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물차와 지랄

소요유 : 2017. 1. 26. 13:48


(부제:제부도 추억)


내가 한 때 제부도를 자주 놀러갔었다.

당시엔 육지에서 바다를 질러 제부도로 뚝처럼 쌓은 도로가 나있었는데,

이게 평시엔 바닷물에 잠겨있기에 썰물 때라야 도로가 위로 드러나는 즉,

그 때래서야 건너다닐 수 있었다.


하여, 입도(入島)하려면, 때 맞춰 입구에 도착하여서는 바닷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날, 나는 서울에서 달려와 입구에 잇대어 있는 수박밭 근처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마침, 염천지절이라 주차한 차는 이내 바짝 타는 듯 달아올랐다.


그 때 한 젊은 녀석이 차를 세우더니만,

수박밭두렁에 널부러져 있는 비료 부대를 가리키며,

밭일에 여념이 없는 농부에게 크게 외쳤다.


‘할아버지 저것 써도 됩니까?’


말을 미처 끝내지도 않고,

이내 껑충껑충 밭을 넘어서 달려가더니만, 

녀석은 허락도 받지 않고서는,

비료 부대를 집어서는 자기 차 앞 유리를 덮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있던 수박밭 농부는

일손을 멈추고는 녀석을 쳐다보며 한마디 내뱉는다.


‘지랄 염병하고 자빠졌네.’


놀러 온 놈이 제 차만 걱정을 하고 있는 모습과,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는 농부의 모습이,

극명하게 콘트래스트(contrast)를 이루고 있는 극적 현장.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와 하며,

통쾌하다는 듯 탄성을 지르며 환호하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항차,

한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불러 세우는 것만도 조심스런 짓일 터인데,

오로지 제 생각만 하는 못된 녀석을,

단 한 칼로 나무라고 있는 저 욕설이 어찌 그리도 맞춤인지.


작렬하던 하늘의 태양은,

사람들의 통쾌한 웃음 소리에 산 넘어로 급히 물러나며,

시원한 그늘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 펼쳐진다.


어제 뉴스를 보니,

강압 수사한다고 외치는 최순실에게,

청소 아주머니가 ‘염병하네’라고 하였다 한다.


오늘 뉴스엔, 

오래전부터 기획되었다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박근혜를 두고,

박지원은 청소 아주머니를 다시 빌어,

이 분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지랄하네’라고 하였으리라 하였단다.


염병(染病)은 본디 한의학에선 상한병(傷寒病)으로 취급을 하였으나,

청말(淸末)에 이르러서는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아, 장열병(腸熱症)이라 불렀다.

이걸 요즘엔 흔히 장티푸스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장(腸)+티푸스가 결합된 말이다.

한편 일본의 영향을 받아 속칭 장질부사(腸窒扶斯)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장티푸스(腸チフス)에서 유래한 역어(譯語)다.


이리 병명에 장(腸)자가 들어가 있듯, 

이 병은 창자에 균(티푸스균)이 들어가 문제를 일으킨다.

근 40도에 이르는 고열을 수반하며, 복통과 두통을 일으킨다.

우리 어렸을 적엔 이 병으로 죽는 이가 적지 않았다.

당시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겁을 주며,

더러운 음식이나 물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염병에 땀을 못 낼 놈’이란 욕설이 있듯,

이 병은 걸리면 자칫 죽기에 욕치고는 아주 심한 것 중에 하나다.


실제 이 병이 흔하던,

우리 어렸을 적엔 이 욕설도 함께 자주 쓰이던 말이다.

헌데 요즘엔 이 병이 흔치 않으니 덩달아 이 욕도 자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함인데,

이리 역사의 뒤안길로 한참 전에 사라진,

이런 말이 다시 오늘에 소환되어 쓰이고 있으니,

국정 농단의 주역들은 과시 장질부사와 같이 흉한 인물들이 아닌가 싶다.


기실,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이 욕을 뱉어내고 나면 묘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된다.

차마 죽일 수는 없지만,

죽이도록 미운 이에게,

죽어버려라 하고,

욕이라도 마음껏 내뱉고 나면,

응어리진 감정이 조금이라도 해소(解消)되니 말이다.


간질(癎疾)은 전간(癲癇)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우리 어렸을 적엔 주위에서 가끔씩 접하곤 하는 병이다.

병자는 갑자기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는데, 

입에서 거품을 게어내고, 사지가 마비되며, 마구 떨곤 하였다.


이를 두고 지랄을 떤다고 하는데,

멀쩡한 이를 두고 ‘지랄을 떠네’하고 욕을 퍼붓는다면,

그 욕하는 심사가 어찌한 것인가는 이로써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며,

욕을 듣는 이는 또한 어떠한 인물인지 겪지 않았어도 헤아려 볼 수 있다. 


經言癲狂本一病,狂乃陽邪癲是陰,癲疾治發意不樂,甚則驚癡語不倫,狂怒兇狂多不臥,目直罵詈不識親。


“경에 이르길 전(癲)과 광(狂)은 본디 하나의 병이다.

광(狂)은 사기(邪氣)가 양(陽)에, 전(癲)은 음(陰)에 들은 것이다.

전질(癲疾)은 치료하려도 약이 없다.

심하면 언어인식 능력을 잃은 바보가 되어 상도를 벗어난 말을 마구하게 되며,

미쳐 노하며, 흉측해져 자주 눕지도 않고,

목전의 가족도 몰라보며 욕설을 뱉어낸다.”


