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일규(一揆)

소요유 : 2016.04.09 18:32


일규(一揆)


이 말은 일본말에서 유래한다.

본디 일치단결, 협력이란 뜻을 가지는데,

어의(語義)가 후에 백성, 토착인을 뜻하는 말로 전화되며,

어떤 목표로 결집된 단체란 뜻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통치 세력에 반항하는 백성들의 무장 세력 내지는

그들에 의한 기의(起義) 즉 변란을 뜻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일향일규(一向一揆) 그리고 다시,

법화종(法華宗)의 법화일규(法華一揆)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모두 불교 신도들에 의해 일어났는데,

이게 거죽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띤 저항으로 출발한 듯하나,

차차 정치적 성격의 운동으로 변질 되고 만다.

언제나 그러하듯 정치적 실질에 종교적 이념은 동원내지는 이용되곤 한다.


(출처 : http://en-nichi.seesaa.net/article/156716454.html)


進者往生極楽

退者無間地獄


"진격하는 자는 극락에 왕생하고,

후퇴하는 자는 무간지옥에 빠진다."


군기(軍旗)에 적혀 있는 당시의 슬로건을 보면, 묘한 상념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지하철에서 만나는, 종교 세일즈맨의 외침,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정토진종의 종주(宗主)인 신란(親鸞)이 종지를 이리 펴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종단의 안위와, 종주의 은혜를 지키려면,

성전에 나아가 목숨을 바쳐 싸워야 되고,

이게 곧 극락왕생을 보장한다는 종교적 신조는 집단적으로 강화된다.

한편, 전쟁터에서 비겁하게 도망을 친다면,

무간지옥에 빠진다는 가르침도 겁난다.

기실은 먼저 조직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종단 수뇌부의 정치적 동기에 의해 촉발된 전쟁이지만,

신도들에겐 종교적 신념을 시험하는 기회로 강제된다.

전쟁이란 자기 생존내지는 권익 방어란 수세적 명분으로 출발할지라도,

종국엔 이를 넘어 타자를 꺾고, 적극적으로 이권을 탈취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황건적(黃巾族)의 난(亂)은 동한(東漢) 말기에 일어난다.


동한은 중기이후 체제 내적 모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소위 신척전권(宦戚專權) 즉 신하와 외척(外戚, (母族,妻族))들이

제왕의 권위에 도전하며 국권을 흔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관리들의 부패, 가렴주구, 지주 계급의 횡포가 자심하였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유리걸식하는 이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더욱 사회 생산 기반은 허물어졌다.


가령 평소에 세금 따위로 백성들의 산출 10 중 7을 거둬갔다 하자.

이제 가뭄이 든다든가, 생산 기반이 허물어져 산출이 9, 8로 줄었는데도,

지주, 권세가들이 여전히 7을 거둬간다.

이에 농민들은 더는 삶을 부지하기 어렵게 된다.


당시 장각(張角) 형제는 태평도(太平道)를 창도하고 백성들을 규합하였다.

이게 40만에 이르렀다 하는데, 그가 만든 물(符水)을 먹으면,

약을 먹지도 않고도 병이 치료 되는 그런 이적을 일으켰다 한다.

이는 마치 무안단물과 비슷하다.

(※ https://librewiki.net/wiki/무안단물)

종교인들은 물로써 그들의 권능을 발휘한다.

아, 물의 쓰임이여.

그저 탄복만 할 뿐.


하여간 장각은 세를 불리며 인심을 장악해나갔다.

급기야 이들은 한(漢)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에, 이름하여 황건(黃巾)이라 칭하게 되었다.

이렇듯 한말(漢末)에는 도처에 민란(民亂), 민변(民變)이 일어났다.


나라에선 이들을 진압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황제는 지방 장관(州牧) 들에게 군권(軍權)을 주어,

이들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후에 이들은 병권(兵權)을 반납하지 않고 사병화 하여 각기 제 곳에서 할거하였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이 당시의 상황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동탁(董卓), 조조(曹操), 유비(劉備), 손견(孫堅), ...

등의 지방 장관, 벼슬아치들은 황건적, 농민군 등의 반란군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세를 불리고, 도리어 황권을 위협하였다.


관리와 지주, 세력가의 가렴주구로 민초들은 먹고 살 수 없게 되자,

태평도에 입도(入道)하거나, 농민군을 조직하여,

관청을 습격하고, 창고를 헐어 굶주린 배를 채웠다.

영웅이라 칭하여 지는 동탁, 조조, 유비 등은 이들을 진압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조직하고, 땅을 나눠 차지(割據) 하였다.


그러니까 민초들은 황건적이 되거나,

저들 영웅들 밑으로 들어가야 먹고 살 수 있었단 이야기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따지고 보면,

황권의 권위를 빌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죽이거나 동원하여,

제 입지를 넓혀간 이들이라 하겠다.


