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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폐(兩廢)

소요유 : 2016. 11. 28. 12:36


양폐(兩廢)


지금 나라가 어지럽다.


비선 실세가 누구이며, 실세가 아무개 3인방이니 하며 떠도는 말이 가관인데,

더하여, 실인즉 정과 최가 더 윗길이란 말도 나돈다.

처음엔 하도 많아, 등장하는 녀석들 이름 따라가기도 벅찼었는데,

요즘엔 절로 외워질 정도로 자주 접한다.


하지만, 자고나면 새로운 비위 사실이 밝혀져,

얽히고설킨 그 난맥상의 계도(系圖)를 마음으로 그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헌데 가만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피며, 

이게 왜 그리 되었는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ㄷ


소인양폐(小人兩廢)임이라,

소인은 매(每) 양쪽을 폐한다.

이들 소인들이 나라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사유화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자면,

실로 롤러코스트(roller-coaster)를 타는 것처럼 여러 부침(浮沈)을 겪게 된다.

이 때 소인은 매(每) 양쪽을 폐하며 살아가지만,

군자는 역으로 군자양진(君子兩進)이라, 즉 매(每) 닥치는 양쪽마다 당당히 나아간다.


君子小人之反也:君子大心則敬天而道,小心則畏義而節;知則明通而類,愚則端愨而法;見由則恭而止,見閉則敬而齊;喜則和而理,憂則靜而理;通則文而明,窮則約而詳。小人則不然:大心則慢而暴,小心則流淫而傾;知則攫盜而漸,愚則毒賊而亂;見由則兌而倨,見閉則怨而險;喜則輕而翾,憂則挫而懾;通則驕而偏,窮則棄而儑。傳曰:「君子兩進,小人兩廢。」此之謂也。

(荀子)


“군자는 소인의 반대이다.


군자의 큰 마음은 하늘을 공경하여 도에 이르고,

군자의 작은 마음은 의를 두려워하여 절제를 안다.


깨우치면, 밝게 통하여 동류를 이끌고,

어리석으면 거짓 없이 정성을 다하여 법을 지킨다. 

 

등용되면 공손하여 그침을 알고,

물러나면 공경하여, 가지런히 삼가 닦는다.


기쁘면 화락하여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근심스러우면 고요히 이치를 따른다.


통한즉 문채가 밝게 빛나고,

궁한즉 검소하게 골고루 마음을 쓴다.


소인은 그와 같지 않다.


크게 마음을 키우면, 교만해지고 사나와지며,

작게 마음을 쓰면, 음란해지고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알게 되면, 도둑처럼 점점 움켜쥐기 바빠지며,

어리석게 되면 도둑처럼 악독하여져 난을 일으킨다.


등용되면 기뻐 날뛰며 거만해지고,

물러나면 원망하며, 위험해진다.


기쁘면, 가벼워 날아갈 듯해지고,

근심스러우면, 기가 꺾여 두려워한다.


통하면, 교만하여 편파적이고,

궁하면 포기하고 잔피(孱疲, 가냘프고 약하여 골골하다)해진다.


전(傳)에 이르길,

군자는 양진(兩進)하고, 소인은 양폐(兩廢)한다 하였음인데,

이는 이를 두고 이름이다.”


군자는 어떤 상황에 처하여도 하늘의 이치를 따르고 정정당당하게 임한다.

하지만 소인은 자신한테 유리한 상황이 다가오면,

길길이 날뛰며 사익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하지만 불리해지면, 의기소침해지면, 남을 원망하며 이제까지의 동지를 팔아재끼며,

두려워 전전긍긍하기 바빠진다.


요즘 친박, 비박을 가리지 않고,

정치인들 하는 행태를 이에 비추어보면 어느 누가 소인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이 참에 이들 소인들을 바로 가려, 정치권에서 영원히 몰아내야 한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박 대통령 만난 걸 후회한다"

(출처 :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38852)


이런 기사를 방금 접했다.

정말 역겨운 내용이다.


세가 불리해지면,

이제까지 칭송하며 받들던 이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동지도 배반하며 어제의 자신까지도 아낌없이 버리고 만다.


정치인이 나랏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제 일신의 안위만 염려하고 있으니,

이러하고서 어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으랴?


심히 위태울진저.

이런 사람이 일국의 정치 대표가 된다면,

나라가 얼마나 편안치 못할텐가?


鳥鳴巢端,一呼三顛。搖動東西,危嵬不安。

(焦氏易林)


"새가 둥지 끝에서 울자,

한 소리에 세번 곤두질 치며 떨린다.

동서로 요동을 치니,

불안키가 절벽 위에 선 듯하고뇨."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가 제 부하에 의해 죽어나갔을 때,

박가 자손들은 이런 세상의 이치를 바로 깨우쳤어야 했다.

어리석은 국민들에 의해 그의 딸이 다시 대권을 잡았으나,

이이가 용렬하기 그지없는 위인인 바라,

君子兩進小人兩廢의 이치를 몰랐음이라.


종국엔 박가 가문은 대를 이어 양폐(兩廢)가 되고 마는구나.


