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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용인술

소요유 : 2015.10.29 19:28


휘황찬란했던 중국고대문명엔 풍부한 육인(育人)과 용인(用人)의 지혜가 온축(蘊蓄)되어 있다.

즉 인재를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골라 쓰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골똘히 생각하고,

해(解)를 찾아내려 애썼다.

전국시대 저명한 사상가 중에 한비(韓非)(기원 전 約280~233)는

법가(法家)의 사상을 집대성한 이다.

군웅이 할거하고 패권을 다투던 시대에 한비는 독특한 시각으로,

사람을 선발하고, 인재를 쓰는 법(用人)을  제시했다.

특히 인재를 등용(等用)하는 방법을 찬술했다.

이는 유가나 묵가와는 두드러지게 다른 태도를 가진다.



한비 용인술의 첫 번째 특징적인 점은 덕재겸비(德才兼備)이다.

즉 유가처럼 덕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덕과 아울러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관직을 제수(除授)할 때 직임에 적합한 자를 고른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는 일반 인재를 선발할 때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관인을 뽑을 때 유가(儒家)는 문벌을 중하게 여기고, 등급을 중시한다.

반면 한비는 유가의 문벌 제일주의와 등급 제도를 타파할 것을 주장하였다.


因任而授官, 程能而授事


직임에 따라 관직을 주고,

능력을 따져 일을 맡겼다.


한비는 관직을 주거나 일을 맡길 때는 응당 개인의 재능을 보고,

또한 현명하고 덕이 그에 상당한가를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賢能之士

즉 현명하고 능력이 있는 인사를 말한다.


그가 이에 대해 말한 부분을 살펴보자.

안에서 추천하였다 하여 친척이라 피하지 않고,

밖에서 추천하였다 하여 원수를 피하지 않았으니 ...

미천하다하여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능력이 가히 법을 밝히고, 

나라에 편의를 주고, 백성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대로 따라 발탁하여,

몸이 안전하고, 이름이 높임을 받았던 것이다.


聖王明君則不然,內舉不避親,外舉不避讎。是在焉從而舉之,非在焉從而罰之。是以賢良遂進而姦邪并退,故一舉而能服諸侯。其在記曰:『堯有丹朱,而舜有商均,啟有五觀,商有太甲,武王有管、蔡』,五王之所誅者,皆父兄子弟之親也,而所殺亡其身殘破其家者何也?以其害國傷民敗法類也。觀其所舉,或在山林藪澤巖穴之間,或在囹圄褋(衣改糸)紲纏索之中,或在割烹芻牧飯牛之事。然明主不羞其卑賤也,以其能、為可以明法,便國利民,從而舉之,身安名尊

(韓非子 - 説疑)


덕과 재능을 형량(衡量) 즉 양자를 따져볼 때,

유가는 통상 덕을 재능 앞에 둔다.

그러나 한비는 개인의 실무 재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능력을 현명함의 앞에 두었다 할 것이다.


그가 말한 부분을 직접 살펴보면 이러하다.

사람을 쓰는데 있어 술법이 없으면, 

비록 지혜가 있다고 맡기더라도 군주를 속이고,

고결하다고 여겨 맡기면 일이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이는 술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우환이다.


任人以事,存亡治亂之機也。無術以任人,無所任而不敗。人君之所任,非辯智則修潔也。任人者,使有勢也;智士者未必信也;為多其智,因惑其信也;以智士之計,處乘勢之資而為其私急,則君必欺焉。為智者之不可信也,故任修士;者,使斷事也,修士者未必智;為潔其身,因惑其智;以愚人之所惛,處治事之官而為其所然,則事必亂矣。故無術以用人,任智則君欺,任修則君事亂,此無術之患也。明君之道,賤德義貴,下必坐上,決誠以參,聽無門戶,故智者不得詐欺。計功而行賞,程能而授事,察端而觀失,有過者罪,有能者得,故愚者不任事。智者不敢欺,愚者不得斷,則事無失矣。

(韓非子 - 八說)


한비는 이리 생각하였던 같다.

