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gta      

한언쇄어(閑言碎語)

소요유 : 2017.07.05 08:38


비가 오락가락 하니,

내 글도 눅진하니 매끄럽지 못하다.

몸에서 배어나온 생각들을,

되는대로 이리 밖으로 내놓는다.

잠시 한가함을 이리 부스러기 말을 늘어놓으며 건넌다.


***


여기 시골 농장이 있는 전곡은 연천군에서 제일 큰 도시다.

연천군청이 있는 곳은 외려 외지고 한가하며,

전곡은 나름 사람들이 꾀며 복작인다. 

기실 명실 공히 전곡은 연천군을 대표한다.


연천군은 서울에서 제법 가까운 곳이지만,

인구가 적어 그저 그럭저럭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곡은 해마다 차량이 늘더니만 도로마다 차량이 점령하고 말아,

나다니기가 불편한 곳이 적지 않다.


내가 생수를 구입하는 편의점 근처만 하여도,

몇 년 전만 하여도 한적한 곳이었는데,

요즘엔 좁은 도로 양편에 차량이 상시 주차하여 있어,

그리로 지나다니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하여도,

물을 사다먹는다는 것이 죄만스러워,

힘이 들어도 근처 한탄강 건너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다.

하지만 올해엔 아예 거길 가지도 않고 생수를 사다 먹는다.

이리 가문 시절엔 가보나마나 물길이 끊어져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 유독 거기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 앞 도로에,

주차한 차량 두 대는 언제나 핸들이 45° 각도로 꺾여져 있다.

해서, 특히나 이곳을 지날 때는 좀 더 신경이 쓰여 천천히 지나게 된다.

한 달 전 내가 편의점에 들려 생수를 구입하면서,

계산대 일을 보고 있는 젊은 녀석에게 물었다.


“저 차량들이 누구 것인 줄 아는가?”


“제 아버지 것과 내 것입니다.”


“왜 저리 핸들을 꺾어 두는가?”


“급발진을 염려하여 그리 합니다.”


“그것을 염려하든 아니든, 

그것이야 차량 소유자의 마음에 달린 일일지라도,

좁아터진 길을 지나는 차량에겐 폐가 될 수도 있으니,

핸들을 바로 펴놓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바로 펴놓겠다는 말을 하지만,

녀석이 대하는 품세로 보아선,

전혀 그리 할 위인이 아니다.


그 골목길엔 부쩍 늘어난 차량의 불법 주차로 언제나 다니기가 버겁지만,

그 두 차를 제외하곤 그나마 핸들은 바로 펴진 채 주차되어 있다.

불법 주차이지만, 그나마 이런 정도의 주차 상식, 예절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알기 이전에 절로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니랴?


‘핸들을 꺾어놓으면, 지나는 차량이 불편하겠다.’


건전한 양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이런 생각은 절로 드는 것이 아니겠음인가 말이다.


내 처는 한 두 사람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만,

만약 거기 주차된 차량 수 십대가 모두 핸들을 그리 45° 각도로 꺾어 주차한다면,

더욱 다니기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헌즉 하나 둘이란 핑계로 면피가 될 일이 아니라,

하나일지라도 마땅한 도리가 아님이 자명해진다.


그날 이후 그 편의점을 지나치고 다른 곳을 이용하였다.

우리가 말을 시켜본다든가, 글을 대하다 보면,

조금은 그 사람의 내력이라든가,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말이나 글 따위를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하여 관상을 공부하는데 이르르고 있질 않은가?

예상대로 지금도 녀석은 여전히 핸들을 꺽은 채로 주차하고 있다.


우리는,

대로일지라도,

유턴 하려고 대기한 차량 중에는,

편하게 돌려고, 슬쩍 우측 차선을 범한다든가,

잔뜩 핸들을 좌로 꺽은 채,

차체를 비뜨름하게 대고 신호를 기다리는 경우를 가끔 목격하게 된다.


