데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고 나무라고 다니자니,

머리가 아파오고 힘이 든다.

최근에 강의를 하나 들었는데,

매사 긍정적으로 살자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요즘엔 가급적 저런 흉한 일을 외면하고 피해가곤 한다.”


이거 참으로 맹랑한 생각이다.

공무 담임자가 제 할 일을 피해 다니면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긍정적으로 살기로 하였다는 말이다.


저 한심한 공무원을 향해,

나는 자복려백(子服厲伯)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참고 글 : ☞ 2015/08/15 - [소요유] - 악한 말의 창고)


사실 ①, ②, ③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1계차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그리 어려운 것이 없다.


하지만, 가령 이런 것은 어떠할까?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집어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 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서는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도 물론 안 되구.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김성동의 만다라에 나오는 일종의 화두이다.

과시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 겹겹이 부정의 철갑이 둘러져 있다.

저것은 총, 칼로도 뚫을 수 없고, 대포로도 부술 수 없다.

논리로도, 이성으로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한다.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

非, 非非

이거 이중 부정의 대표격인 말이다.

已無粗想,故稱非想;尚有細想,故稱非非想。

거친 생각이 이미 없다.

그래 非想이라 부른다.

하지만 미세한 생각은 남아 있다.

그래 非非想이라 칭한다.


색계, 욕계, 무색계의 최고 정점에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이 있다.

여기 도달하려면 가없는 부정의 징검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하지만 아직 想을 상대하며 여기 매어 있다.

궁극엔 非想, 非非想을 모두 멸한 상수멸(想受滅)로 나아가야 한다.


非想非非想은 산스크리트어로 Naiva saṃjñino Na asaṃjñino라 한다.

영어로 하자면 naiva는 never, Na는 no에 상당한다.

asaṃjñino는 a+saṃjñino인데 여기 a는 부정사이다.

그러니까 saṃjñino 즉 想과 asaṃjñino 즉 非想을 쌍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엉터리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Nir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곧 불을 끄듯 불어 꺼버려야 한다. 없애버려야 한다.

여기 서성거리며 안주하고 있다가는 언젠가 종말을 맞게 된다.

아직 거긴 번뇌가 남아 있고, 윤회를 피할 수 없다.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잡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새색시처럼 그저 얼굴에 박가분 바르고 새침 떼며 참한 척, 착한 척하지 마라.

저 공무원처럼 긍정적으로 살기로 했어 하자마자,

제 삶이 전격 고상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러려면 공무원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  

개량한복 해 입고 턱하니 폼만 잡으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수염 기르고 육환장(六環杖) 잡고 요령 소리 요란하니 내면 도사가 되는가?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잡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부정(否定)을 거푸 저지르며 네 아비까지 죽이는데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부처는 말했다.


취멸(吹滅)하라.

궁극엔 거듭 부정하고, 거푸 죽이는 것을 벗어나야 한다.

이를 저들은 니르바나(涅槃, Nirvana)라 부른다.


허나, 거기 이르르려면 먼저,

일천(一千) 부정의 강을 건너야 하며,

일만(一萬) 갈래를 하나로 묶어 보아야 한다.


여기 관련 참고 자료를 남겨 둔다.

  ☞ 2010/11/10 - [소요유] - 화두(話頭)의 미학(美學)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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