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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狐假虎威)

소요유 : 2017. 1. 24. 14:11


호가호위(狐假虎威)


(ⓒ感人網)


... 西門慶、胡四等,皆鷹犬之徒,狐假虎威之輩。

(金瓶梅)


“... 서문경, 호사 등은 모두 매와 개의 도당들이며,

범의 위엄을 빌리는 여우의 무리다.”


여기 응견(鷹犬)이란 사냥매와 사냥개를 가리킨다.

이들은 주인이 따로 있어 이들의 부림을 받아 사냥감을 앞장 서 쫓는다.

그러한즉 앞잡이내지는 주구(走狗)를 일컫는다.


狐假虎威에서 假는 가짜란 의미가 아니라, 빌린다는 뜻이다.

虎威 즉 호랑이의 위엄, 위세를 빌린다는 뜻이다.

여우 주제에 남의 것을 빌어 제 분수 넘은 짓을 한다는 말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제가 원님도 아닌 형편인데도,

이의 이름을 빌어 기세등등(氣勢騰騰) 소리를 지르며, 거드름을 피우곤 한다.

본디 원님보다 그 밑에 있는 아전 나부랭이들이,

백성들에겐 더 가혹할 때가 적지 않은 법이다.

원님이 행차할 때,

앞에서 서서 가마를 인도하며,

잡인을 물리는 일을 벽제(辟除)라 한다.

백성들을 마치 몹쓸 것을 대하듯,

쓸어밀어버리며 길을 터나간다.

이 일 역시 원님의 위세를 빌기에,

아전들의 기세가 기고만장 꼴사납게 펼쳐지곤 한다.

(※ 참고 글 : ☞ 벽제(辟除))


내가 우연히 글 하나를 읽었다.

그 글의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그이는 탄소순환농법을 새로 꾀한다고 함인데,

건설폐콘 작업장에서 굴취한 나무뿌리를 파쇄한 것에 은근히 욕심을 내고 있다.

헌데 여기에 합판이나 폐목 등이 섞여 들어가 있다고 한다.

혹 모르고 탐을 냈으면 모를까,

차마 알고서는 이를 취할 일은 아니다.

여기다 요소비료와 목초액, 미생물을 혼합하여 발효시킬 궁리를 트고 있다.

턱하니 탄소농업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거기 왜 요소비료를 처넣으려 함인가?


순간 나는 호가호위란 단어가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유기농, 탄소농법, 자연농법이니 하는 제법 그럴싸한 이름은 어디선가 주어 들었을 터임이라.

그러함인데 이를 광대 고깔모자 쓰듯 머리에 턱하니 뒤집어쓰고서는,

그 이름에 값하기는커녕, 그 실질 내용을 배반하는 행위를 저지르면서,

감히 호기롭게 큰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속이는 동시에 세상을 속이는 짓이다.


... 陡然間,就狐假虎威,紅鬚倒豎,血髮朝天,眼睛迸裂,大喝一聲道 ...

(西遊記)


“... 갑자기 호가호위하며,

붉은 수염을 거꾸로 치켜세우고,

피 묻은 머리카락을 하늘로 날리면서,

눈알을 찢어재끼며,

큰 소리를 질러 말하다. ...”


바로 요 장면을 방불(髣髴)한다 하겠다.


나 이제부터 탄소농법씩이나 할 참이야.

하면서 큰 소리를 내지르고 있음인 것이다.


마치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에게 요괴(妖怪)가 내뿜는 저 말과 매한가지가 아니더냐 말이다.

하지만 저 요괴가 어찌 구법(求法)의 열정을 가지고 있을 터이며,

바른 지계(持戒)를 갖추고 있다 할 수 있겠음인가?


탄소농법을 하겠다고 나선 이가,

아직 대각(大覺)을 이루진 못하였다할지언정,

초발심(初發心)한 그 뜻을 지켜, 지계(持戒)를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음인가?


요소 비료 넣고, 폐목 섞인 자재를 밭에 들이고서야,

어찌 새로운 법을 바로 세울 수 있겠음인가 말이다.


酒作酒想。

無酒酒想。

(四分戒本如釋)


계에 따르면, 비구(比丘)들은,

술을 먹거나, 생각만 하여도 죄에 빠지는 것은 물론,

술을 먹지 않고, 다만 생각만 하여도 죄를 짓는다 하였음이다.