然俱不似癇疾,發則吐涎神昏,卒倒無知,口噤牙緊,抽搐時之多少不等,而省後起居飲食皆若平人為別也。癲雖分為五,曰雞馬牛羊豬名者,以病狀偶類故也。其實痰火氣驚四者而已,所以為治同乎癲狂也。


“하지만 이는 간질(癇疾)과는 같지 않다.

발병하면 침을 흘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졸도하여 의식을 잃고, 입을 앙다물고, 잇빨을 꽉물게 된다.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데 그 때는 일정치 않다.

깨어나서는 일어나, 음식을 먹는데 정상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행동한다.

전(癲)은 다섯 가지로 분류를 하는데,

즉, 닭, 말, 소, 양, 돼지임이라,

이는 병 증상을 각기 이들과 짝을 맞춘 것이다.”


한의에선 이리 양자를 구별하는데,

기실 엇비슷한 고로 치료법은 같이 취급한다.


이상은 의학서인 의종금감(醫宗金鑑)을 참고하였다.

이 책은 건륭(乾隆) 때 칙명을 받들어 오겸(吳謙)이 지은 것으로,

내가 한의학에 정통한 것은 아니나, 

변통으로 천학(淺學)인대로 번역을 해보았다.


간질은 약이 없이 평생 지고 가야한다고들 하나,

예로부터 중요 질환 중에 하나이였기에,

여러 처방이 존재한다.


정간환(定癎丸), 하차환(河車丸) 따위가 잘 알려져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닭, 말, 소, 양, 돼지의 다섯 분류법에 따라 약제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데 의서에 따라선 닭 대신 개로 달리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책을 읽다, 

문득 눈 들어보니,

부지불식간에 계간(雞癎)의 처방을 유심히 살펴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음이라.


의생(醫生)도 아닌 일개 농부가 이 따위 일로 시간을 내고 있으니,

아, 지랄 같은 세상이로고.


참고로 잘 알려진 정간환은 놔두고, 하차환 처방을 여기 밝혀둔다.


紫河車1具,茯苓1兩,茯神1兩,遠志1兩,人蔘5錢,丹參7錢。

(醫學心悟)


여기 나오는 紫河車가 무엇인가?


이 자하차는 소위 사람 태반을 말한다.

분만 후 막 태반이 나올 때는 홍색이나,

조금 지나면 자색으로 변한다.

그런즉 자하차라 부르게 되었다.


河車

자, ‘물차’라 이제 이게 무슨 뜻인지 지금 쯤, 짐작을 할 수 있겠는가?


청문회에 태반주사가 등장하는데,

서양의학에선 이게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이보다는 미백, 항노화 따위를 목적으로,

여인네들이 탐을 내며, 한참 일탈하곤 한다.


허나, 본디 한의학에선 益氣養血, 補腎益精이라,

기를 돕고 혈을 기르는데 쓰이는 바라,

멀쩡한 이가 상복할 것은 못된다.

외려 자주 쓰면 호르몬 대사에 이상이 오며,

없던 병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물차는 양수(羊水)에 있는 태아에게나 필요한 것임이라.

이미 이를 여의고 뭍에서 살아가는 성인에게 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닿겠음인가?

만약 성인이 이를 탐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지 않고서야 외려 탈이 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시절(時節)을 잃고 비몽사몽하는 이가 있다면,

변통(變通)하여 이를 처방하여 다스릴 수는 있으리라.


이런 상태에 놓여 있는 자를 일러,


‘지랄 떨고 있다.’


이리 말하는 것임이라.

그러함이니 이는 현실을 적시하고 있음이라,

굳이 별도로 욕이라 할 일도 아니리라.


(※ 참고 사항)


본디 하차(河車)는 도교 용어이다.

하차는 납(鉛)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는 연단술(鍊丹術)에선 납, 수은 따위가 중심 질료이므로 그 형상을 취하여,

이리 칭하는 것인 바라 일응 납득할 만도 하다.


한편, 신(腎)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는 북방 수(水)에 배속된 신을 빌어 水府眞一之氣를 가리키는 것이다.


내가 하차를 물차로 부른 것은 다 여기에 맥이 가닿아 있은즉,

그리 허황된 생각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하차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을 해 둔 문서 하나를 남겨둔다.


河車,金丹學術語。


「河車」一名,在漢代的《周易參同契》已經出現,該書有「五金之主,北方河車」的說法。在《黃帝九鼎神丹經訣》、《石藥爾雅》等書裏也常見「河車」一詞。道教早期所謂「河車」乃是一種隱語。其意義是甚麼?向來也有不同的理解,陰長生以為「河車」就是「鉛」的異名,而《還丹肘後訣》則以鉛汞合煉為河車。


隋唐以來,道門主要從內丹學的角度來解讀「河車」的意義。根據《鍾呂傳道集》等書的闡述,「河車」的內丹學意義主要有兩個方面:第一,指兩腎所蘊藏的「水府真一之氣」。因為兩腎一左一右,好像日月周轉,又好像兩個輪子的配合運動,所以有「河車」之名。為甚麼把腎臟稱作「水府」呢?這是因為腎臟在五行屬性方面以「水」為表徵。為甚麼「河車」與北方相聯繫呢?因為從方位學的角度看,五行之水與北方相配合,所以《周易參同契》將「北方」與「河車」連稱。第二,「河車」還指「真一之氣」的運行,這「真一之氣」運轉周流,往來無窮,如車載物,所以叫做「河車」。

(ⓒ道通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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