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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바람

농사 : 2017.04.22 22:43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

(荀子)


“흙을 쌓으면 산을 이루고,

비바람이 일어난다.

물을 더하면 못을 이루고,

교룡이 생긴다.”


무릇 흙을 쌓으면 산처럼 높이 만들 수 있다.


여기 시골 한탄강에 수년래 다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홍수가 든 해 물이 월교(越橋)할 것을 면할 정도면 족할 것이로되,

까치발을 한껏 하는 것도 모자라, 

이카루스(Icarus)처럼 밀랍 날개로 하늘을 범하려 하고 있다.

교각(橋脚) 높이가 너무도 높아,

그 밑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면 까무룩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여기 시골 동네에서 한 때 사귄 건설업자에게,

왜 저리 쓸데없이 높디 높이 교각을 만드느냐 하였더니,

저리 높여야 이문이 많다 하였음이다.


그저 교각이 긴 것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호주머니가 찢어질 지경에 이르게 된다.


積土成山,風雨興焉;


흙을 모아 쌓을 때 산이 되리란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헌데, 이는 그저 단순히 거죽만 변하는 양(量)의 세상일이다.


산이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에서 비바람이 일어나는 바라.

이때에는 질(質)의 변개(變改)가 생기고 만다.


積水成淵,蛟龍生焉;


물이 모여 연못이 되는 것은,

그저 눈 뜬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허나, 그 다음 거기 교룡이 깃들이라는 것은,

마음의 눈이 열린 이가 아니라면 감히 예상치 못하리라.


형식이 내용을 바꾸고,

양이 넘치면 급기야 질을 규제하고 만다.


차원이 바뀌고 만다.

不同档次


아무리 흙을 가져다 쌓아도 더미 흙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보아야 기껏 달리 산이라 불리울 뿐인가?


아님이라,

거기 범이 달리고, 비, 바람이 불며, 

용이 날고, 구름이 뒤쫓게 된다.


우공이산(愚公移山)

(※ 참고 글 : ☞ 우공이산)


이 우화 역시 양적, 시간적 변량(變量)에 주목하면 충분치 못하다.

이를 딛고 새로운 차원의 신세상이 열리고 있음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 그리고 더 아래, 아랫배, 단전(丹田)으로 느껴야 한다.

이를 옛 사람은 배꼽으로 숨을 쉰다고 하였음이다.


그대, 당신, 

배꼽은 아직도 숨쉬기에 멀쩡한가?

기름기가 덕지덕지 켜로 엉겨 붙어,

흥미진진한 이 진탕, 그 땅을 떠나기엔 아직도 남은 아쉬움이 많은가?


문지방 값(閾値, threshold value)

어느 한계를 넘으면,

질적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양이 축적되고,

시간이 익어갈 때,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린다.


지금도 한참 미흡하지만,

우리 농장 역시 이 길을 알고 있다.

남이 무엇이라 하든,

나는 풀을 기르고,

아무 것도 투입하지 하지 않으며,

야생, 자연 상태 그대로를 따르려 한다.


한 30 년 보고 간다.

그 전에 밭이 집터로 바뀌고,

내가 이곳을 떠날 수도 있지만,

여기, 이곳에 내가 있는 한,

그 길을 간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don’t care

관심 밖이다.

다만, 내가 오늘 여기에 있는 한,

나는 내 길을 간다.


언젠가,

때에 이르면,

우리 밭에,

기화요초가 자라고,

범을 따라 바람이 일고, 

용 쫓아 구름이 서리며, 

온갖 동물들이 모여 제 품성대로 살리라.


지금도 밭엔 여러 풀벌레들이 살림을 차리고 있다.

다만 이것이 블루베리 나무에 해를 가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지역 블루베리 농장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 농장에 선녀 나방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것 한번 나타나면 방제가 쉽지 않은가 보다.


내 범은 물론, 용까지 초치(招致) 하려 함인데,

녀석처럼 제 아무리 흉한 놈이라 한들 여기서 버틸 재간이 있으랴 싶다.


雲從龍,風從虎。

虎嘯谷風至,龍興景雲起。


범이 골짜기에 대고 포효하면, 바람이 이르며,

용이 하늘을 날면, 구름이 일어난다 하였음이다.


대개 이를 두고,


‘범이 포효하면, 골바람이 이르며,

용이 날면, 빛나는 구름이 일어난다‘ 말하지만,


나는 문법 벗어나, 조금 달리 풀어보았다.

아무리 용, 범이라도,

지향처 없이 때 없이 허공에 대고 삿대질한다고,

바람이나 구름을 불러들일 수는 없다.


범이 골짜기에 대고 소리를 질러야 골바람이 불며,

용이 하늘 경관에 대고 흥을 일으켜야, 비로소 구름이 일어나는 법이다.


이를 상초(相招), 상치(相致)라 한다.

서로 부르고, 이에 이른단 뜻이다.


다만 이런 부름에 응하기 위해선 동기(同氣) 즉 기운이 같아야 한다.

이 때라야 감응(感應)이 따른다.