이런 차를 보게 되면,

그저 냅다 달려가 들이박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난 성질이 드럽다.

그 곁을 지나는 수많은 차들의 동선(動線)을 훔치고,

안전을 위협하는 저들을 나는 혐오(嫌惡)한다.


편히 달리다가,

저 차를 피하기 위해 만부득,

옆 차선을 범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편리를 도모하고자,

타인의 불편을 도외시(度外視)하는 저들의 마음보는,

얼마나 안일하고, 그만치 흉한가?


그런데, 기실은 이것은 그저 내가 참으면 되는 일이고,

더욱 심각한 일은 따로 있다.


貪圖安逸


‘안일함을 탐함.’


逸必致驕,驕必致亡。


“안일하면 반드시 교만함에 이르고,

교만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안일한 그가 흥하든 망하든 참견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안일함은 종내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만다.


忠諫不聽,蹲循勿爭。


“충성스런 간함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할 수없이 따르고, 다투지 말라.”


이것 장자(莊子)의 가르침이지만,

일신의 안녕(安寧)을 구하기엔 그럴듯한 도리일지 몰라도,

사회의 평안(平安)을 이루기엔 너무도 안일한 방책이라 하겠다.


절대권력에 갇혀 어찌 할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제 목숨을 돌보지 않는 충신은 역사상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타났다.

오늘날 세상은 얼마나 좋은가?

시민들은 떳떳하니 낱낱의 권익을 주장하고,

그 위해의 예방내지는 손해의 배제를 청구할 수 있다.

이는 민주 시민의 자각 그리고 피의 투쟁으로 쟁취한 결과이다.


장자는 충신의 죽음도 그게 옳은지 아닌지 회의하며,

무위(無爲)를 노래하고 있다.


至樂無樂,至譽無譽。


“지극한 안락은 락이 없는 것으로 락으로 삼고,

지극한 명예는 명예가 없는 것으로 명예로 여긴다.” 


天下是非果未可定也。


“천하의 시비는 과연 정할 수 없다.”


天無為以之清,地無為以之寧


“하늘은 무위로써 맑고,

땅은 무위로서 편안하다.”


天地無為也,而無不為也。


“천지는 무위이고,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내가 서울로 가는 처를 역으로 바래다주며,

농장으로 돌아오는데 차도에서 일단의 미군 차량을 만났다.

녀석들 차는 하나같이 차폭이 넓어 옆 차로를 범할 듯 말 듯 기웃거린다.

마치 담장 넘어 이웃집 처녀를 훔쳐보는 흉한처럼,

남의 나라 주권을 무시하고 때론 욕보인다.

곁을 지나자니, 자연 속력을 늦추며 조심스레 운전을 하였다.

차량 번호판을 보니 모두들 알아보기 힘든 일련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제들 마음대로 차량번호 시스템을 무시하고,

도로를 휩쓸고 다니고 있다.

저들 차량을 보니 그 무식하게 튼튼함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범강, 장달이를 무색케 하고 있다.


힘이 있는 놈들은,

남의 나라에 와서도 이리 위세가 당당하구나 싶다.


힘이 있다고,

미군처럼 염치를 버리고 안하무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天地無為也,而無不為也。


“천지는 무위이고, 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지만, 천지가 아닌 인간은 무위(無爲)가 아닌 유의(有爲)로써,

세상을 규율하고, 사회 질서를 잡을 수밖에 없다.

유가의 예의(禮義)나 법가의 법(法治)는 바로 이로써,

장자의 무위에 대(對)한다.


나는 농사를 지을 때는 무위(無爲)로 하지만,

사람을 대할 때는 유의(有爲)치 않을 수 없다.


이는 천지자연(天地自然) 밖에 인간이 별도로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실은 스스로 밖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이 하많기 때문이다.

하기에, 도리 없이 예의를 따지고, 법을 인용할 수밖에 없을 뿐,

무위법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며,

하늘은 도를 따르며,

도는 자연을 본으로 삼는다.”