탄소농법을 하겠다는 이로서,

출발도 미처 하기 전에 폐목이나 요소비료를 가까이하고자 함이니,

皆墮罪。

盡惡作。

모두 죄에 떨어지고, 

다하도록 악을 짓고자 함인가?


만약 그가 자신이나 제 가족만을 위한다면,

(내 인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강변할 수도 있겠지만,

만인을 상대로 농부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 서면,

결코 떳떳하게 서 있기 힘들 것이다.


농부가 제 집 바깥을 적으로 돌린다면,

이내 모리(牟利)를 탐하는 상인(商人)과 다를 바 없음이다.


자연재배, 유기농, 탄소농법을 행한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관행농을 지으며 제 재주껏, 소신껏 살아갈 일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않는 고깔모자 쓰고, 짐짓 고상한 척, 폼 잡을 일이 아니란 말이다.


여기 한 생각이 떠오르는 즉,

그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보면서 그치고자 한다.


晉文公將與楚人戰,召舅犯問之,曰:「吾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舅犯曰:「臣聞之,繁禮君子,不厭忠信;戰陣之閒,不厭詐偽。君其詐之而已矣。」文公辭舅犯,因召雍季而問之,曰:「我將與楚人戰,彼眾我寡,為之奈何?」雍季對曰:「焚林而田,偷取多獸,後必無獸;以詐遇民,偷取一時,後必無復。」文公曰:「善。」辭雍季,以舅犯之謀與楚人戰以敗之。歸而行爵,先雍季而後舅犯。群臣曰:「城濮之事,舅犯謀也,夫用其言而後其身可乎?」文公曰:「此非君所知也。夫舅犯言,一時之權也;雍季言,萬世之利也。」仲尼聞之,曰:「文公之霸也宜哉!既知一時之權,又知萬世之利。」


或曰:雍季之對,不當文公之問。凡對問者,有因問小大緩急而對也,所問高大而對以卑狹,則明主弗受也。今文公問以少遇眾,而對曰「後必無復」,此非所以應也。且文公不知一時之權,又不知萬世之利。戰而勝,則國安而身定,兵強而威立,雖有後復,莫大於此,萬世之利,奚患不至?戰而不勝,則國亡兵弱,身死名息,拔拂今日之死不及,安暇待萬世之利?待萬世之利在今日之勝,今日之勝在詐於敵,詐敵,萬世之利而已。故曰:雍季之對不當文公之問。且文公又不知舅犯之言,舅犯所謂不厭詐偽者,不謂詐其民,請詐其敵也。敵者,所伐之國也,後雖無復,何傷哉?文公之所以先雍季者,以其功耶?則所以勝楚破軍者,舅犯之謀也;以其善言耶?則雍季乃道其後之無復也,此未有善言也。舅犯則以兼之矣。舅犯曰「繁禮君子,不厭忠信」者,忠、所以愛其下也,信、所以不欺其民也。夫既以愛而不欺矣,言孰善於此?然必曰出於詐偽者,軍旅之計也。舅犯前有善言,後有戰勝,故舅犯有二功而後論,雍季無一焉而先賞。「文公之霸,不亦宜乎,」仲尼不知善賞也。

(韓非子 難一)


“진문공이 장차 초와 전쟁을 하려 하였다.

구범을 불러 묻기를,


‘내가 장차 초와 전쟁을 벌이고 싶다. 저 쪽은 많고 내 쪽은 적다. 어찌 하면 좋은가?’


이리 하였다.

구범이 말하다.


‘신이 듣기로는 번잡하게 예를 지키는 군자는 충신(忠信)을 싫어하지 않으나,

전쟁터에서는 속이는 짓도 꺼리지 않는다 합니다.

군주께서는 속임수를 행할 뿐입니다.’


문공은 구범을 물러나게 하고서는 옹계를 불러내어 물었다.


‘내가 장차 초와 전쟁을 벌이고 싶다. 저 쪽은 많고 내 쪽은 적다. 어찌 하면 좋은가?’


옹계가 아뢰다.


‘숲을 태워 사냥을 하면, 많은 짐승을 잡을 수 있으나,

후에 반드시 씨가 마를 것입니다.

속임수로 백성을 대하면 일시엔 이득을 취할 수 있으나,

후에 다시 되풀이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됩니다.’