즉 만약 재능과 지혜가 있다고 여겨 사람을 발탁하는 것은,

그자가 자기의 재능을 사적 이익을 꾀하려 쓰는 경우,

멀지 않아 군주가 속임을 당하기 쉽고,

만약 덕성을 보고 발탁하면,

만에 하나 기지가 없고, 멍청할 경우,

정사가 혼란해져 감당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다.


그런즉, 관원을  선발할 때는 덕과 재능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지혜가 많고, 덕성을 잘 닦은 인사라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발하려 할 때,

한비는 개인 문벌의 청탁을 배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뒷구멍으로 청탁을 한다든가,

연줄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다.

이런 것은 유가와는 같지 않은 태도이다.


한비는 말한다.


‘밝은 군주는 공적에 미루어 작록을 주고, 

능력을 재서 일을 맡기므로,

발탁된 자는 반드시 현명하고,

쓰이는 자는 반드시 능력이 있다.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가 (벼슬길에) 나아간다면,

사적 청탁이 멈출 것이다.‘


明主者,推功而爵祿,稱能而官事,所舉者必有賢,所用者必有能,賢能之士進,則私門之請止矣。

(韓非子 - 人主)


당연한 것이 이런 방법은 한비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유가, 묵가(墨家)도 법가에 어느 정도 미친다.

가령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관중(管仲)에게서도 유사한 것이 있다.


묵자(墨子)는 이리 설했다.


‘비록 농사꾼이나 공인, 장사꾼일지라도, 유능하면 발탁하였으니,

높여 작위를 주고, 중히 녹을 주어,

그에 따라 일을 맡겼으며, 권세를 단호히 내렸다.

...

이에 당시엔,

덕에 따라 서열을 짓고, 관급에 따라 일을 지우고,

힘씀에 따라 상을 펴고,

공을 재서 녹을 나눠주었다.

그런즉 관직에 있다하여 항상 귀한 것이 아니고,

서민이라 하여 무조건 비천하지 않았다.

유능하면 올려 추서하고,

무능하면 아래로 내려,

공의를 세워,

사적 원한을 피하였다.’


故古者聖王之為政,列德而尚賢,雖在農與工肆之人,有能則舉之,高予之爵,重予之祿,任之以事,斷予之令,曰:「爵位不高則民弗敬,蓄祿不厚則民不信,政令不斷則民不畏」,舉三者授之賢者,非為賢賜也,欲其事之成。故當是時,以德就列,以官服事,以勞殿賞,量功而分祿。故官無常貴,而民無終賤,有能則舉之,無能則下之,舉公義,辟私怨,此若言之謂也。

(墨子-尚賢上)


그러나 한비는 다른 이들과 같지 않은 것이 있으니,

덕과 재능의 어떤 것이 앞서고, 뒤 서느냐 하는 점이다.

한비는 도덕 그 자체는 무형적인 것으로,

인물의 평가는 다중의 입으로부터 온다고 본다.

그러므로 다중의 훼예(毀譽, 비방과 칭찬)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신뢰를 두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는 대권을 가진 통치자 입장에선 수중에 장악된 유용한 인재는 

덕보다는 재능을 특별히 중시하여 평가하여야 함을 환기하였다.

공이 큰 자는 높은 작위에 올라, 중히 상을 받는다. 


功大者,有尊爵受重賞。

(韓非子 - 八姦)


한비의 용인술(用人術)의 두 번째 특징은,

법으로 사람을 택하는 것 하고,

공을 헤아려 관직을 주는 것이다.


군웅이 패권을 다투는 전국시대에,

크든 작든 제후로서 인재를 간절히 구할지라도,

재능에 대한 명확한 표준이 없었다.

