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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辟除)

소요유 : 2016.04.19 17:05


내가 오늘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데,

길 변에 경찰이 쫙 깔렸다.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런데 저들이 교통을 통제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침 내가 네거리를 막 지나고 있는데,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이 가로지르는 차도 쪽에서 내려오고 있다.

순간 경찰 하나가 길을 가로지르며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곁에 있는 처가 말한다.


‘오늘 419라 누가 지나는가 보다.’


우리 집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국립4·19민주묘지가 있다.

고위 관리가 기념식 참석 차 지날 수 있다.


‘벽제구나.’


‘벽제가 무엇이오?’


‘벽제(辟除)란 예전 관리나 왕이 행차할 때,

잡인을 물리는 일로,

왜 사극을 보면 ‘물렀거라’ 이리 구종배(驅從輩)들이 이르지 않소?‘


辟除其邪,除其邪,則亂氣不生。

(黃帝內經 素問)


“그 사기(邪氣)를 배제하고, 그 사기를 제거함으로써,

어지로운 기운을 생기지 않게 한다.”


이것은 기백(歧伯)과 황제(黃帝)의 대화중에 나오는 말이로되,

춘하추동 기운의 인체 내 흐름과 머무름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장면 중 하나이다.


내 잠시 이를 빌려 말하고자 하노라.


벽제시 저들이 잡인(雜人)이라 이르는 이들은,

모두 나랏 사람들이거니와,

이들을 모두 사인(邪人)으로 몰아 떨구고서야,

나랏일을 어찌 제대로 할 수 있겠음인가?


내 어렸을 적에는 툭하면 백차(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신작로를 쓸며 내달렸다.

그러면서 뭇 차량을 통제하며, 관리들을 태운 고급 차를 인도하였다.

이것 지금 생각해보면,

나랏 사람들을 하시(下視)하길, 마치 땅바닥을 기는 벌레 보듯 대하였지 않았는가 싶다.


오늘 날 벽제는 거의 사라졌다.

내가 오늘 겪은 일로 다시 부활되었다 할 수는 없다.

뒷골목 비교적 한적한 곳을 택해 나아갔고,

경호가 필요한 사정도 있으리니 일응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賢者辟世,其次辟地,其次辟色,其次辟言。

(論語)


“현자는 혼탁한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어지로운 나라를 피하고,

그 다음은 무도한 태도를 보고 피하고,

그 다음은 악독한(바르지 않은, 마땅치 않은) 말을 듣고 피한다.”


한문이라는 것이 그리 명확한 문법 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며,

뜻 갈래도 사뭇 많아 대하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이 구절도 사람마다 뜻 새김이 여럿으로 갈린다.


가령 其次도 다음 하 순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각 상황에 따른 병렬 구조로 파악하는 이도 있다.

형식 구조 상 世,地,色,言 이게 큰 차서(次序)로 배열되어 있지만,

내용으로 보자면 굳이 서열을 매길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辟色, 辟言도 새김이 다르다.


辟色을 두고, 

주자는 예모(禮貌)가 쇠해져서 떠나는 것으로 보았지만,

정약용은 안색을 보고 피한다 하였다. 

辟言을 두고는,

주자는 왕과 어긋나는 말이 있을 때 피한다고 하였지만,

정약용은 말을 듣고는 난이 일 것을 알고 떠난다고 보았다.


나는 대체로 정약용의 새김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문의 대귀 구조 형식상,

世,地,色,言이 모두 피(辟)의 목적격인즉,

피하되, 세상, 땅(나라), 낯색(태도), 말을 그 대상으로 한다고 보아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주자는 色,言의 경우 世,地와 다르게 주격 판단으로 풀어내었는데,

이리 되면, 대귀 구조 형식의 일관성을 벗어나버리고 만다.


辟世,辟地,辟色,辟言는 현자의 모습이다.

여기 등장하는 世,地,色,言은,

모두 엉터리, 마땅치 않은 상태로 전락된 것을 지시한다.

한 마디로 삿(邪)된 것이다.


반면, 왕이나 고관대작들의 벽제(辟除)는 백성을 대상으로 한다.

백성이 어찌 삿된 것인가?

결코 저들이 감히 피할 대상일 수 없다.


게다가 오늘 날, 국민들은 저들을 선출하여 국정을 일시 위임할 뿐이다.

하니까 국민은 국정의 실질 주체이지, 객체가 아니다.

그러함이니 자연 벽제는 사라지고 없다.

일부 독재 국가에서나 남아 있을 뿐이다.


백성 → 국민 → 시민


이 말의 전화(轉化)도 살필 일이다.


백성은 百姓이니 곧 여러 다수의 성씨받이란 뜻이니,

이는 전제 군주가 다스리는 수동적 객체에 불과하다.

오늘 날 이 말을 쓰는 이가 가끔 있는데,

이는 올바른 일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국민(國民)이란 말이 등장하나,

이는 국가(國家)에 대한 말로서,

국가 안에 구속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 정도의 어의(語義)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개인의 주체적 인격을 진지하게 고려한 말이 아니다.


시민은 글자대로 보면,

국민(國民) 대신 시민(市民)으로 지역적 크기가 작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대 아테네 시민은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였다.

이제 이 말은 정치 주체자이자, 인권 가치를 실현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외연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시민은 국가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외려 책임 있는 국가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이를 초월하여 참다운 인권 가치를 구현하려는 개인 인격 단위이자,

연대 정치적 내지는 사회적, 철학적, 실천적 인격을 뜻한다 하겠다.


따라서 오늘날 벽제는 관리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시민들이 관리들을 향하여 행하는 권리 양식이 되어야 한다.

즉 시민의 뜻을 거스르고, 국정을 농단하는 자는,

그 삿됨을 제거하고, 난을 생기지 않도록, 소환하여야 한다.


辟除其邪,除其邪,則亂氣不生。


기백의 이 말은 신체에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사회, 세상을 위해서도 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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