이 구조를 가만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은 도저히 더는 먹고 살기 힘들어질 때 난이 일어난다.

황권의 권위가 흔들리고, 세조(稅租)는 더 이상 거둘 재간이 없어진다.

이 때일수록 민초들은 더욱 쥐어짜내지게 되고, 벼랑에 몰려 버틸 형편이 아니 된다.

급기야 들고 일어나 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영웅이라 부르는 이들은,

기실 황권의 대행자로서 민초들을 상대로 황실의 일을 대행한다.


황제 입장에선 사치할 돈을 거둬내야 하는데,

저들이 들로, 산으로 흩어져 도망을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게다가 관청 창고를 깨뜨리고는 재물을 훔쳐간다.


길을 가다보면 전봇대에 붙여진 전단을 보게 된다.


‘떼인 돈 받아줌. 후불’


그러니까, 저 허울 좋은 영웅들이란,

바로 채권 추심 대행업자와 같은 것이다.

이들이 어찌 좋은 말로써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겠는가?

십 중 아홉은 험한 말을 쏟아내고, 주먹을 휘두르며,

상대를 궁박하여 밀린 돈을 빼앗듯 가져 갈 것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이란,

소설적 묘사만으로는 자신들끼리 지략을 겨루고, 힘을 다투는 양 보인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팔이 칼에 베이고, 목이 창에 찔리우는 역할은,

피아를 불문하고 모두 다 민초들인 것이다.


오늘날 현실 정치에 등장하는 여야 불문 정치세력들이란,

당시의 영웅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인다.

저들의 정치적 프로퍼갠더(propaganda), 욕망 따위를 볼작시면,

한 치도 다름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언제나 백성내지는 국민의 이름으로 가치를 선양하고, 비전을 말한다.

하지만 후일엔 그것이 종국엔 저들의 이익을 위해 동원된 수사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다시 4년, 5년 선거철이 되돌아오면,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구한다.

이 도식은 2,000 ~ 2,500 년 동안 하나도 바뀌지 않고 있다.

(※ 국민의 이름을 주제로 별도의 글을 하나 짓기로 한다.

참고 글 : ☞ 2016/04/11 - [소요유] - in a name)


그러니깐 백성들은 관리의 표적이 되고,

교주의 수하(手下)가 되며,

영웅의 창칼이 되어,

저들의 이용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함인데,

백성들은 자진하여 황제의 신민(臣民)이 되고,

교단의 신도가 되며,

영웅의 병졸(兵卒)이 되어서는,

한 술 밥을 떠먹기 위해,

제 자존심과 목숨을 바친다.

기꺼이.


小民發如韭,剪複生;頭如雞,割複鳴。吏不必可畏,從來必可輕。奈何望欲平。

(政論)


“백성은 부추와 같아 잘라도 또 자라며,

닭과 같아 모가지를 베어도 다시 운다.

관리란 두려워 할 것까지 없다.

종래엔 반드시 별 볼일 없어진다.

어찌 고루 편안해지길 바라랴?”


이것은 한대(漢代)에 전해지던 유명한 민요 한 구절이다.

이를 두고 평자들은,

민중들의 관리를 향한 강인한 항쟁 의지를 표출한 것이라 평한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와는 다르다.

그래, 부추처럼 당하고 당하여도 백성들은 삶을 이어간다 치자.

하지만, 이게 항쟁 의지를 다지며 내일을 기약하기 때문은 아니다.


사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으로 국고는 축이 났지만,

아직도 납득할 만한 책임자가 가려지지 않고 있다.

이거 현 정권에 들어와 몇 번 수사합네 하였지만,

시늉만 하고는 현재 용두사미로 그 꼬리조차 찾을 바 없다.

재벌 소유 법인들은 사내 유보금을 산처럼 쌓아가고 있다.

이는 부자 감세 정책의 당연한 효과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엊그제 강봉균이란 여권 인사는 부가가치세 인상론을 꺼내들었다.


이는 마치 황제와 귀족들은 돈을 마구 펑펑 써대고,

가뭄이 드나, 홍수가 지나,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들로부터는 세금을 더 긁어내겠다는 횡포와 무엇이 다른가?


담뱃값을 올려 서민들에겐 부담을 주고,

거기다 부가세를 올려 서민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부자 증세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이 없다. 


한대(漢代)엔 백성들이 가렴주구에 시달리면, 굶어죽고 만다.

그러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인지라,

민란이라도 일으킨다.

하지만 오늘날엔 어쨌거나 먹고는 산다.

부자 감세를 아무리 하여도,

담뱃값을 올려도,

불평불만을 할지언정 민란은 일으키지 못하고들 산다.

굶어죽지는 않고 살아는 가니까.

다만, 기껏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하며 투정이나 할 뿐이다.

그러함이니, 여기다 대고 부가세 올린다한들 뭐 폭동이라도 일어날까?

