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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도인비살인(殺盜人非殺人)

소요유 : 2016. 8. 23. 21:48


내가 방금 뉴스 하나를 막 읽었다.


'진박' 새누리당 정종섭 의원이 22일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 “청와대 수석은 대통령의 팔과 같다”며 “우 수석의 사퇴는 한 개인이 떠나는 문제가 아니라 몸통(대통령)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35149)


이 글을 읽자하니 이내 한 생각이 인다.


斷指以存腕,利之中取大,害之中取小也。害之中取小也,非取害也,取利也。其所取者,人之所執也。遇盜人,而斷指以免身,利也;其遇盜人害也。斷指與斷腕,利於天下相若,無擇也;死生利若,一無擇也。殺一人以存天下,非殺一人以利天下也。殺己以存天下,是殺己以利天下。於事為之中而權輕重之謂求,求為之,非也,害之中取小,求為義非為義也。

(墨子 大取)


“손목을 보존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이익 중에서 큰 것을 취하고, 손해 중에서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이다.


손해 중에서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은 손해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그가 취한 것은 인간의 소집(所執-인간의 자연스런 집착, 성질 같은 것.)이다.


도적을 만나 손가락을 잘리어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면하였다면, 그것은 이익이다.

하지만, 도적을 만난 것은 손해다.


손가락을 잘리고, 손목을 잘리는 것이 천하에 이익됨이 같다면, 선택할 여지가 없다.

생사 문제가 천하에 이익됨이 같다면,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천하를 보존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천하를 보존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은,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일을 함에 있어 권병(權柄)으로 경중을 가리는 것을 일러 ‘구(求)’라 한다.

다만 구(求)에 집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손해 중에서 작은 것을 취하는 것은, 

마땅함(의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지,

결코 진정으로 마땅함을 행하고자 함이 아니다.”


여기 殺一人以存天下에서 一人은 도적을 말한다.

殺盜人非殺人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묵가의 이 추론은 겸애설(兼愛說)을 옹호하기 위한 그들의 이론틀 중 하나이다.

그러니까 도적은 兼愛, 利人의 대상이 아니다.

의로움을 추구한다 하여,

의로움이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한들, 의로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진박 정종섭이라는 분은 도적과 사람을 구분하고 있는 것일까?


夫辯者,將以明是非之分,審治亂之紀,明同異之處,察名實之理,處利害,決嫌疑。焉摹略萬物之然,論求群言之比。以名舉實,以辭抒意,以說出故,以類取,以類予。有諸己不非諸人,無諸己不求諸人。

(墨子 小取)


“무릇 변이란 시비의 분별을 명확히 함으로써, 다스려짐과 난의 사리를 심판하는 것이다.

같고 다름의 처지를 명확히 하여, 명실의 이치를 살핀다.

이익과 손해를 분별함으로써 의혹을 해결한다.

그리함으로서, 만사, 만물의 양태를 탐구, 분석하여, 

여러 사람들의 의론을 비교한다.

명(名)으로써 사물의 실질을 거론하고,

글로써 의미를 표달(表達)하고,

말로써 원인을 드러낸다.

이리 취하고, 주며(보태고, 빼며) 추론한다.

이러한 변이 자신에게 있다하여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없다하여 남에게 구하지 않는다.”


묵가에 있어 중요한 개념인 辯이란, 

治亂, 同異, 名實, 利害,嫌疑를 분별하고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사물의 이치와 진리를 밝히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 사회가 어지러운 것은,

위정자들이 변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기보다,

도적과 사람을 구별하여야 할 때, 이를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白馬,馬也。乘白馬,乘馬也。

車,木也。乘車,非乘木也。


이 두 문장을 비교해 보자.


“백마는 말이다. 백마를 타는 것은 말을 타는 것과 같다.

수레는 나무로 만든다.

수레를 탄다는 것은 나무를 탄다는 것이 아니다.“


殺盜非殺人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겸애란 모든 사람을 아우르며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즉 도적이라 하여 죽일 수 없다.

과연 그런가?

수레를 탄다 하여 비록 그것이 나무로 만들어졌다한들 나무에 타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듯 도적이 사람 탈을 썼다한들, 도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夫物或乃是而然,或是而不然,或一周而一不周,或一是而一非也。
(墨子 小取) 

(※ 周는 원작엔 害로 되어 있다.)


“대저, 사물이란 혹 이것이어서 그러하고, 혹 이것이어서 아니 그러하다.

혹 한번은 두루하지만 한번은 아니 두루한다.

혹 한번은 이렇지만, 한번은 이렇지 아니하다.”


그러니까 도적을 죽일 수 있음은,

‘是而不然’에 당한다.


그러한즉,

백마가 말일 때도 있고, - 是而然

수레를 타는 것이 나무를 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 是而不然


이게 사물의 이치이다.


대통령의 팔이기 때문에 자를 수 없다는 것은,

과연, 是而然의 문제인가?

아니면, 是而不然의 영역에 속하는가?


만약 잘라야 되는데 자르지 않는다면,

혹 그 때문에 몸통 다칠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인가?


***

아울러 다음 글을 소개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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