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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소요유 : 2016. 4. 22. 15:30


오늘 차를 타고 가며 FM 방송을 들었다.

거기 황지우의 시가 소개되고 있다.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 도

영하 이십 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 도 영상 십삼 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여기 보면,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라 읊고 있다.

그런데, 기실 동양에서 이와는 좀 다르게 본다.


사람은 정위(正位), 정립(正立)하여 살아간다.

머리는 위로 하늘을 이고, 발은 아래로 땅을 밟고 산다.

동물은 머리도 옆, 꼬리도 옆으로 누운 형상으로 살아간다.

이를 횡립(橫立)이라 한다.

식물은 거꾸로 머리를 땅에 박고, 

손발은 하늘을 향해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되어 연신 흔들며 살아간다.

하여 이를 도립지물(倒立之物)이라 한다.


사람의 머리를 기준으로 보자며 신기지물(神機之物)인 바라,

정신 작용을 육신보다 앞세운다면 이리 정립지물이라 보게 된다.

반면 동식물은 기립지물(氣立之物)인 게라, 

이리 물질로 보기에 땅 친화적인 모습으로 그리게 된다.


이러한 것은 기실 따지고 보면,

모두 사람의 인식 기준에 따른 결과에 불과하다.

정립(正立), 도립(倒立)은 그 기준을 거꾸로 바꾸면,

정립이 도립이 되고, 도립이 정립이 된다.


시의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이것도 시인의 기준으로 그리 본 것일 뿐,

식물에게 사실 확인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어떠하단 말인가?

그가 그리 보았다고 하는데 더 일러 따질 일이 어디에 있는가?

다만 그것이 절대 가치라 고집을 피지 않는다면 시비를 걸 일 없다.


내가 동양적 사고방식을 소개하는 것은,

시인의 인식 틀만이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시인이 열이면 그들의 인식 틀은 열이 될 것이요.

백이면 또한 백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혹은 열이 백일 수 있고,

백이 천일 수도 있으리라.


이 따위는 지엽말단이다.

이제 그만 지껄이고 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나는 이 두 구절에 깊이 감동한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 장면은 업상(業相)을 그려내고 있다 하겠다.


아닌 것을 알지만,

한계 상황 조건에 구속된 존재는,

휘몰아치는 물결에 무력하게 휩쓸려 떠내려간다.


‘버티고, 거부하면서’


resistance


사실 제 존재는 레지스탕스 말고는,

이 거대한 존재론적 질곡(桎梏)에 대항할 수단은 더 찾기 어렵다.


사람의 수명은 80세든 120세든 혹 12,000세든,

여하 간에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헌데, 도교(道敎)에선 연단술(鍊丹術)을 통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단약을 만들고,

도인술(導引術)로 양생(養生)을 꾀한다.

이거 자연을 거역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다름 아니다.


resistance


뭇 세상의 사상이나 종교는 모두 자연에 순응할 것을 가르친다.

하지만, 도교만큼은 적극적 의지로 자연에 대항한다.

우리가 흔히 알 듯이 도가(道家)가 무위자연을 노래하고,

무작정 인위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깊게 탐구함으로써,

자연이 강요하는 존재 조건을 벗어나려 하였다.

그게 때론 천지 순리를 따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극복하려 하였음이다.

신선(神仙)이 된다는 것은,

종국적으로는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여 절대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導引圖 摹本 - ⓒ台南市華佗五禽之戲協會 http://www.5qin.org/book/book1.html
1972년 長沙 馬王堆 漢墓에서 발견된 도인도이다.

나중 기회가 되면 이를 소개하겠다.)


resistance


이것 하게 되면,


dissipation이 필연 따르게 된다.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결국 댓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국소적인 것이든, 전체적인 것이든,

개별적이든, 우주적이든 간에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열역학에선 제2의 법칙(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으로,

정립하여 말하고 있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을 나눠지게 된다.

이게 존재의 구속 조건이다.


시인은 이리 말하고 있다.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이것 불교식으로 말하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과 맥이 닿아 있다.

시인이 무슨 생각으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해석이 그렇단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시인은 저리 나무를 말하고 있는데,

과수원 농부는 나무를 전지한다는 구실로 마구 잘라낸다.

어깨까지 으쓱 거리며,

전지는 이리 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거의 헐벗도록 가지를 마구 쳐내면,

주위에선 전지 참 시원하게 잘한다고 박수를 친다.

과수원 사람은 겨우내 나무 가지 자르느라 온 시간을 다 보낸다.

나무가 그것을 원할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무는 절대 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밤새도록 울부짖을 것이다. 


저리 가지를 싹둑 자르면,

과일을 크게 달리게 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된다고 떠벌린다.

그런데 더하여 저리하여야 나무가 건강하게 자란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전지란 내 눈엔,

단미(斷尾), 단이(斷耳), 단각(斷角), 단치(斷齒), 절훼(切喙,부리 자르기),

절조(切爪,발톱자르기), 코뚫기(鼻穿孔), 화두낙인(火斗烙印), ....

축산 농가에서 자행되는 이 짓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늘날 과수원이란 곳을 가서 한 번 구경을 해보라.

배나무 가지는 있는 대로 좌우로 쫙 찢어 발겨 사지를 철사 줄에 묶어 놓았다.

사과나무도 무거운 추를 매달아 가지를 아래로 유인해둔다.

감나무는 문둥병 걸린 환자처럼 뭉텅뭉텅 잘라져 나가,

잔가지가 거의 남아 있질 않는다.


오늘날 축산 농가라 이르는 데를 한 번 가보아라.

날갯짓 하지도 못하는 좁은 케이지(cage)에 닭을 가둬놓거나,

무창계사란 곳엔 초밀식으로 처넣어놓고 기른다.

소, 돼지 역시 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이리 하면, 알, 살코기를 많이 낼 수 있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초현대식 축산 경영 방식이라 떠벌린다.

뒷 전에선,

비료, 사료, 항생제, 농약을 마구 투입한다.


만약,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이 말 앞에 서서,

조그마할지라도 감동을 느낀다면,

행여라도 '현대식' 축산, 농산업에 새로 투신하여서는 아니 된다.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이 말씀을 두고,

감수성이 작동하고 있다면,

그리고 혹여 축산, 농산업에 투신하려 한다면,

그대의 초심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는다 믿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초심은 다 흩어지고,

적극적으로 악에 가담하게 되곤 한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이기 때문에 대로행이 아니다.

대로행이기 때문에 군자이다.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이 말씀을 다시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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