그런고로 항상 사소한 세객의 허언이나 허황된 말에 의지하여,

높은 작위를 내리고 후한 녹을 주었다.

한비는 이런 용인(用人) 방법을 명확히 반대하였다.


즉 용인상의 문제에서 (남의) 칭찬을 이유로 능(能)하다고 나아가게 하고,

당파를 짓고 관직에 추천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법에 의지해서 사람을 가려 택하는 것이 요긴하다 하였다.

즉 공을 헤아려 관직을 제수하여야 한다.


그의 주장을 살펴본다.


이제 만일 칭찬을 이유로 능(能)하다 여겨 나아가게 하면,

신하는 위로부터 이탈하여 아래로 패거리를 지을 것이다.

만약 파당을 이유로 관직을 추천한다면,

백성은 교제에만 힘쓰고,

법에 의한 등용은 구하지 않을 것이다.

.....

고로 현명한 군주는 법으로써 사람을 가려 택하도록 하고,

자기 임의로 천거하지 않는다.

법으로 공을 헤아리고, 

자기 임의로 재지 않는다.


今若以譽進能,則臣離上而下比周;若以黨舉官,則民務交而不求用於法。故官之失能者其國亂。以譽為賞,以毀為罰也,則好賞惡罰之人,釋公行、行私術、比周以相為也。忘主外交,以進其與,則其下所以為上者薄矣。交眾與多,外內朋黨,雖有大過,其蔽多矣。故忠臣危死於非罪,姦邪之臣安利於無功。忠臣危死而不以其罪,則良臣伏矣;姦邪之臣安利不以功,則姦臣進矣;此亡之本也。若是、則群臣廢法而行私重,輕公法矣。數至能人之門,不壹至主之廷;百慮私家之便,不壹圖主之國。屬數雖多,非所以尊君也;百官雖具,非所以任國也。然則主有人主之名,而實託於群臣之家也。故臣曰:亡國之廷無人焉。廷無人者,非朝廷之衰也。家務相益,不務厚國;大臣務相尊,而不務尊君;小臣奉祿養交,不以官為事。此其所以然者,由主之不上斷於法,而信下為之也。故明主使法擇人,不自舉也;使法量功,不自度也。能者不可弊,敗者不可飾,譽者不能進,非者弗能退,則君臣之間明辨而易治,故主讎法則可也。

(韓非子 - 有度)


당연히 훼예(毀譽) 따위엔 귀를 기우리지 않는다.

또한 언로를 막지도 않는다.

신하가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피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용인(用人)함에 있어 신하의 유일한 근거가 되지는 않을 뿐이다.

사람을 추천하는 것은 괜찮다.

다만 추천이후 관직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제적인 재능과 공이 있을 때라야 정해진다.

다시 말하자면, 신하가 진언한 후, 

임명 여부를 논의하고, 맡긴 일을 시험하고, 공을 평가한다.

한비는 무조건 온전히 사람을 신뢰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백락(伯樂, 고대의 이름 난 말 감정가)이 말을 추천하였다 한들,

말을 실제 타고 거닐며 시험을 거친다.

그런즉 백락이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열등한 말인데 능력 이상으로 부풀려 감히 말할 수 없다.


한비는 또한 이리 생각하고 있다.

군주 좌우의 측근은 특수한 지위에 놓여 있다.

관원 임명은 왕왕 추천의 경중에 따른 영향이 있다.

소위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뇌물로 벼슬을 팔 수 있다.

만약 군주가 좌우 측근의 말을 듣고 믿는다면,

신하들의 자리 다툼질에 사심 없이 임하게 하기 어렵다.

또한 저들은 영전 기회를 구하려 뇌물을 주고받으며, 

백성의 재산을 착취하는 데만 정신이 팔릴 것이다.