오늘날 농업이란 것은 

농부 이외의 것을 모두 대상화시키고,

자신의 욕망과 금전적 이해에 복속시켜버렸다.


때문에 소출만 많이 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만다.

닭의 부리도 잘라내고, 비료도 왕창 처넣고, 농약도 한껏 뿌리며,

조류독감, 구제역 걸렸다고 수 백, 천만 마리도 생매장시키고도 시침을 뚝 뗀다.

요즘엔 이게 거의 해마다 되풀이 된다.


꿀벌도 씨가 마를 정도로 다 죽어 자빠지고 있다.

이것 꿀을 모두 빼앗고 설탕물로 바꿔치니 면역력이 생길 틈이 없어서 그렇다.

공연히 낭충봉아부패병이라 이름 붙여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프로폴리스가 좋다하니,

이것까지 채집망을 설치하여 모조리 빼앗아내고 있다.

프로폴리스는 벌집을 거의 무균에 가깝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앗아가니 벌들이 병에 아니 걸릴 재주가 있겠는가?


조류독감도 애꿎게도 죄 없는 철새 탓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좁은 계사에 밀식하고, 각종 성장호르몬 먹이고, 

문제가 생기면 갖은 약으로 땜빵을 하기 때문이다.

농사도 이와 마찬가지로 한껏 비료 처넣고는,

병충해가 뒤따라오면 농약을 뿌려버리고 만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오늘날의 지옥 나찰보다 더 흉칙한 사람 손아귀에 잡히면,
꼼짝없이 고통 속에서 한 생을 마감해야 한다.


이 모두는 제 이해를 위해,

제 밖의 모든 것을 수단화하고, 

나아가 적대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생명을 다루던 농업이,

산업에 포섭되면서 차가운 농산업, 농공장으로 변했다.


여기 시골에 유기농, 친환경 운운하며 딸기 체험을 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베드 위에서 양액으로 키운다.

도대체가 땅을 빼앗기고 물속에서 자라는 식물을 두고 그 누가 있어,

친환경이며 자연스럽다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뜬장에 갇혀 평생 고통스럽게 살다가는,

오늘날의 현대식 축산공장과 한 치도 다름이 없다.


내가 처음에 농사를 지으려 여기 시골에 내려왔다가,

우연히 근처 장미 농장에 들어갔다가 기겁을 하고는 뛰쳐나온 적이 있다.

이들은 모두 높이 위로 띄운 철가(鐵架) 위 베드에 얹혀,

흙 하나 없이 양액 속에서 자라고 있더란 말이다.

저 온실 속에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내 귀청을 때리고 있었다.


범이 바람을 이끌고 돌아오고, 

용이 구름을 데리고 나타나려면,

동기응변(同氣應變)하는 천지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기실 천지자연의 만물은 동기(同氣)가 아닌 것이 없다.

내 가족만 동기가 아니다.

땅 속에 수많은 미생물이 살듯이,

지금 내 뱃속 안에도 수많은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들과 내 삶이 유리된 것이 아니다.

삶의 고리, 연환쇄(連環鎖)처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헌즉 어찌 동기라 하지 않을 수 있겠음인가?


중국인들이 곧잘 쓰는 사해동포(四海同胞)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형제란 말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포(胞)는 포태(胞胎)로 아기가 생기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동포(同胞)란 어미를 통해 생명을 얻는 자리를 말하며,

동기(同氣)는 아비로부터 물려받는 피부(皮膚) 기운을 말하되,

이 외연을 확장하면 하나의 부모는 천지자연으로 통섭되지 않을 수 없다.


(胞 : 說文解字注)


하여 나는 동기를 사해동포(四海同胞)에 대(對)하여,

천지동기(天下同氣)라 이름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농산업은 해체되어야 한다.

오로지 이윤 추구 동기에 의해 굴러가는 이것은,

생명을 지키고, 뭇 생명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박한 농사로 다시 재구축되어야 한다.


***


내가 막 용과 구름에 대하여 글을 쓰는데,

갑자기 자갈밭으로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하여 밖으로 뛰쳐나가니 돌풍이 지나며 비닐하우스 비닐을 찢었다.

봄철엔 바람이 강하게 불어 하우스 문을 잘 열어두지 않는다.

앞문과 뒷문만 사람이 지날 정도로 조금 열어두었는데,

뒷문을 통해 들이 닥친 돌풍이 하우스 안에 갇혀 지붕을 뚫고는 빠져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비닐이 차례로 뜯기며 그리 요란한 소리가 난 것이다.


벌써 두 번째 겪는다.

태풍이 올 때는 외려 괜찮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치는 돌풍은 감당할 수 없다.

지형상 뒷문 쪽에 강한 기류가 형성되곤 한다.

베루누이 정리에 의해 좁은 곳을 빠져나가며 속도가 붙게 된다.

좀 성가신 일이지만, 틈을 내어,

뒷문 쪽에 바람 길을 막는 방풍막(防風幕)을 설치하여야겠다.


風從虎라 하였는데,

오늘은 내 글을 뒤쫓아 바람이 불었음인가?


과시 글이 신령스럽기라도 하단 말인가?

앞으론 범이나 용 이야기는 귀신도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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