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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학 ⅱ

소요유 : 2015.10.23 14:13


제왕학(帝王學) ⅱ


고대 제왕의 통치술은 ‘인군남면술(人君南面術)’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이것은 중국 전통 건축문화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북반구 중저위도에 위치하고 있다.

지세는 서북은 높고 동남은 낮다.

따라서 집은 소위 좌북조남(坐北朝南)에 따라 앉혀진다.

즉 북쪽에 자리를 잡고는 남을 향해 짓는다.

이러할 때라야 여름엔 바람을 맞아 시원하고, 겨울엔 추위를 피할 수 있다.


가옥은 그래서 대부분 남향으로 지어진다.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정중앙 남향으로 자리를 잡고,

자연히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은 반대로 북향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에 따라 남쪽은 존귀한 방향이란 문화가 생겨났다.


역경(易經) 설괘전(説卦傳)을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聖人南面而聽天下,向明而治。


성인은 남면하여 천하를 듣는다.

밝음을 향함으로써 다스린다.


또한 춘추번로(春秋繁露)에선 이리 말하고 있다.


當陽者,君父是也。故人主南面,以陽為位也。陽貴而陰賤,天之制也。


의당 양(陽)은 군주와 아버지임이라.

고로 군주는 남면하여,

양으로써 자리(지위, 권위)를 삼는다.

양은 귀하고 음은 천하다.

하늘의 제도임이라.


인군남면설은 도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는 이리 지적하고 있다.


道家者流,蓋出於史官,歷記成敗存亡禍福古今之道,然後知秉要執本,清虛以自守,卑弱以自持,此君人南面之術也。


도가는 대개 사관으로부터 나온다.

고금의 성패, 존망, 화복을 역사적으로 기록하여 밝힌 연후에,

요체와 근본을 잡아(파악) 안다.

맑고, 비어 내어 스스로를 지키고,

낮추고 약한 듯 처신하여 자신을 유지한다.

이것이 군주의 남면지술이다.


남면지술의 핵심 내용은 청정(清靜)과 무위(無為)다.

소위 청정이란 맑은 마음으로 욕심이 적은 상태를 말한다.

즉 겸허(謙虛)와 예양(禮讓)이니,

일을 맞아 자신은 낮추고 사려 처신한다.

소위 무위(無為)란 결코 어떤 일이든 나서지 않으니,

이는 곧 임인이불임지(任人而不任智)라 하겠다.

여기 任人而不任智란 사람에 맡기지 지혜엔 맡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에 당하여 먼저 자기의 판단을 내세우지 않고,

신하의 판단을 구한다.

신하의 재주와 지혜를 발굴하여 자기를 위해 쓴다.

이로써 무위이무불위(無為而無不為),

즉 아무런 함이 없이도, 하지 않음이 없는 효과를 얻는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엔 이 장면을 이리 말하고 있다.


有道之主以不知為道,以奈何為寶

(※ 기실 여씨춘추엔 이런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뜻은 어긋나지 않은즉, 이 글의 인용을 따른다. )


도가 있는 군주는 도를 아지 못함으로써 하며,

이를 보배로 삼는다.


그 요체를 아는 군주는 아지 못함과 말하지 못하는 양,

바보 흉내를 낸다.


이는 노자의 ‘處無為之事,行不言之教’에 부합한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처신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르침으로 행한다. 


남면술은 군주는 적게 말하고, 적게 일함을 요체로 한다.

도대체 군주가 할 일이 무엇이 있관대?


고대의 지혜로운 자는 이리 말했다.

군주는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 다만 단 하나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즉 구현(求賢)이니 현자를 구하는 일을 할 뿐이다.


순자 대략편( 荀子大略篇)엔 이리 적혀있다.


主道知人,臣道知事


군주의 길이란 사람을 아는 것이요,

신하의 길이란 일을 아는 것이다.


묵자(墨子)는 이리 설하고 있다.


善為君者,勞于論人,而逸于治官


잘하는 군주는 인물을 논하는데 애쓰고,

관리를 다스리는데는 초탈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이리 설하고 있다.


賢主勞于求人,逸于治事。


현명한 군주는 인물 구하는데 애를 쓰고,

일을 다스리는데는 한가하다.


역사를 보면 일을 열심히 한 제왕은 명백히,

인물을 구하는데 열심히고,

일을 다스리는데는 주의를 하지 않았다.


구현(求賢) 즉 현명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야말로,

제왕의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순(舜) 임금은 고양씨 재자 팔인과 고신씨 재자 팔인을 기용하여,

(高陽氏才子八人和高辛氏才子八人)

천하를 크게 다스렸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최대 기량은 사람을 잘 알고, 잘 쓰는 일이었다.

(知人和用人) 

그는 소하(蕭何)와 장량(張良)을 중용하였다.

한신(韓信)은 고작 행오(行伍) 가운데에서 뽑아 쓴 자이고,

진평(陳平)은 망명 온 것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로써 천하를 빼앗고, 또 지켜내었다.

모두 대량의 유능한 인재를 얻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문제(漢文帝)는 방정하고 간언을 잘 할 현량을 추천하여 올리라고,

수 차례 조서를 내렸다. 