이게 소위 매관, 매직의 부패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일종의 관습이 생기면, 끝내는 나라를 망치는 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한비는 신하들이 인재를 추천하는 것을 반대하진 않았으나,

다만 동시에 강조하는 바,

즉 군주의 좌우 측근을 특별히 관찰하여,

추천의 내용을 신중히 심사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편애하여 듣고, 편파적으로 기울어 무조건 믿지는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以法擇人,量功授官


법에 따라 사람을 택하고,

공을 따져 관직을 주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한비의 용인(用人) 사상의 특징을 이룬다.

단, 공에 상을 주고, 허물에 벌을 주는 것은 묵가(墨家)와 뜻이 같다.

묵자의 상현 상편(墨子尚賢上)엔 이리 주장 되는 말씀이 있다.


以勞殿賞,量功而分祿。故官無常貴,而民無終賤,有能則舉之,無能則下之,舉公義,辟私怨


힘씀에 따라 상을 펴고,

공을 재서 녹을 나눠주었다.

그런즉 관직에 있다하여 항상 귀한 것이 아니고,

서민이라 하여 무조건 비천하지 않았다.

유능하면 올려 추서하고,

무능하면 아래로 내려,

공의를 세워,

사적 원한을 피하였다.


그렇다면 양자에 차이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양자의 차별은 표현상의 문제일 뿐인가?


양자 사이엔 분명히 다른 차이가 있다.


인사를 추천할 때는 능력 위주로 하여야 한다.

이것은 묵자의 주장이다.

다만 묵자의 저 명제는 좀 뚜렷하지 않다.

세밀한 부분에 결함이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검증할 것인가?

소위 그가 말한 현능지사(賢能之士)를 평가하고 검증을 어찌 하겠단 말인가?

또한 평가하고 검증할 때 조작 가능성은 없겠는가?

묵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비의 경우 이런 문제에 대하여는 아주 상세하니 다루고 있다.

한비는 관리를 쓸 때(用人),

응당 국가를 위해 공을 세우거나 업적을 남긴 크기를 평가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법률로서 그 준거를 세우고, 공과를 논하고 상벌을 주었다.

이를 위한 기초로서 구체적 고과법이 있었다.

소위 순명책실(循名責實)이 그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명실상부(名實相符)라 하겠다.


군주가 사람을 부릴지라도 필히 법으로써 기준을 삼아야 하고,

형명(刑名)으로써 확인하여야 한다.

(※ 刑名參之 : 실적과 말의 일치 여부를 비교하여 따짐.)

일이 법에 맞으면 행하도록 하고,

법에 맞지 않으면 중지하도록 한다.

공적이 그 말에 합치하면 상을 주고,

어긋나면 벌을 준다.


人主雖使人必以度量準之,以刑名參之,以事;遇於法則行,不遇於法則止;功當其言則賞,不當則誅 (韓非子 - 難二)


한비 용인술의 세 번째 특징은 專職專任, 定位管理이다.

즉 직임 전임제라 하겠다.

한비는 매 관원들은 자기의 직분이 있고, 직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一人不兼官, 一官不兼事이어야 한다.

즉 일인은 직임을 하나 이상 겸하지 못하고, 관원은 일을 하나 이상 겸하지 못한다.


이리 따르면 정치적으로, 

신하들이 권력을 서로 빼앗거나, 공을 다투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서로 알력을 일으키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저들 신하들이 제 본직에 충실하고,

서로 제 일을 미루지도 않게 된다.

일의 측면에서 볼 때, 일개인의 정력은 유한하다.

관의 일은 상당히 많다. 

섣불리 일을 꾸미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으킨다.

지금 이미 관직을 겸하지 않고, 일도 겸하지 않는다.

관원으로 하여금 정력을 집중하여, 자기 일을 연찬(硏鑽)하게 할 수 있다.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고, 업적의 효과를 잘 드러내고, 제고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따라서 관료조직은 최대한의 효율을 발휘하게 된다.


한비는 말한다.


