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될 놈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소요유 : 2016.04.06 14:10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좋은 게 좋다.’


‘될 놈을 찍어라.(투표 시)’


이런 귀접스런 말을,

제 정신 가지고 어찌 태연히 뱉어낼 수 있는가?


“둥글게 살자.”

“좋은 게 좋다”


이리 뻔한 인정의 말로 그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작자를 더러운 똥 보듯 해야 한다.

정작 저런 치들은 제게 해가 되면 칼 물고 숭어뜀을 뛸 놈인 것이다.


저 따위 비열한 화법엔,

오로지 결과만 있지 동기, 과정은 거세되어 있다.

생략된 과정, 은폐된 프로세스는 더러운 저놈들에 의해 절취당하고,

남은 것은 타자의 희생, 자연의 유린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후에 자기에게 기회가 왔을 때,

저 문법을 동원하여 사리(私利)를 꾀하리라 이리 내심 작정하고 있는,

그대 역시 저들과 한 패, 협잡 모리꾼인 것이다.

그대는 역시나 아주 더럽고, 비겁하고, 치사한 영혼들과 한 통속인 게다.


우리들의 문제.


매사 적당히 덮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바로 짚어 추상같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바른 이치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리에 어긋나면 잘못을 자인하며 물러서고, 

부절부합되면 서로 부추기고 격려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늘상 힘 가진 놈, 말빨 센 놈, 먼저 자리 잡은 놈이 다 해먹고 만다.


“둥글게 살자.”

“좋은 게 좋다”


이런 허황된 말은 정작은

천하에 제일 모난 말이자, 나쁜 말인 게다.

우리 다 숨겨두고 함께 공범이 되자는 말이다.

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더러운 수작질인가?


저런 말을 부끄러움도 없이 거침없이 뱉는 놈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그대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그대를 배반하고 도망갈 놈이 저놈인 것임이라.


명심하라!


지금 저놈과 함께 시시닥거리며 술추렴을 하고 있다 한들,

이는 잠시 그 때 그뿐일 뿐,

언젠가 비상한 때에 이르러 그대는 크게 당하고 말리.


소인배는 애저녁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소인배는 도도처처에 흩뿌려져 있다.

한강 백사장 모래알처럼 많고도 많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마치 망망대해 바다 위에 떠다니는 나무를,

눈먼 거북이 고개를 내밀 때 마침 만나는 것처럼 어렵다고 했다.

(如海盲龜遇浮木 人身難得甚希有)


사람다운 사람,

진정한 사람 역시 그 만남이 맹귀우목(盲龜遇木)처럼 어렵다.

소인배들이 들끓는 세상,

진인(眞人), 활불(活佛), 군자(君子)를 어찌 알아볼 수 있으랴?

하지만 눈먼 거북이도 언젠가는 나무를 얻지 않던가?

바르고 곧게 걷다보면 언젠가는 전단향(栴檀香) 그윽하니 퍼지는 그곳에 이르리.

이 때 비로소 명월(明月) 이 공산(空山)에 걸려있음을 보게 되리.


예전에 나는 다른 곳에서 ‘좋은 게 좋다’가 왜 가당치 않은 말인가를,

이야기 한 적이 또 있다.

(※ 참고 글 : ☞ 2008/12/21 - [소요유] - 책임의 공적 분산 그리고 도착된 자위)


‘될 놈을 찍어라.’


요즘 이런 말들이 야권에서 나온다.

이들은 매양 선거철만 되면 이 따위 돼먹지 않은 말을 해댄다.

특히 큰 당,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상습적으로 써먹는 수법이다.


王侯將相寧有種乎!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음인가!"


세상의 이치란 ‘될 놈’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설혹 현실적으로 그 놈이 될 가능성이 사뭇 크다하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하다한들,

나는 ‘현실적’이란 저 나태하고 무책임한 말에 저항한다.


저 기득권자의 자원 독점적 화법.

난, 이 세력을 부정한다.


저들 말이 만약 엉터리가 아니고 진리라면,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내놓는 새 싹 정당, 대안 세력은,

저들의 폭력적 언사에 의해 언제나 스러져 버려야 한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것을 부정하는 것만치,

폭력적인 것이 또 있겠음인가?


가령 녹색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기본소득’ 이란 

정치, 경제 분야의 두 가지 선명한 정책을 내걸었다.

이 두 가지 목표만 제대로 일궈내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한결 건강해질 것이다.

이게, 이 가치가, 이 소망이, 이 비전이,

왜 ‘큰 놈’, ‘될 놈’ 때문에 무작정 내쳐져야 하는가?


반면 큰 놈 더불어당은 ‘무제한 토론’을 한다면 이목을 끌었지만,

끝내 자진하여 판을 접고, 저들에게 복속하였다.

이것 쇼와 무엇이 다른가?

질 것을 예정하고 하는 운동이란,

얼마나 위선적이고 기망적인가?


게다가 비례대표 공천 잡음으로 분란을 일으키고,

당 대표라는 이는 전비(前非) 때문에,

호남지역으로 가지도 못하고 울 안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참고로 나는 본디 고향이 서울이다.)

이제 와서 가니 마니 설왕설래가 무성하다.

그 동안은 무엇을 하였기에,

죽그릇 앞에서 콧물이 빠졌다고 이를 염려하고 있는가?


그 뿐인가?

공식적으로는 FTA 반대라 하나,

전번 집권시엔 저들이 한미FTA를 추진한 주체 세력이었다.

거기다 FTA 주역인 김 통상교섭본부장을 영입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정강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다만 큰 놈이라는 덩치 말고는, 제 색깔을 알아 볼 수 없다.


작디작은 녹색당은 절박한 시대적 요청 가치를 선명하게 내걸고,

작은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 큰놈 당은 우왕좌왕 갈지자 횡보를 하고서도,

다만 선거철만 되면 한번만 더 용서를 해달라 하며 표를 구걸한다. 

그러면서 작은 정당을 오로지 작다는 이유로 능멸하며,

고은 뜻을 뭉개고, 절박한 가치를 내동댕이치며,

오로지 표만 탐욕스럽게 구한다.


나는 표창원, 은수미 같은 열정과 소신을 가진 이를 사랑한다.

하지만 가치와 비전이 없이 다만 큰 놈 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찍어야 할 ‘될 놈’이라 외치는 이 귀접스런 작태를 염오한다.


각자는 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택하여야 한다.

여하한 이유이든 차선을 택하는 순간,

음지에서 스러져 갈 운명을 당신은 책임져야 한다.

그 작은 존재, 그것은 곧 자신이기도 하다.

선동질에 넘어가고,

유혹에 지면,

자신까지 잃는 일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작은 화분이라 하여 물을 주지 않으면,

이윽고 말라 죽고 만다.

그대가 큰 놈을 쫓아갈 때,

한 작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 좋더냐?”


신파극에서 이수일은 심순애에게 이리 묻는다.

순정을 짓밟고,

돈에 팔려간다면,

이 얼마나 제 영혼에 모멸적이냐?  

부끄럽다.


그대가 애초 품은 뜻과 가치를 사랑하라.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그대의 순정은 금강석보다 더 여물고, 아름다운 것이거늘,

어찌 ‘될 놈’이라며 지금, 여기의 자신을 버리고,

저리로 쫓아가고 있음인가?


작더라도,

거기 우리의 소망을 싣고,

오늘의 가치를 지키고 키우며,

미래를 전망하면,

언젠가 꽃이 피고, 가지가 우거지리니.


크다, 작다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 아름다우냐?

가치 실천 지향적이냐?

그리고 그것이 내 양심과 정의 관념에 부합하느냐?

이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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