자연을 따르기 위해,

어그러진 것을 바로 잡는 데는 禮나 法이 필요하다.

물론 도를 여의고 禮나 法에 주박되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외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물론 경계하여야 할 노릇이다.

乖戾

(※ 乖戾 : 괴려

사리(事理)에 어그러져 온당(穩當)하지 않음.)

헌데 인간만이 자연을 거스르고, 파괴하는 패악질을 자행한다.


이것 그저 무위로써 바로잡을 수 없다.

물리적 제재를 가하여 굽은 것을 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유가도 버리고 도가도 믿지 않는다.

다 늙게 나는 법가에 귀의하였다.


사람이 모여 사회를 구성하는 한,

도리 없이 법으로써 규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실로 불행한 사태이지만,

더욱 불행함을 막을 길을 이로써 구할 수밖에 없다.


人之性惡,其善者偽也。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順是,故爭奪生而辭讓亡焉;生而有疾惡焉,順是,故殘賊生而忠信亡焉;生而有耳目之欲,有好聲色焉,順是,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

(荀子)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이 선한 것은 (수양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본성이 태어나면서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를 따르기에, 쟁탈이 생기며, 양보함이 없어지며,

태어나면서, 미워하는 고질이 있는데,

이를 따르기에, 남을 해치는 일이 생기고, 충성과 믿음이 없어지며,

태어나면서 귀와 눈의 욕망이 있고, 

소리와 색(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는 일이 있는데,

이를 따르기에, 음란함이 생기고, 예의와 문채가 없어진다.”


故枸木必將待檃栝、烝矯然後直;鈍金必將待礱厲然後利;今人之性惡,必將待師法然後正,得禮義然後治,今人無師法,則偏險而不正;無禮義,則悖亂而不治,古者聖王以人性惡,以為偏險而不正,悖亂而不治,是以為之起禮義,制法度,以矯飾人之情性而正之,以擾化人之情性而導之也,始皆出於治,合於道者也。今人之化師法,積文學,道禮義者為君子;縱性情,安恣睢,而違禮義者為小人。用此觀之,人之性惡明矣,其善者偽也。

(荀子)


“고로, 굽은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로 틀거나 수증기에 쪄서야 곧아지고,

무딘 쇠는 반드시 연마하는 일을 기다린 후에야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반드시 스승을 본받은 후에라야 바르게 되고,

예의를 얻은 후에라야 다스려 지는 것이다.”


법맥을 순자에 두고 있는 법가는 예의가 아니라,

법으로써 규율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자는 교화를 통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지만,

법가의 대표자인 한비자는 상벌로써 본성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춘추시대를 넘어 전국시대로 들어가며 세상은 더욱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힘이 세상을 누르고 있다.


世異則事異。

事異則備變。


세상이 달라진즉 일도 달라진다.

일이 달라지면 그 대비책도 변한다.


세상이 이미 달라졌는데,

어제의 일로 오늘을 규율할 수 없다.

일이 달라지면, 그를 처리할 방책도 따라 변하는 법이다.


上古競於道德,中世逐於智謀,當今爭於氣力。


상고시대엔 도덕을 다투고,

중세엔 지모를 겨루었으나,

지금 세상은 힘으로 싸운다.


그렇다.

이젠 도덕으로 규율하는 것도 어렵고,

지모로 우열을 겨루기도 쉽지 않다.

개명(開明)한 세상이라,

저마다 인격의 주체요,

배울 대로 배운 인사들인 바임이라.

이로써 견주며, 겨룬들 도찐개찐이다.


다만, 힘으로 상대를 누지를 뿐이다.

힘의 내용은 도덕이나 지모에서 완력으로,

그게 오늘날엔 돈, 권력, 정보로 변이되어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사적 자치를 인정하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사회가 나서서 개인을 교화하고 스승을 본받거나 예의를 가르치기 어렵다.