신하된 자 모두가 그 능력에 마땅한 자리에 있어,

그 관직을 잘 감당하고, 그 임무를 어렵지 않게 가벼이 담당하여, 

남는 여력이 생겨도 심적으로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겸직을 한다면 군주에 대한 책임이 부담스러울 터인데 이럴 일이 없다.

고로 안으로 원한으로 인한 난이 일어나지 않고,

외로는 마복(馬服) 같은 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馬服 : 진(秦)나라에 패한 조(趙)나라 장수 조괄(趙括)의 봉지(封地)가 마복이다.

조괄에 대하여는 나의 앞 선 글을 참고하라. ☞ 2011/02/13 - [소요유] - 소 뱃바닥의 두 글자 )

현명한 군주는 일을 서로 충돌하지 않게 시키므로 신하들은 서로 책하는 일이 없고, 

관직을 겸직 못하게 하므로, 기예가 잘 길러지고,

사람들이 같은 공을 노리도록 시키지 않으므로,

다툼이 없다.


人臣皆宜其能,勝其官,輕其任,而莫懷餘力於心,莫負兼官之責於君。故內無伏怨之亂,外無馬服之患。明君使事不相干,故莫訟;使士不兼官,故技長,使人不同功,故莫爭

(韓非子 - 用人)


관리들이 각기 제 위치를 지키므로, 각기 제 책무만 부담한다.

이런 관리 체계 하에선 막쟁(莫爭) 즉 다툼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막쟁의 조화로운 국면 하에선 정치가 잘 다스려지는 이상 세계가 만들어진다.

한비의 이런 관리 사상은 실천 현실에서 증명된,

일종의 효율적인 치국용인(治國用人)술이라 하겠다.

만약 한 가지 직임에 관리가 여럿이 있는 조직이라면, 

조직에 암종을 자라게 할 뿐만 아니라,

관료주의 작풍이 흘러,

동일 관료 계층 사이에 관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일을 처리하는 효율이 더욱 떨어지고,

피상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또한 명리가 따르는 일인 경우 대가들이 다투어 대든다.

이익이 없는 일인 경우엔 일이 처리가 되지 않고, 위험이 생긴다.

서로 일을 미루고, 누구라도 일을 건드리길 원치 않는다.


그런즉, 한비는 이리 제창하고 있음이다.


一職一官


한 직임엔 관리 하나.


이와 반대는,


一人兼官내지는 一官兼事가 되겠다.


즉 하나의 관리가 관직을 겸직하고,

하나의 관리가 여러 일을 겸하는 경우라 하겠다.


이런 용인(用人) 사상은 오늘 날에도 현실적 의의가 크다 하겠다.


한비의 네 번째 특징적 주장은 습절이진(襲節而進)이다.

즉 차례로 승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襲은 축차적(逐次的)이란 뜻이다.

한비의 주장은 단련을 받은 자 중에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를 선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자나 맹자의 사상과는 다르다.


官襲節而進,以至大任,智也。

(韓非子 - 八經)


관리가 차례를 밟아 승진하고,

큰 임무를 맡는데 이르르면 지혜가 있다.


故明主之吏,宰相必起於州部,猛將必發於卒伍。

(韓非子 - 顯學)


그러므로 밝은 군주의 관리란,

재상은 반드시 주부(州部)로부터 올라오고,

맹장은 반드시 졸병으로부터 커진다.


한비의 이런 용인(用人) 사상은 기실 당시의 귀족 세습 제도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동시에 제후 간 쟁패(爭霸) 그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군웅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는 시대적 특질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기층으로부터 관리를 선발하는 것을 중시하고,

통치자에게 관리를 승진시킬 때,

습절이진(襲節而進)을 강구할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귀족 출신이 아닌 중하층 계급 중에서 지혜 있는 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자신의 재주와 솜씨를 새 무대에서 펼치게 하는 것이다.


(이상은 중국 서남대학교 자료를 참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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