박근혜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이에 따라 요즘 서강대도 덩달아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다.

검색을 해보니 당시 별 볼일 없는 대학이었다는 식으로 매도되고 있다.

내가 당시의 실정을 잘 알고 있으니 잠깐 바른 소리를 해본다.


박근혜가 서강대에 입학하자, (1970년)

마포 변방의 서강대는 일약 입시계의 다크호스로 부상(浮上)한다.

요즘은 시골 유치원에도 스쿨버스가 있으나,

당시엔 대학교에도 스쿨버스가 귀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 때 서강대에 스쿨버스 2 대인가 3대가 박가 측으로부터 기증된다.

이게 화제가 될 정도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대학교가 스쿨버스 가진 것이 자랑이 되었던 말이다.


당시 기술입국을 모토로 할 정도로 기술을 귀히 여기던 시절이다.

이에 따라 대학교 입시에선 공대(工大)의 커트라인이 제일 높았다.

오늘 날엔 법대, 의대가 제일 센 편이지만, 

당시엔 수재들은 다 공대를 지원하였다.

아무리 급이 떨어지는 대학이라도 공대는 다른 과에 비하여 수준이 높았다.


당시, 기계공학을 제일 알아주었지만,

전자공학은 다음 시대를 선도할 분야라 하여 이에 못지않게 집중 조명을 받던 시절이다.

요즘엔 다 우스운 일이나,

당시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함께 쌍벽을 이뤘다.

(※ 참고로 당시는 학과 당 입학 정원이 40명에 불과하였다.)

연고대는 당시에도 명문이었으나 전자공학과는 그리 강한 편이 아니었다.


기실 전국의 전자공학과만을 두고 말한다면 서울대, 서강대 외엔,

다 비교할 만한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당시 서강대 전자공학과의 커트라인과 차상 학과와의 커트라인은,

백 점 이상 차이가 났을 정도였다.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이 외의 학과는,

서강대라 하여도 그저 연고대 정도나 그 차하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하겠다.


하지만, 당시로선 드물게 교수진들에 외국인들이 많이 포진하였고,

강의도 영어로 진행하던 교과목이 적지 않았다.

요즘 대학마다 강의를 영어로 하여야 한다고 난리를 치지만,

이게 옳고 그르고는 불문하고 당시 이런 실질 교수 자원을 가장 많이 가진 대학은,

서강대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이 대학 영어 과목의 교수진은 전부 외국인이 담당하였었다.

이것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서강대는 국내 대학 중에서 컴퓨터를 최초로 도입하였었다.

1969년도에 SS80을 미국 미네소타 대학으로부터 기증받았다.

대학 부설 전자계산소도 세워졌는데 이 역시 국내 최초이다.

이에 따라 학사 행정도 모두 전산으로 행해졌다. 

당시로선 연대, 서울대가 몇 해 시차를 두고 뒤따라 컴퓨터를 도입하던 시절이니,

당시 서강대는 이 분야에선 제일 앞섰다 하겠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모두 정권의 도움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박근혜는 서강대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이의 성적증명서는 인터넷에 나돈다.

이것 나도 보았는데 성적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실제 서강대는 당시 서강고등학교라 불려질 정도로,

공부가 세고, 성적 관리가 엄격하였다.

요즘처럼 시험 성적을 상대 처리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고,

절대 사정을 하였기 때문에 학과 당 A등급이 하나나 둘 정도이기 일쑤였으니,

박근혜의 성적표는 실로 놀랍다 하겠다.


요즘 아이들이 스펙 쌓기 경쟁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성적표가 실력 변별력이 떨어져, 도무지 미덥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 성적표를 보면 전부들 수재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하나같이 성적이 좋다.

인터넷에서 본 박근혜 성적표 정도로 뛰어나더란 말이다.

해서 나는 요즘 아이들 성적표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 면접을 하다 보면,

성적표와는 다르게 너무 터무니없을 때가 많아 실소를 금치 못하였던 적이 있다..


과연 당시 박근혜 그이가 실제 공부 실력이 좋았는지,

아니면 정권의 입김이 닿아서 그리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이가 게서 제대로 공부를 하였다면,

오늘날과 같은 고경(苦境)에 쉽게 놓이진 않았지 않았을까 싶다.


好勇疾貧,亂也。人而不仁,疾之已甚,亂也。」

(論語 泰伯)


“용맹을 숭상하고, 빈곤을 싫어하면, 난을 겪는다.

사람이면서, 불인한 것을 심히 싫어하면 화를 당한다.”


나라가 제 것이라 여기듯,

국정을 사유화하여 재보(財寶)를 독식하고, 갖은 사치를 다 누렸음이니, 

어찌 난이 이르지 않을쏜가?

게다가 싫은 사람이라 하여 멀쩡한 이를 쫓아내고,

의로움을 버렸음이니, 이 또한 재앙을 초래하는 일임을 그는 어찌 몰랐는가?


만악(萬惡)의 근원은 친일파 척결(剔抉)의 미결(未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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