아무런 걱정할 것 없는 것이다.


發如韭,剪複生


부추 같이 잘라도 또 자라고 또 자란다는 것은,

백성들의 강인한 저항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나는 그저 미련한 모습에 불과하다고 본다.


잘라도 또 자라는 것이 어찌 저항의 의지를 나타낸 것인가?

잘림을 당하면 호미를 들고, 삽을 들고 대들어야 하지 않겠음인가?

이러해야 진정 저항 의지를 가졌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혹여 저항한다 하여도 영웅의 밑닦이나 되어,

전쟁터에 나가 대신 피나 흘리지 않았던가?

고대 영웅이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위임 대표 정치인쯤 된다.

이들에게 그리 당하고도 선거철만 되면,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고동(鼓動)을 치며 박수 치기 바쁘다.

마치 發如韭, 頭如雞와 같이,

다시 맹목적 생의 의지, 헛된 소망을 품고, 저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만다.

어찌 우매한 노릇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나라 곳간이 비고, 재정 적자가 쌓여 가는데,

부자 감세는 여전하고, 어겨다 부가세 인상론을 띄우고 있다.

나는 바로 이 장면에서,

한말(漢末)의 나라 사정이 오버랩 된다. 

당시 황제는 영제(靈帝)였다.

그에 대한 정보 사항을 여기 전재(轉載)해둔다.


漢靈帝即位後,東漢政治已經病入膏肓,天下水災、旱災、蝗災、瘟疫等災禍頻繁,四處怨聲載道,百姓民不聊生,國勢進一步衰落。再加上宦官與外戚爭權奪利,最後宦官推翻外戚竇氏並軟禁竇太後,奪得了大權,又殺死正義的太學生李膺、範謗等100餘人,流放、關押800多人,多慘死於獄中,造成第二次黨錮之禍。而昏庸荒淫的靈帝除了沉湎酒色以外,還一味寵幸宦官,尊張讓等人爲“十常侍”,並說“張常侍乃我父、趙常侍乃我母”,宦官杖著皇帝的寵幸,胡作非爲,對百姓勒索錢財,大肆搜刮民脂民膏,可謂腐敗到極點。靈帝對宦官的寵信與依賴就是後來叛變的導火索。


在朝政腐敗和天災的雙重壓迫之下,叛亂有了廣大的市場,巨鹿(今河北平鄉縣)人張角煽動百姓,聚眾造反。張角兄弟三人以“蒼天已死、黃天當立、歲在甲子、天下大吉”爲口號舉事,史稱“黃巾之亂”,這次暴亂所向披靡,給病入膏肓的東漢王朝以沉重打擊。雖然被平定,但是破壞極大。從此東漢名存實亡。


漢靈帝荒淫昏庸,曾于西園起裸游館千間,選十四歲以上十八歲以下的宮女于池中裸游,又曾于西園弄狗與人獸交

(※ https://zh.wikipedia.org/wiki/%E6%B1%89%E7%81%B5%E5%B8%9D)


이것 번역은 생략한다.

여기 보면, 십상시(十常侍), 혼용(昏庸)이란 말이 등장하는데,

이 말들은 근자에 언론에서 한국 정치를 두고 인용한 말들이다.

우리 언론인들이 혹 영제를 공부하였는지 몰라도,

묘하게도 엇비스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감상이 있다.


다만 한 가지만 꺼내본다.

부가세 인상론을 펴는 장면과 바로 이 장면을 대비해보라.


對百姓勒索錢財,大肆搜刮民脂民膏


“백성을 상대로 재물을 강탈하고, 

제멋대로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다.”


수탈 기술적으로는 지금 것이 좀 덜 강압적으로 보이나,

내용상으로는 서민들 재물 탈취해가겠다는 것과 한치도 다름이 없다.

부자 증세에 대하여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서 말이다.

도대체 돈 있는 이에게서 세금을 걷지 않고,

돈 없는 서민에게서 세금을 걷겠다 한다면,

이를 두고 어찌 바른 정치라 할 수 있겠음인가?

이는 자신이 부자이건, 가난한 이이건 간에,

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의(公義)에 관련된 문제이다.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논리적인 이해를 왜 하지 못하고 있는가?


이 땅에 사는 일부 궁민들의 어처구니 없는 우매함 또는 이기심이라니.


'소요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쇄정보신문  (2) 2016.04.18
연막 소독  (3) 2016.04.16
in a name  (0) 2016.04.11
일규(一揆)  (0) 2016.04.09
될 놈의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0) 2016.04.06
사문호정금지잡인(四門護淨禁止雜人)  (0) 2016.04.04
대언장어(大言莊語)  (0) 2016.04.01
Bongta LicenseBongta Stock License bottomtop
이 저작물은 봉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3.0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행위에 제한을 받습니다.
TAG ,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