개인은 자신의 책임 하에 합목적적 행위를 한다.

이를 일일이 국가나 사회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다만 법률이나 규범 질서를 어기는 경우 엄히 규제해야 한다.


이럼으로써 개인의 창발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이끌어낼 수 있다.

각자는 자신의 개성을 누구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다만, 그게 남에게 피해를 준다면 책임을 져야 하고,

적절한 벌을 가함으로써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도록 하여야 한다.


이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다 응석받이가 되었다.

죄를 지어도 적당히 얼버무려지고 넘어가며,

사회 통합이란 이름으로 일률적인 도그마로 사람들을 묶어 몰아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칭얼거리거나 고집을 부리는 미숙한 상태를 지속하며 늙어간다.

주제넘게 국가나 사회 같은 외부에서 들어와 가르치겠다 할 일도 아니다.

이리 되면 더욱 의존적이 되며, 

주체성을 확립하는 게 더뎌진다. 


대학교육 8할을 넘보는 이 시대.

이젠 더 이상 禮나 義를 가르치며 교화할 일이 아니다.

자기 인격은, 자기 소관사는 자기가 담부할 일이다.

다만, 한 개인이 사회에 폐를 끼치는 일을 자행하면,

엄히 그 책임을 묻고 벌을 줄 일이다.

이럼으로써 제 인격을 스스로 지키고 책임을 질 줄 아는, 

주체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법적 시스템을 완비하여야 하며,

그 집행이 확실히 담보되는 장치나 제도를 고안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에 앞서 불의를 고발하는 시민의식 제고가 시급하다.


이게 정착되면 일 개개인이 사적 이익을 위해 침탈하였던,

사회적 공적 영역이 온전히 온 시민에게 되돌려지게 된다.

이때가 오면, 쾌적하고 편안한 세상이 된다.

지금은 개개인이 공적 영역을 헐어내 사적 이해에 복무시키는 경쟁을 한다.

여기 동참하지 않으면 상대적 손해를 보게 된다.


내가 고대의 법가와 다른 지점은 이렇다.

저들은 사회통합, 통제를 위해 법으로써 개인의 인격을 저당 잡았다.

하지만 내가 다시 세우는 법가란 이와는 격을 달리 한다.

개인의 창조적 행위를 최대한 보장하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만은 철저하게, 엄히 법에 의해 규율하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후자는 전자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지,

전자를 억누르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林林總總 千人千心. 萬人萬心.

  

숲도 총총, 천인에 천 가지 마음이요, 만인에 만인의 마음일지니,


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가 외친 이 절규가, 이 선언의 말씀이,

왜 아니 옳지 않은가 말이다.


千人千色 萬人萬色


나는 천사람 모두 천 가지 개성으로 빛나길 바라며,

만사람 모두 만 가지 꽃을 자유롭게 피우길 바란다.


‘見神殺神 遇佛殺佛 逢祖殺祖’

 

‘귀신을 만나면 귀신을 잡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때문에 이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들에게 구속되면,

나는 없다.


진달래는 진달래꽃을 피우며,

제비꽃은 제비꽃을 피울 일이지,

제비꽃이 진달래꽃이 예쁘다고,

이를 본받고, 흉내 낼 까닭이 없다. 


귀신, 부처, 조사

이들을 죽여야,

귀신, 부처, 조사도 살고, 

나도 사는 법이다.


무릇,

자각을 한 자는 외물에 혹하지 않는다.

때문에 자연에 합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다른 이에 의지하는 자는 외물을 여의지 못한다.

하기에 자기를 버리고 다른 이를 쫓기에 바쁜 법이다.


여기 같은 이치를 노래한,

꿈속을 노닐던,

감산노인의 말씀이 여기 있다.


夫自覺者。則於物不迷。覺他者。則於物不棄。不迷則會物歸己。不棄則捨己從人。

(憨山老人夢遊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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