문공이 말하길 ‘좋다’고 하였다.


옹계를 물리고는 구범의 계책을 써서 초와 전쟁을 벌여 이(초)를 패하게 하였다.

돌아와 상을 주는데, 옹계를 먼저하고, 구범을 뒤로 하였다.

뭇 신하들이 말한다.


‘성복(전쟁터)의 일은 구범의 계략으로써 이겼습니다.

도대체 그 말을 썼으면서도 그를 뒤로 돌릴 수 있는 일입니까?’


문공이 말한다.


‘이는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니다.

대저 구범의 말이란 한 때의 권모술수일 뿐이다.

옹계의 말은 만세의 이득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이를 듣고는 말하다.


‘문공의 패업은 당연하다.

한 때의 권모술수를 이미 알고는 또한 만세의 이득까지 아는구나.’


어떤 이가 말하길,


‘옹계의 대답은 문공의 질문에 맞지 않는다.

무릇 질문에 대한 답이란, 작거나 크고, 더디거나 급한 데에 따라서, 답하는 것이다.

질문한 바가 높거나 큰 것인 데도,

대답을 낮거나 좁은 것을 말하면,

현명한 군주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 문공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을 물었는데도,

‘후에 반드시 되풀이 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제대로 답하는 법이 아니다.


또한 문공은 한 때의 권모술수도 아지 못하며,

또한 만세의 이득도 아지 못한다.

싸워서 이기면 나라가 편안하며, 몸이 안정되며,

병력이 강해지며, 위엄이 선다.

비록 뒤에 다시 되풀이 할 수 있다한들,

이보다 더 크지는 않을 것이다.

만세의 이득이 다시 오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나라는 망하고 병력도 약해지며 몸은 죽고 명성도 그치게 되어,

오늘의 죽음을 떨쳐버리려고 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어찌 어느 여가에 만세의 이득을 기다리겠음인가?

만세의 이득을 기다리는 것은 오늘의 승리에 달려있다.

오늘의 승리는 적을 속이는데 있다.

적을 속이는 일은 만세의 이득을 얻는 일이다.

그런즉 옹계의 대답은 문공의 물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문공은 구범의 말을 역시 알지 못하였다.

구범이 속임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백성을 속이라 이름이 아니라,

그 적을 속이라 청한 것이다.

적이란 무찔러야 할 나라이다.

비록 후에 다시 없다한들,

어찌 마음이 아프겠는가?

문공이 옹계에게 먼저 상을 준 까닭이 그 공 때문이었다면,

초를 이겨 군대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구범의 계략 때문이다.

그 선언(善言) 때문이라면,

옹계는 그 다음이 없다고 말하였었다.

이는 선언(善言)이 아닌 것이다.

구범은 이미 이를 다 갖추었다.


구범이 말하길,

‘번잡하게 예를 지키는 군자는 충신(忠信)을 싫어하지 않는다’ 하였다.

중(忠)이란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며, 

신(信)이란 그 백성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가 이미 사랑하면서 속이지 않으니, 

말 중에 이보다 더 선(善)한 것이 어디에 있겠음인가?

그러함에도 반드시 속임수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 것은,

전쟁의 계략이기 때문임이라.

구범은 먼저 선언(善言)이 있었고, 

후에 전쟁에서 이겼음이다.

고로 구범이 두 가지 공이 있었음에도,

논공행상이 뒤로 돌려지고,

옹계는 공이 하나도 없는데도 상이 먼저 주어졌다.

문공의 패업이 당연하다고 하였으니,

공자는 선상(善賞) 즉 논공행상하는 법을 아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或曰의 화자(話者)는 어떤 비평인이기도 하지만, 한비자 자신이기도 하다.

구범(舅犯)은 충신(忠信)을 모두 아는 군자라 이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탄소농법이란 이름 빌어,

탄소농법을 더럽히고 있는 농부를 되우 나무라고 있음이니,

이는 초나라를 적으로 삼아 벌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 구범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이다.


도대체가 이 나라가 지금 이 꼬락서니로 전락한 것도,

제 가족 챙기고, 비선 실세 가동 시키며,

충신(忠信)을 저버린 소이(所以) 때문이다.

결코 가벼히 대할 일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적국 초나라, 적병 초병(楚兵)인 바라,

마땅히 벌(伐)하여 죄(罪)를 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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