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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효과, 통계학을 넘어

소요유 : 2017.07.31 15:35


학습효과, 통계학을 넘어


얼마 전 조류퇴치기 제작업체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화중 그는 새들의 학습효과 때문에,

기기의 기능발휘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진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이를 듣자 당장 이를 반박하였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먹어야 산다.’


저들의 명을 이어주는 먹이가 거기에 있기에,

목숨을 걸고 다시 밭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하니까 퇴치 기기가 제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위험을 무릅쓰고 죽음의 전선을 넘어 진입하는 것이다.


새들에게 학습효과가 있기에 기기의 기능 발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꾀가 밝은 이라면 굳이 깊게 헤아릴 것도 없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먹어야 산다는 시린 도리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것은 쉽지 않다.


한 블루베리 농장에서 포수(砲手)를 들여 새들에게 총알을 날렸다.

수 십 마리를 잡았으나 그 후 얼마 되지도 않아 새들은 다시 몰려왔다고 한다.

만약 저들의 학습효과가 진정 발휘된다면,

목숨까지 앗아가는 저 농장에 그리 빨리 다시 진입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움조차 무력화시키는 동기 원인이 있었으니,

이는 생존의 본능이다.

따라서 조류퇴치기를 만들려면 그저 단순히 쫓아내는 일에만 집중하여서는 곤란하다.

생명이 가진 근원적 생존 추동 동인을 잘 헤아려야 할 일이다.

그런 연후라야 제대로 저들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주제는 조류퇴치기가 아니니,

이에 대하여는 이쯤에서 멈추자.


위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또 있으니 마저 검토해본다.

소위 명리학(命理學)엔 분파가 많다.

가령 성명학(星命學), 녹명학(祿命學)을 시발로 발전하다, 

북송(北宋) 때 자평법(子平法)이 나와 그 절정을 이룬다.

일반인들은 흔히 사주팔자라 부르는 이런 명리학을 두고,

대개 통계에 기초하여 발전한 것으로 치부하고들 있다.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통계학적 결과물로 보는 것은 그다지 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싯적에 침술을 배웠는데,

선생께선 침술은 그 기원을 외계인으로부터의 전수에 두었다.

그리 체계적이고 정교한 이론 체계를 고대인의 인지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임상 결과가 축적되어 이론이 정립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론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임상의 경험에 따라 역사적으로 단련되고 발전되었을 뿐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명리학이라는 것도, 외계인이 전수하였다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저 단순히 경험의 축적이라든가, 통계학적 검증에 따라 정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로 세워진 소위 사주(四柱)라는 것.

이것으로 엮여진 거대하고도 정치한 체계는 결코 경험만으로 구축될 수 없다.

고도의 추상적 인지 능력, 수리 논리학적 인식 조직 체계 능력 따위는 

가령 선험적(先驗的)으로 인류가 갖추게 된,

인간 고유의 정신적 유산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중국에선 고래로 오술(五術)을 연구하는 그룹을,

크게 서방파(書房派)와 강호파(江湖派)로 나누었다.

(※ 五術 : 山(仙), 醫, 命, 卜, 相)


강호파는 누항(陋巷)에 몸을 담고,

방술(方術)을 펴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대개 학문이 짧았기에 이론을 정교하게 펼 능력은 없었으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현실의 세계에서 개별적 경험을 귀납적으로,

나름 정리하며 술기(術技)를 다져나갔다.


반면 서방파는 지배계층으로서

방술에 개인적인 학문적 호기심을 일으켜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식자답게 방술을 체계화하고, 이론적으로 구축하여 나갔다.

명리학의 유명한 서책은 모두 이들이 남겼다.

반면 강호파는 학문이 없어 책을 남길 형편이 아니 되었다.

물론 이들 서방파라고 술기(術技)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경험 축적량은 강호파에 비하여 적어,

공허한 이론에 의지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곤 하였다.

(※ 이 부분은 신창용저 자평학 강의에 크게 의지하였음.)


그러니까 사주학을 통계학으로 보는 일반인들의 견해는,

강호파의 감성적인 경험의 귀납적 단순한 결과로 보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지만 외계인 전수설이나, 선험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서방파처럼 합리적 이성의 연역적 사유에 의해,

보다 정교해지고, 튼튼한 이론 체계가 세워졌으리라는 것은 의심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이성적 접근은 자신만이 옳다는 독단주의에 빠지기 쉽다.

강호파의 경험 술기에 의해 검증되기도 하겠지만,

비정형화된 개별 경험은 편협되어 보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보다는 서방파 자체 내의 다른 분파의 비판적 논쟁에 의해,

더욱 세련되고 확고한 이론으로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


하기에 명리사주학이란 것들은 그저 단순한 귀납적 통계학이 아니라,

합리론자들의 연역적 방법에 의해 구축된 이론들이,

장구한 역사적 시간의 세례를 받아가며,

각종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 사례에 비추어,

교정, 정합 과정을 거쳐 가며 발전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리 볼 때,

중요한 것은 애초의 창설 합리론자의 품성이랄까 자질이 크게 문제가 된다.

이들이 제시한 이론적 틀이 전혀 가당치도 않은 엉뚱한 것이었다든가,

어느 정신병자의 공상에 기초하였다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하늘의 계시를 받은 성인의 창안물이라 하여도,

내가 반박하다든가, 수용한다든가 하는 따위는,

아무런 쓸모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나는 기실 이들의 진위(眞僞) 따위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이 사태를 진단하고, 사물을 해석해나가는 방법론 그 자체에 흥미를 느낄 뿐이다.

그 정교한 논리기하학적 구조, 역학적(力學的) 역동성, 미학적 정제미(整齊美) 따위가,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심미적 감정을 충동인다.


이를 통해 한 개인의 명운(命運)을 맡기는 것은,
그리 믿고 따르는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할 일이다.
그들의 태도를 십분 존중하지만,
나는 이에 구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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