한무제(漢武帝)는 즉위 초 천하의 문학 재지(材智)를 최고로 우대하겠다며,

초빙 선전을 했다.

삼국시대엔 조조(曹操)가 3 차에 걸쳐 소위 구현령(求賢令)을 발포하였다.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사람을 썼다.

(※ 여기서 격식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는 뜻은 무엇인가?

   不拘一格起用人才

   출신이나 전과자 따위를 따지지 않고 다만 능력만 있으면,

   거둬 썼다는 말이다.   이는 조조 인재 기용술의 특징적 모습이다.)

유비(劉備)의 제갈량(諸葛亮) 초빙 삼고모려(三顧茅廬)는 집집마다 모르는 이가 없다.

당태종(唐太宗)은 청정무위(清靜無為)와 구현(求賢)의 중요성을 깊게 알았다.

그는 신하를 상대로 이리 말했다.


‘무릇 치국은 흡사 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다.

뿌리가 흔들리지 않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해진다.

군주가 청정한데, 백성이 어찌 안락하지 않을쏜가?’


또 이리 말한 적도 있다.


‘범사는 모름지기 모두 본에 힘쓸 일이다.나라는 백성을 본으로 하고,

백성은 의식(衣食)을 본으로 한다.

무릇 의식을 잘 경영하려면,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을 본으로 하여야 한다.

무릇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군주가 조촐하니 청정한데 있으니,

이러면 가히 일을 이룰 수 있다.

백성이 안전하고, 나라가 안녕한 것은,

오로지 군주에게 달렸다.

군주가 무위(無為)하면,

백성이 안락하다.

군주가 욕심이 많으면,

백성이 고통스럽다.

정을 억제하고 욕심을 덜어내려면,

자기를 극복하고, 자기 연마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


당(唐) 정관(貞觀) 년간, 어느 날,

당태종은 당시의 재상인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가 업무가 번다함을 발견했다.

시간이 없어 인재를 구할 여유가 없었다.

문득 그들을 비평하며 이리 말했다.


‘공들은 대신인 바라, 

마땅히 널리 현명한 인재를 구하여,

재주에 따라 임무를 맡기는 것이,

재상의 직무임이라.

헌데, 소송을 처리하느라 하루도 쉴 틈이 없으니,

어찌 짐을 도와 현량을 구할 수 있으랴?’


이에 조서를 내렸다.


‘금후부터는 자질구레한 일은 좌우 승상에게 주어 처리토록 하고,

다만 중대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방현령과 두여회가 처리토록 하라.‘


수문제(隋文帝)는 정사에 부지런하였다.

매일 조회에 임하고, 저녁때까지 지칠줄을 몰랐다.

자는 것을 폐하고,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일을 하였다.

예부상서 양상희(楊尚希)가 수문제에게 아뢰다.


‘주문왕(周文王)은 일을 많이 하셔서 명을 축내셨습니다.

무왕은 (일을 많이 하지 않아) 안락하니 오래 사셨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선 대강만 거론하시고 재상들에게 책무를 넘기십시오,

번쇄한 일은 군주와 친하 것이 아니옵니다.’


유욱(柳彧) 역시 간하길 세세한 일은 친히 처리하지 마시라 하였다.

허나 수문제는 시종 자그마한 일도 처리하는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제명제(齊明帝) 역시 친히 세무(細務)를 챙겼다.

종영(鐘嶸)은 상소를 올렸다.


‘고래로 명군은 인재를 관리하고, 정치를 펼 뿐, 

다만 신하가 직임을 맡을 만한지 계량만 하고,

삼공은 도를 논하고,

구경은 일을 성공하도록 힘씁니다.

천자는 다만 엄숙히 남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명제는 그 의견을 듣지 않았다.

외려 종영이 쓸데없이 참견을 한다고 꾸짖었다.


수문제와 제명제는 제왕의 존귀함에 거하면서도,

다만 작은 일을 쥐고 큰 일을 놓아버렸도다.

정치적 업적이 당연히 좋을 리 없다.

수나라는 다만 이(二) 대에 그치고 망하였고,

제명제 사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나라 역시 망하였다.


관자(管子)는 이리 설하고 있다.


上之人明其道,下之人守其職,上下之分不同任,而複合為一體。


윗 사람은 그 도(道)를 밝히고,

아랫 사람은 그 직(職)을 지킨다.

상하가 같지 않은 소임을 나눠 가짐으로써,

합하여 일체를 이룬다.


이는 명백히 勞于求賢,逸于任使의 도리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회남자(淮南子)에도 이런 말이 있다.


君臣異道則治,同道則亂。


군신의 길이 다른즉 다스려지고,

같은즉 난이 일어난다.


상서(尚書)에도 이리 노래하고 있다.


元首叢脞哉!股肱惰哉!萬事墮哉!


원수가 자질구레 번잡한 일에 빠지고,

신하가 나태하니,

만사가 타락하다.


이상은 고대의 경험과 교훈이지만,

현대 사회의 지도자에게 아직도 끌어 쓸 수 있는 귀감이 될 것이다.


(※ 이상은 중국經濟網의 자료에 의지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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